연예
스포츠
포토
스투툰
'국가부도의 날' 절망의 시대를 반추하는 방식 [무비뷰]
작성 : 2018년 11월 27일(화) 16:29

영화 '국가부도의 날' 리뷰 / 사진=영화 스틸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1997년, 국민 모두에게 절망적인 트라우마로 간직된 IMF 사태는 현재까지도 엄청난 여파를 끼치는 상처의 잔재로 남았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다.

선진국의 지표라는 개발 협력 기구 OECD 가입, 환율 안정, 수출 호조, 아시아 네 마리의 용 등 대한민국의 낙관적 전망과 경제적 호황을 쉼 없이 보도하던 1997년 그때, 누가 감히 국가부도의 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을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제작 영화사 집)은 1997년 국민을 절망에 빠뜨린 국가 부도 위기를 일주일 앞둔 상황 속에 놓여진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제일 먼저 위기를 직감하고 이를 국민에 알려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과 이는 혼란만 가져올 뿐이라며 반대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의 갈등, 경제 위기 소용돌이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금융맨 출신 기회주의자 윤정학(유아인)과 평범한 노동자 갑수(허준호)가 처해진 상황을 교차 편집하며 당시 시대 속으로 들어간다.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한만큼 영화는 지극히 사실적이기에 극적 요소나 긴장감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는 명확히 대립점에 놓인 한시현과 재정국 차관의 치열한 갈등으로 상쇄 효과를 갖는다. 한시현은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도 "돈 빌려서 갚을 생각 않고 펑펑 쓰다 이 꼴 난 것"이라며 국가부도 사태를 한 단어로 '쉽게' 정의할 수 있을만한 인물이다.

특히 국가부도 위기 사태를 두고도 숨기기 급급하거나, 컨트롤타워 없이 속수무책인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한심한 세태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겐 단 하나의 위안과 희망이 되는 판타지적 인물이다.

반면 재정국차관은 중소기업들과 국민의 이해관계나 피해도는 아랑곳 않고 돈의 계급을 만들어내려는 인물이다. 대놓고 악인으로 치부할 순 없지만, 그의 언행은 소시민에 대한 공감도와 이해도가 일절 없는 특권 계층 엘리트적 사고로 비롯됐다. 더불어 한시현을 여자란 이유로 시종일관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이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비열하고 치가 떨리게 한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은 이념과 신념의 갈등으로 묵직하고 날카로운 대립을 야기한다.

결국 IMF 사태를 맞게 되고, IMF 총재(뱅상 카셀)를 대하는 두 사람의 방식도 몹시 다르다. 한시현은 끝까지 국민과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리한 조건을 합리적 의심을 들어 막아내려 한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당시 믿을 것 하나, 의지할 곳 한 군데 없던 국민들에 단 하나의 위안이 된다. 또한 두 사람의 대립과 갈등은 체계적이지 못한 성장 시스템으로 맞이한 경제와 사회 붕괴라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낸단 점에서 그 어떤 스릴러보다 더 공포로 다가온다.

극 중 윤정학과 갑수는 IMF로 달라진 양상을 맞이하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을 대변하고 있다. 소위 '금융맨' 윤정학은 자신의 판단과 논리를 믿고 이를 이용해 투자자들을 모아 '한탕'을 꿈꾸는 기회주의자다. 하지만 기회주의자 특유의 영악함을 과연 비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게 하는 인물이다. 현 사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회를 제 것으로 만드는 인물을 현명하고 영리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정학은 욕망에 가장 충실한 인물이지만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제 판단과 믿음대로 부를 형성했을 때도 이를 마냥 기뻐하는 인물은 아니란 점이다. 오히려 윤정학은 자신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무력한 정책과 현실에 씁쓸함과 죄책감을 갖는다. 결국 영화는 '성공'을 이룬 윤정학을 통해 현 사회의 보편타당한 인물을 보여줌에도 과연 그 삶의 방식이 옳고 행복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반대로 그 지척에 있는 평범한 가장이자 공장 운영자인 갑수는 대표적인 노동계층 인물이다. 갑수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히 살았고 아무 일 없다는 국가의 호언을 철석같이 믿은 인물이지만, 그랬기에 그의 몰락은 수많은 노동자와 소시민들의 절망을 대변한다. 갑수는 선량했던 시민이 IMF란 직격타를 맞고 현재의 삶 속에선 외적인 변질을 이룬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또한 이런 결핍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변질된 인물이란 점에서 양가적 감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리뷰 / 사진=영화 스틸




영화는 이처럼 부도를 맞이한 국가의 절체절명 위기를 지나온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아프고 절망스러운 그 시절의 온도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비록 극은 내내 담담하고 극적인 사건 없이 흘러감에도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세태를 되짚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과거의 고통을 생생하게 마주하는 것은 그 어떤 신파적 코드 없이도 비참하고 절망적인 감상에 젖게 한다. 이를테면 국내 100대 기업 태반이 국가부도 위기 직격탄을 맞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담아낸 뉴스들과, 이를 국민의 과소비 탓이라며 순진한 국민들에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의 비열함, 한강 대교 위에서 투신하는 어느 이름 모를 가장의 얼굴에 비친 낙담과 좌절 등이다.

'국가부도의 날'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용불안, 청년 실업, 빈부격차 등 권력과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며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세대, 이른바 '헬조선'의 비극이 당시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영화는 말한다. 묵직한 고통과 무게감이 수반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다. 11월 28일 개봉.




한예지 기자 ent@stoo.com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가장 FunFun 한 뉴스 ⓒ 스포츠투데이>
스투 주요뉴스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