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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의 치열한 41살 [인터뷰]
작성 : 2023년 03월 10일(금) 11:30

정경호 / 사진=매니지먼트 오름 제공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벌써 연기생활 20년 차가 된 정경호는 '한국식 나이'로 하면 41세, '만 나이'로 따면 39세다. 같은 풍경도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듯. 정경호는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이 때만 볼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정경호가 출연한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종영했다. 오랜만에 로맨스 작품을 했는데 혹시 부담스러운지 아니면 반가운지 물었다. 정경호는 "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나름 로맨스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부담은 없었다"며 너스레 떨며 "전도연 선배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방송 전까지는 일각에서 정경호와 전도연의 조합에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정경호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전도연 선배님과 안 맞는 사람은 없을 거 같다. 어떻게 연기를 하든 어떤 배우든 전도연 선배님과 안 맞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저 또한 연기를 하면서 영광되는 순간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보던 분과 멜로 연기를 하고 한 컷에 잡힌다는 게, 안 그런 척하면서도 '컷'하면 감독님에게 가서 너무 좋다고 '이게 바로 성공한 기분'이라며 장난도 치고 그랬다.(웃음)"이라고 밝혔다. '성덕'의 느낌을 받았다며 전도연을 향한 '주접 멘트'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전도연 말고도 장영남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가장 눈에 띈 배우가 있었냐는 질문에, 자식의 공부와 입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엄마 장서진 역의 장영남을 꼽은 것. 정경호는 "딱 한 번 만나뵀는데 '선재 엄마는 왜 저렇게 까지하지?' 하던 부분을 장영남 선배님이 그 '마지막'을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를 보면서 '선배님 아니었으면 누가 저렇게 설득력 있게 연기할 수 있을까?' 그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감탄하며 장영남을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했다. 비록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었지만 "같이 연기하면 좋았을 텐데란 아쉬움도 있었다. 보면서 감탄했다.


그렇다면 '일타 스캔들'의 주연배우가 보는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 정경호는 "극의 흐름상 스릴러가 됐지만(웃음) 초반엔 편안함을 가졌다. 로맨스, 학생들의 고충, 김영주(이봉련)·남재우(오의식)의 이야기 등을 배우들이 잘 표현해주셔서 단합되고 편안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임을 어필했다.

간접적으로 입시 열풍과 학구열을 체험한 정경호가 느낀 것은 "이런 게 진짜 있어?"였다. "맘 카페, 일타 강사에 대한 가십 등 이런 걸 많이 느꼈다. 또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 정경호는 입시생들의 치열한 노력을 보고 대견함도 느꼈다.

특히 극 중 일타 강사로 분한 만큼 정경호는 실제 수학 일타 강사안가람 강사에게 도움을 받았다. 일타강사의 삶을 밟아 본 정경호는 "일타 강사들이 정말 최치열이랑 비슷한 거 같다. 일단 개인 시간이 없고, 놀 시간도 쉴 시간도 없다. 정말 돈을 쓸 시간이 없더라. 집에 놀러가면 진짜 학생들을 위해 공부할 문제들만 생각하고 다른 걸 안 하더라. 안타깝긴 했다.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학생들을 위한 것만으로도 일타가 아닐까 싶었다"고 전했다.

수학강사가 정경호가 마주한 의외의 고충은 바로 판서였다. 칠판을 처음 써봤다는 정경호는 집에 연습용 칠판을 사서 판서쓰는 것을 연습하기도 했다. "대본 위주로 문제를 계속 써봤다. 그래도 그냥 판서만 쓰는 거랑, 아이들을 보고 설명하면서 하는 건 또 다르더라"고 고백했다.

강의 장면 촬영 때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생겼다. "100명의 실제 학생들을 앞에서 했다. 제가 문제를 틀리면 학생들이 알더라. 리허설을 하는데 학생이 틀렸다고 알려주면 살짝 멘탈이 왔다갔다 하더라.(웃음)"고 털어놓았다.

최치열도 그렇지만 정경호는 그동안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강단있는 캐릭터를 맡아왔다. 그는 "제가 가만히 돌이켜보면 왜 살이 안 찔까? 강박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지난 8년을 예민하고, 섭식장애에, 에이즈 환자에, 까칠하고, 샤프하고, 볼이 홀쭉 들어간 현장에서 뛰고 그런 역할을 계속 해왔더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너무 다행인 건 최치열 때도 그렇고 비슷한 종류의 연기를 하면서 제 나이대에 견뎌야 할 아픔과 슬픔을 작년과도 다르고 제작년과도 다른 제 모습을 본 거 같다. 비슷한 역할을 하더라도 내가 1~2년 뒤 또 비슷한 역할을 했을 때 또 다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대부분 까칠하고 예민한 각 작품 속 캐릭터들을 어떻게 구분점을 둔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영업비밀이라며 너스레 떤 정경호는 "캐릭터 직업의 전문성을 조금 더 보여주는 편이다. 그래야 인물이 달라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다만 "마르고 예민한 역할만 하게 되니 차별성을 둬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좀 남아있었다면, 이번에 치열이를 하면서 41살이 된 정경호가 표현하는 건 다를 수 있겠다 싶더라. 만족하진 않지만 어쨌든 다른 인물이 표현된 거 같아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생활연기에 정평난 정경호지만, 독특한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도 현장에서 리허설 많이 하는 게 좋은 사람도 있고 적게 해서 입에 안 붙게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외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데, 누구한테 맞출 필요는 없지만 저 같은 경우 대본을 100% 외워서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면서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 쪽지로 대본을 소지해야 말을 할 수 있는 습관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 정도로 정경호는 표현 방법보다도 대본 숙지가 연기에 있어 선결되어야 할 제1순위였다.


2003년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본격적인 매체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정경호는 벌써 데뷔한 지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못 돌아갈 거 같다. 차라리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든지, 데뷔 때로 돌아가라면 '저 작품을 또 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 거 같다"며 한 작품, 한 작품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난 날을 떠올렸다.

"저를 많이 고되게 하는 편인 거 같아요. 한 작품 끝나면 너무 좋았지만, 이걸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운 거 같아요. 항상 바등거리며 간신히 해내왔단 생각이 들거든요."

또한 그는 데뷔 시절 '정경호'보다는 아버지이자 선배 배우 '정을영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익숙하던 때다. 넘기 힘든 어렵고 원망스러운 산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오히려 정경호는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다"라며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금의 배우 정경호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물론 좋은 배우가 꿈이지만 그전에 아버지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좋은 말을 뱉어야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요.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주변에 좋은 행동을 쌓아올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도 만나고, 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거 같아요."

41살. 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견배우라기엔 너무 젊은, 연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시점일지도 모르는 시점이다. "저는 지금 나이가 좋긴 한 거 같다. 어느 순간 현장에 가니 '선배님' 그러더라. 어린 분들이랑 연기할 때가 많아 중간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갑인 오의식 배우랑도 얘기했지만 마흔하나에 대해 이 시기를 어떻게 견디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동갑내기 배우가 많지 않아서 현장에서 중간 위치가 중요한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예민한 캐릭터 탓에 '종이인형'처럼 펄럭거리는(?) 연기로 많인 시청자에게 웃음을 전했던 그는 이제는 살을 찌워보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드러냈다. 정경호는 "몸무게도 키우고 싶고 건강도 그렇고.(웃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나름 또 안 쉬고 활동했더라. 잘은 모르지만 많이 공부도 하고, 내 속에 뭔가 채워져야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41살이 어린 나이는 아닌데 쉼 없이 작품을 내 자신을 채우기엔 자신이 부족한 거 같더라. 쉬어가면서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는, 다르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시간이 아닐까"라며 자신을 '채워서' 다양한 역할, 다양한 표현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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