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연상호 감독의 좀비가 또 한 번 진화했다. 마치 개미 군대처럼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군체'를 이룬 좀비들이다.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좀비와 인간의 사투가 122분간 몰아친다.
21일 개봉된 영화 '군체'(연출 연상호·제작 와우포인트)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며 경찰에 테러를 예고하는 서영철(구교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서영철이 서울 도심의 한 빌딩으로 향함과 동시에, 건물 내부는 순식간에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로 패닉에 빠진다.
건물을 찾았던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과 그의 전남편 한규성(고수), 빌딩 경비원 최현석(지창욱), 그리고 최현석의 누나 최현희(김신록)는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에 살아나려고 애쓴다. 감염자들은 시시각각 진화하며 생존자들의 목을 조여온다.
권세정 무리는 유일한 백신의 열쇠를 쥔 서영철을 데리고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한다. 상황은 점차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서영철은 감염자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이들을 압박한다.
한규성의 아내이자 박사인 공설희(신현빈)는 서영철의 연구실에서 감염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추적하고, 권세정은 감염자들이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하지만 서영철이 진화한 감염자들을 앞세워 탈출구를 막아서고,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진행한다.
'군체'는 개체들이 하나로 연결돼 거대한 유기체처럼 기능하는 집단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에서 출발한다. 흔히 개미의 사회적 학습을 칭할 때 사용되지만, 영화 속에서는 '좀비'에게 대입된다. 이들은 마치 군대 개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경험을 공유하고 진화하는 '의식의 군체'가 된다.
그간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에서 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종이다. '부산행'과 '반도'의 좀비가 본능에만 충족해 날뛰는 '통제 불능의 짐승'이었다면, '군체'의 좀비는 상황을 학습하고 통제에 따르는 '신인류'에 가깝다.
행동 패턴도 전형성을 탈피했다. 사족보행을 넘어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생존자들의 이동 동선과 대응 방식을 빠르게 읽어낸다. 모든 시각과 청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서영철의 눈과 귀, 손발이 돼 움직인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좀비들의 진화는 빙산의 일각이다. 인간의 전술을 역이용하는 좀비 군체의 지능적인 행동들은 소름을 안긴다.
영화는 초반 10분 만에 집단 감염 사태를 발발시키며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몰아친다. 좀비들의 영리한 학습 능력과 생존자들의 사투가 122분간 쉴 틈 없이 교차된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가족애와 희생'이라는 휴머니즘이 밑바탕에 흐르지만, 신파로 빠지지 않고 선을 지킨다. 재난 영화의 단골 클리셰인 '답답한 발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 점도 돋보인다.
'군체'가 흥미로운 건 단순한 좀비물을 넘어 '집단지성이 주는 공포'와 '소통의 부재', 이로 인한 '사회적 패닉'을 은유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학습과 맹목적인 추종으로 인해 결국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앤트밀'을 시각화한 장면은 주제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 군상을 대변하는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감염자들의 패턴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브레인 권세정 역의 전지현은 극의 중심을 잡고, 분노를 유발할 만큼 짜증스러운 악역을 소화한 구교환은 기괴함을 선사한다. 맨몸으로 감염자들을 무차별 타격하는 지창욱의 처절한 액션도 인상깊다. 처절한 사투를 온몸으로 체화해 낸 김신록과 신현빈 역시 제 몫을 다한다.
다만 중반부까지 '학습과 진화'라는 키워드로 키워놓은 좀비 군체의 위용이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허무하게 무너지는 점은 아쉽다. 군체를 총괄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인 서영철과, 대척점에 선 권세정의 최종 대립도 서사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힘이 빠진다. 오히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몸을 던진 경비원 최현석의 사투만이 뚜렷한 잔상으로 남는다.
'군체'는 감독의 호언장담대로 기존 좀비 장르의 틀을 깨부수려는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명확한 주제 의식과 진화된 비주얼은 합격점이지만, 서사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결말부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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