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된 영화 '실낙원'(연출 연상호·제작 와우포인트)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부산행' '지옥' '군체' 등을 통해 독창적인 상상력을 선보여온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자 전작 '얼굴'을 잇는 저예산 시리즈다.
작품을 향한 관심은 일찍부터 뜨거웠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고, 월드 프리미어 공개 전 공식 상영 4회차(약 2300석) 티켓이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됐다. 개봉 하루 앞둔 20일 한국 영화 예매율 1위, 전체 영화 예매율 2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를 차지하며 높은 관심을 입증하기도 했다.
영화는 잔인한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소영의 깊은 상실감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슬픔 속에 살아온 그는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모습을 다시 만난다. 비록 만지거나 온기를 느낄 순 없지만, 안경을 쓰면 눈앞에 나타나는 선우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실종된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은 분명 기적이다. 하지만 소영 앞에 나타난 청년은 기억 속 선우와 어딘가 다르다. 서늘한 눈빛과 온몸에 남은 흉터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9년이란 긴 공백 끝에 돌아온 그를 소영은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던 재회가 의심과 공포로 뒤바뀌면서 영화의 긴장감이 높아진다.

실낙원 스틸 / 사진=CJ ENM
'실낙원'은 아들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뿐 아니라 상실을 견디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AI를 통해 재현된 아들의 모습과 현실로 돌아온 낯선 청년의 대비는 소영이 붙잡고 싶은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부각한다. 관객 역시 소영의 시선을 따라가며 눈앞의 인물이 누구인지, 그가 돌아온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 질문하게 된다.
제목인 '실낙원'은 작품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영국 시인 존 밀턴이 1667년 발표한 동명의 장편 서사시 '실낙원'은 인간의 타락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다룬 작품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선택과 상실, 구원의 문제를 탐구한 이 서사시는 영화를 읽어내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소영에게 아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이미 사라진 낙원과도 같다. 그 낙원을 되찾으려는 간절함은 기적처럼 찾아온 재회 앞에서도 쉽게 안도하지 못하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단연 김현주의 연기다. 김현주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무너진 일상부터 AI로 재현된 아들을 마주하며 얻는 위안, 실제로 돌아온 아들을 향한 반가움과 의심까지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배현성은 김현주와 대립하는 지점에서 또 다른 긴장감을 형성한다. 다만 에너지에서는 '엄마' 김현주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두 배우의 온도 차는 모자 관계의 거리감과 맞물리기도 하지만, 그의 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는 물음표다.
'실낙원'은 이야기의 흥미나 대중적인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연 감독이 구축해 온 창작 세계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영화다. '얼굴'에 이어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깊은 의의를 가진다. 흥행 공식에 안주하지 않는 연 감독의 끊임없는 도전이 계속되길 바라본다. 러닝타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