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박해수가 인물의 서사를 쌓을수록, 연기는 깊어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연출 이일형)은 벗어나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악연으로 얽히고설킨 6인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4일 6부 전 회차가 공개됐다.
'악연'은 국내외 언론과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공개 이후 '오늘의 대한민국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는 물론, 3일 만에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악연'은 공개 이후 3일 만에 36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 37개 국가에서 TOP 10 리스트에 올랐다.
이 같은 글로벌 인기에 대해 박해수는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제 캐릭터성이 변화가 크고, 진폭이 커서 여러 가지 보여드릴 것이 많기 때문에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며 "사실 이런 인물 자체를 만나보기 쉽지 않아서 저도 이렇게 극단적인 캐릭터를 경험하고 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많이 못 보셨던 박해수의 모습들이어서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나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해수가 연기한 목격남은 안경남(이광수)의 교통사교를 목격하며 첫 등장한다. 그러나 순박한 듯 보였던 안경남은 점차 본색을 드러내고, 잔혹한 민낯을 보여준다.
목격남에 대해 박해수는 "캐릭터가 가진 진폭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제가 이 캐릭터의 선택에 공감할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다행인 건 제가 유일하게 나머지 다섯 캐릭터를 다 만난다. 일부러 캐릭터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것들이 있었다"며 "육교에서 안경남과 처음 만날 땐 어리숙해 보이려고 했다. 다행히 이광수가 갖고 있던 아우라와 에너지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대비되더라. 거기에 이광수가 에너지 있고, 폭력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제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중반부 모종의 사건을 겪은 목격남은 전신에 화상을 입는다. 박해수 역시 이를 연기하며 직접 화상 분장에 도전, 성대까지 갈아 끼우는 열정을 보여줬다.
박해수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 '이렇게 끝까지 가는구나' 싶었다. 근데 화상 분장은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나올지 상상을 못 했다. 얼굴에 6~70% 정도가 화상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도전해보고 싶었다. 저는 배우로서 그런 걸 재밌어하는 성격"이라며 "후반부에 화상을 입고 이 친구가 가진 선택의 기준 자체가 없어서 한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나오는 혐오스러운 짜증과 예민함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래서 대본 안에 쓰여있던 부분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접근하려고 했다. 목소리 역시 화상 수술 다큐멘터리에서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봤다"고 말했다.
목격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하게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다만 모든 이들이 비난할지라도,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했다.
이에 대해 박해수는 "이해하려고 하면 다른 쪽으로 빠질 것 같아서 공감은 최소화하려고 했다. 다만 목격남은 껍데기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남의 몸을 빌려서 사는 것 같고, 마지막엔 몸이 파괴돼서 없어지는 인물이다. 이걸 공감하기 위해서 목격남의 과거에서부터 출발했다"며 "목격남은 남의 잘못과 양심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다. 남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미끼로 삼으면서 합리화했다. 그렇게 얻는 돈은 나의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해수는 "주변 배우들에게 많이 기대고, 물어보면서 구축하고 쌓아갔다. 정답을 내리고 현장에 들어가진 않았다. 처음엔 너무 만화 같은 캐릭터라서 접근하기 어려웠다"며 "목격남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양심을 배제해야 했다. 그런 부분을 베이스로 깔아놓고, 감독님한테 맡긴 채 상황 자체를 생존능력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마지막의 제 모습은 한 마리의 썩은 우럭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탄식했다.
앞서 박해수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영화 '사냥의 시간' '유령' 등에서 빌런으로 활약했다. 이어 '악연'에서도 악인을 그려낸 만큼, 연기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박해수는 "예전엔 작품이 끝나면 꼭 여행을 다녀왔다. 동해나 남해로 도보 여행을 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털어버리곤 했는데 이상하게 '악연'은 끝나고 가족여행 정도만 갔던 것 같다"며 "예전엔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촬영장 안에서 분출했다면, 어느 순간 현장에서 그렇게 순환시키고 있더라. 무대에 있을 때도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분출하면서 선순환을 느낀다. 예전엔 선배들이 현장이 재밌고, 에너지를 받는다고 이야기를 해서 부러웠다. 저는 그렇게까지 즐기지 못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재밌게 느껴지더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박해수는 "현장이 편해진다는 것이, 연기가 편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의 사람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다. 좋아하는 후배나 선배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현장이 즐거웠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냥 저에겐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박해수는 '사냥의 시간' '야차' '오징어 게임1' '수리남'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악연' 등 다수의 넷플릭스 작품에 출연하며 '넷플릭스의 아들' '넷플릭스 공무원' 등의 별명을 얻은 바 있다.
해당 별명이 언급되자 박해수는 "솔직히 예전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너무 한쪽의 배우라는 느낌이 있으니까. 저는 '배우 박해수'지, '넷플릭스 공무원 박해수'는 아니"라며 "지금은 감사하다. 어떻게 보면 리듬을 타면서 좋은 작품들 안에서 활동하게 됐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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