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하정우가 감독 하정우로 돌아왔다. 그 어떤 장르보다 힘들다는 코미디로 돌아온 감독 하정우다.
영화 '로비'(연출 하정우·제작 워크하우스컴퍼니)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정우는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어 10년 만에 새 연출작 '로비'를 세상에 선보였다. 언론배급시사회와 VIP 시사회를 통해 먼저 관객을 만난 하정우는 "VIP 시사회는 호의적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이다. 세상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이라 아름답게 본다. 하지만 개봉날부터 시작이다"라고 긴장된 모습을 드러냈다.
'로비'는 단순히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골프를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한 '로비' 골프를 앞세웠다. 재미를 위한 경기보단 원하는 바를 위해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물밑 전쟁이 동반된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제가 호기심이 많다. 자꾸 한 발자국 떨어져서 CCTV 마냥 바라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평생 이 업을 해왔기 때문에 자꾸 그렇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며 "골프장에 가서도 '저 캐디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지루하겠다' '몇 년 동안 저걸 하고 있을 텐데'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겠지' 등의 생각이 들더라.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정우는 "골프장에 올 때 모든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오늘이 그날인가' 싶다더라. 다들 오늘 최고의 골프 스코어를 낸다는 기대감을 갖고 온다고 한다. 근데 또 모두가 다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나 오늘 아파. 컨디션이 안 좋아' 이러면서 밑밥을 깐다. 그러면서 100원, 1000원에 목숨 걸고 기분 나빠하면서 내기를 한다.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라며 "그게 너무 웃겼다. 그러면서 이 소재로 캐릭터들을 넣어서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님들이나 감독님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골프장이라는 장소에 오는 캐릭터들을 갖고 영화가 시작됐다"고 출발점을 밝혔다.
'로비'는 깜짝 출연부터 작은 단역, 주요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배우 하정우를 필두로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 등이 주연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엄하늘, 이지훈, 김종수, 현봉식 등의 신스틸러들도 함께한다.
배우들 캐스팅 과정에 대해 하정우는 "'롤러코스터' 땐 인지도가 조금 부족한 배우들이 있었다. 근데 감독은 항상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역사에 남길 최고의 연기를 펼치길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롤러코스터' 땐 연극을 할 때보다 엄청나게 연습했다"며 "제 바람은 여기 나온 배우들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캐스팅을 할 때도 한 명 한 명 캐릭터를 두고 잘 어울리고,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했다. 사실 연기는 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으면 각자만의 표현법이 있기 때문에 누가 제일 잘 어울릴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진세림 프로 역할이다. 하정우는 "강해림을 캐스팅할 때 제일 많이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인처럼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의도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골프 선수가 와서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길 바랐다. 그래서 강해림을 처음 만났을 때 연기 신경 쓰지 말고, 가장 중요한 건 골프 폼이라고 얘기했다"며 "그 밖에 다른 배우 후보들도 많았지만 배우들을 그 역할에 대입했을 때 너무 능숙했다. 왠지 진 프로의 상황을 잘 참고, 모면하고, 극복할 수 있겠다는 아우라가 있어서 그런 것들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이 강해림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그렇게 캐스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프로가 맞붙는 인물은 최실장(김의성)이다. 원칙주의자처럼 보이는 최실장은 누구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검은 속내를 가진 인물이다. 그런 최실장은 진프로에 대한 팬심과 함께 서서히 '개저씨'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런 '개저씨' 최실장은 배우 김의성의 연기로 스크린에서 만개(?)한다.
하정우는 "최실장의 상황들이 코미디적으로 배치된 건 아니었다. 근데 대본 리딩 때 김의성을 통해서 최실장의 대사를 들었을 때 모든 부분에 힘이 느껴지고, 너무 웃기더라. 어느 특정한 부분이 웃긴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웃겼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갔을 때 '피식' 웃게 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물론 김의성이 실제로 그러하지('개저씨' 같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역할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의성은 워낙 젊은 친구들과 격 없이 어울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최실장이라는 인물을 도리어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다만 김의성의 합류는 삼고초려에 가까웠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간신히 합류했기 때문. 이에 대해 하정우는 "형이 시간을 끈 거다. 처음 시나리오를 줬을 땐 2고, 3고 때였다. 그땐 시나리오가 헐겁고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연 결정을 주저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제가 이렇게까지 부탁한 것에 대해서 쉽게 거절을 못하시고,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을 나중에 하시더라"며 "그래서 저도 시나리오를 열심히 고쳤다. 계속 발전시키고, 새로운 버전을 보내드리면서 어느 정도 완성도를 느끼고 출연을 결정하셨다. 형은 늘 스스럼없이 '이게 웃겨?' '이게 재밌어?'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막상 촬영이 진행되고 나선 형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과 신뢰를 갖고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정우의 연출작에서 가장 기대되는 포인트 중 하나는 '말맛'나는 대사다. 빠르게 몰아치는 티키타카는 허를 찌르는 재미를 준다. 다만 이를 연출하는 입장에선 코미디가 그 어떤 장르보다 어렵게 느껴질 터.
코미디 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하정우는 "어렵다. 진짜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코미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웃으면 웃고, 흘러가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배우들에게 대사가 괴상하거나 이상해도 절대 포인트를 주지 말고 일상처럼 연기해 달라고 했다. 이 영화에서 어느 부분을 노리고 웃겨야 한다는 건 없었다. '롤러코스터'에서도 안과 의사 장면에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터질지 몰랐다. 그런 것처럼 이번 작품도 코미디라고 해서 어려웠다기 보단 반응을 예상할 수 없어서 어렵다는 것이 조금 더 큰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한 하정우는 "저는 글을 굉장히 빨리 쓰는 스타일이다. 고민을 덜 하고, 일단 써보고 판단해서 버전도 굉장히 많다. 그런 것들에 대한 인풋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며 "저는 말을 빨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평상시에 생각과 말을 동시에 바로 할 때가 있다. 연기를 통해 그 템포가 나오려면 연습량 밖에 없다. 그래서 리딩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하정우는 "애초에 배우들한테 디렉션을 주면서 어느 부분을 웃겨야 한다는 생각보단 제가 좋아하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표정이고, 말을 빨리 하고, 괴랄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살아간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를 선보였던 하정우는 2015년 '허삼관'을 거쳐 지금의 '로비'까지 달려왔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하정우는 "'롤러코스터' 땐 제작적으로 회차가 적었고, 예산이 너무 없었다. 준비도 덜 됐었다. 축이 되는 드라마가 없었고, 너무 상황들을 이어 붙였었다"며 "이번엔 내러티브(Narrative,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가길 원했다. 창욱이가 어떠한 일이 있어서, 접대를 하고, 이런 결말을 맺는다는 줄기를 세워놓고 그 주변의 인물과 상황들을 배치해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저의 계획이었다. 그에 비하면 '롤러코스터'는 그냥 상황의 연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정우는 "사실 글을 많이 쓰면 늘고, 작품을 많이 찍으면 는다. 소재만 잘 선택한다면 기술적인 부분에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찍고, 얘기를 나누고, 작은 결과들을 맞이하면서 소재의 선택이나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떻게 수정할지 그런 것들이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성장을 짚었다.
더불어 하정우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좋은 감독도 없고, 영원히 좋은 것도 없다. 그냥 좋은 감독이 있고, 좋은 배우가 있을 뿐"이라고 덤덤히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