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미키 17' 봉준호 감독이 풍자와 휴머니즘을 스크린에 적절히 녹여냈다. SF와는 살짝 멀지만, 인류애와는 한 발 가깝다.
28일 개봉한 영화 '미키 17'(연출 봉준호·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2022년 발간된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2054년, 유일한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빚더미에 앉은 미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류는 황폐화된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우주 개척지를 찾아 나서고, 국회의원 마셜(마크 러팔로)을 필두로 얼음 행성 니플하임으로 향한다.
거대한 빚더미로 별다른 선택지가 없던 미키는 몇 번이고 죽은 뒤, 휴먼 프린팅 기술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는 익스펜더블 직업을 선택한다. 미키는 오직 인류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자처하고, 다시 '프린팅' 된다.
그러던 중 17번째 미키가 얼음 구덩이로 떨어지고, 이를 알지 못하는 개척단이 18번째 미키를 프린팅 하게 된다. 다만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는 바로 프린팅 된 인물들이 공존해 혼란을 야기하는 '멀티플'. 이에 두 미키는 들키지 않고 번갈아 죽기를 결심한다.
미키 17 리뷰 봉준호 감독 로버트 패틴슨 /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은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 영화제와 아카데미(오스카상)를 정복한 뒤 6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위트와 워너브러더스의 자본, 그리고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로 추진력을 얻고 나아간다.
'죽음'을 직업으로 삼는 미키의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이 펼쳐낸 스크린 안에서 '웃프게' 그려진다.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죽음은 불가피하지만, 그 상황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 또다시 살아나는 미키의 존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전달한다. 죽음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소름 끼치게도 미키 1부터 16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웠던 죽음들은 반복되는 휴먼 프린팅으로 관객들마저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게 소각로로 미키를 던져 넣고, 다시 기계를 통해 빠져나오는 미키의 모습은 어느샌가 당연해지고, 오히려 우스꽝스럽다. 이는 미키를 대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미키에 대한 연민이 옅어지는 순간, 관객들에게 메시지가 날아와 박힌다.
또한 이번 작품 역시 봉준호 감독 특유의 계층을 향한 블랙코미디가 두드러진다. 특히 마샬과 아내 일파(토니 콜렛) 캐릭터가 그러하다.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각자의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마샬은 뜻밖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애로운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계급 간의 획을 긋고 있는 마샬 부부의 가식은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역겹게도 현실적인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인류가 결국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랑은 더욱 빛난다. 단순히 나샤(나오미 애키)와 미키가 그려내는 러브라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인간적인 시선에서 '징그럽다'는 이유로 '크리퍼'라는 이름을 갖게 된 외계 생물체들은 매번 죽음을 맞이하는 미키를 유일하게 '처음' 구해주는 존재다. 인간들은 크리퍼들을 몰살하고자 했지만, 이들은 의미 없는 살생을 가하지 않는다. 크리퍼와 미키들의 관계를 통해 휴머니즘,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이 전해진다.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이례적으로 꽉 닫힌 해피엔딩이다. 계급과 환경, 인간의 존엄성, 휴머니즘을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녹여냈다.
다만 방대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속도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전작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충격들(센세이션함)보단 조금 더 일반적이고, 직관적이다. 신선함이 떨어질지라도, 의미를 되새길 장면들은 다수다. 광활한 우주를 기대하면 실망할 것.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은 137분이다.
◆ 기자 리뷰 한줄평 : 시간 가는 줄 알고 봤으나, 한 번쯤 기꺼이 투자할 만합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