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개미친영화".
영화 '서브스턴스'의 포스터 홍보 문구다. 과연 '최고의 미친 영화'라는 타이틀을 단 '서브스턴스'는 어떻게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홀렸을까.
'서브스턴스'(연출 코랄리 파르자)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이후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는다. 단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규칙은 주어진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해야만 한다. 과연 엘리자베스는 자신과 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서브스턴스'의 역주행 신화
지난해 12월 11일 개봉한 '서브스턴스'는 국내 박스오피스 5위로 출발했다. 이어 연말을 맞아 개봉한 대작들과 경쟁하게 된 '서브스턴스'는 1월 1주 차(2024년 12월 30일~2025년 1월 5일)와 2주 차(1월 6일~12일)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을 탄 '서브스턴스'는 역주행을 시작, 1월 3주 차(1월 13일~19일)엔 박스오피스 4위로 올라섰다. 이어 6주 차(2월 3일~2월 9일)까지 박스오피스 6위 안에 머무르며 꾸준히 관객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어 '서브스턴스'는 지난 6일 기준 누적 관객수 40만명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해외 예술 영화가 40만 관객을 넘은 것은 2014년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11년 만이다.
이 같은 '서브스턴스'의 역주행과 장기 흥행에 대해 홍보사 로스크 김태주 대표는 "초반부터 '개미친 영화', '올해 가장 미친 영화'를 강조했다. 칸영화제 및 해외 영화제 관객 반응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관객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홍보문구가 과장이 아닌, 진짜 미친 영화로 인정받으면서 이를 화제성으로 삼아 입소문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브스턴스'는 202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 이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시네필들의 선택을 받은 바 있다. '보디 호러' '고어물'이라는 마니악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특정 타깃층을 공략한 뒤 관객층을 넓혀가는 전략을 사용했다.
배급을 맡은 NEW의 영화사업부 유통전략팀 신재승 과장은 "예술영화 주 타깃인 2030 여성과 혼영족, 즉 씨네필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벤트를 구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제를 거치며 얻은 호평이 입소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굿즈를 증정하는 상영회 등의 행사를 지속 진행했다"며 "덕분에 주차 별 좌석수 감소 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고, 입소문에 불이 지펴진 이후로는 친구/커플 단위부터 중장년층까지 흡수하게 됐다. 실제로 개봉 38일째인 1월 17일은 개봉일(6.6만 석) 보다 많은 좌석수(7만 석)를 기록해 일간 박스오피스 3위까지 오르며 역주행의 신화를 일궈냈다"고 말했다.
◆ 날카롭고 강렬한 메시지, 그 중심엔 데미 무어
'서브스턴스'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비뚤어진 사회를 비판하며, 동시에 이를 향한 추악한 욕망을 담아냈다. 현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적 배경은 국내외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대해 로스크 김태주 대표는 "누구나 마주하는 보편적인 경험(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을 영화적 판타지로 표현했다. 직설적이며 강렬한 장르를 앞세운 현대의 어법으로 빠른 편집과 지속되는 음악이 요즘 시대에 걸맞은 영상을 보여준 것이 유효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특히 배급을 맡은 NEW 관계자들은 개봉 전 내부 시사 당시 모두 충격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NEW 영화사업부 유통전략팀 신재승 과장은 "충격적인 비주얼과 예측 불가 전개 속 '쇼비즈니스의 단면', '페미니즘', '노화에 대한 공포',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키워드가 떠올랐지만, 모두가 동의한 것은 '영화가 재밌다'라는 것이었다"며 "여기에서 흥행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트 영화라고 하면 난해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서브스턴스'는 쉽고 직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지루할 틈이 없는 상업 영화 격의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동시에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향한 호평도 이어졌다. 데미 무어는 '서브스턴스'를 통해 적나라한 노화 과정과 이로 인해 절망에 빠지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수에서 다시 엘리자베스가 된 뒤 외출을 망설이며 화장을 지우는 데미 무어의 연기는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를 통해 데미 무어는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어 데뷔 45년 만에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또 다른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로스크 김태주 대표는 "데미 무어라는 배우의 전사와 ('서브스턴스' 스토리라인이) 맞아떨어진 것과 아카데미 이슈도 맞물려 흥행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 날개 단 '서브스턴스', 그렇다면 韓 영화는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 그리고 설 연휴엔 극장가 대목을 노리고 다수의 한국 영화들이 출격했다. '서브스턴스'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제작비 300억원의 '하얼빈', 콜롬비아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낸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오컬트 신화 '검은 사제들'의 후속편 '검은 수녀들', 가족 단위 관객을 노린 코미디 영화 '히트맨 2' 등이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다만 열띤 홍보 전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개봉한 작품들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히트맨 2'와 '검은 수녀들' 뿐이다.
특히 지난해 흥행 TOP 15 작품들 중 외화는 7편('인사이드 아웃2', '웡카' '모아나 2' '위키드' '듄: 파트2' '에이리언: 로물루스' '데드풀과 울버린')이다. 이어 '서브스턴스'가 두 달째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기 흥행에 돌입, 올해 역시 외화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다만 NEW 영화사업부 유통전략팀 신재승 과장은 "과거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화의 규모나 흥행 정도를 예측하는 판단이 맞지 않은 경우가 많이 생긴다"면서도 "상업 영화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듯 해외 예술/아트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데 있어 최근 관객의 정확한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로스크 김태주 대표는 상영관 확보와 상영 기간에 대한 중요성을 짚었다. 김 대표는 "'서브스턴스'의 이와 같은 흥행은 장기적인 상영을 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최근 흥행작 트렌드가 단기적인 관객 몰이가 아닌 장기 상영으로 인한 꾸준한 입소문과 관객 흥행인 것처럼, 극장들도 영화들을 일시적으로만 상영하고 대작들이 개봉하면 일제히 한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장기 상영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