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국회를 밝혔다. 형형색색 물들은 거리에는 에스파, 지드래곤, 로제, 소녀시대 등 K팝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어수선한 시국 속 어느 때보다 한 마음으로 뭉친 K-팬덤이다.
지난 7일 국회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가 열렸다. 비상계엄 사태 후 한 마음이 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100만 명이상.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알록달록 빛나는 응원봉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은 에스파의 '위플래시', 로제 'APT.', 지드래곤 '삐딱하게' 등 아이돌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일부는 노래를 개사해 윤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응원봉에 '탄핵' 스티커를 붙여 목소리를 냈다. 나만의 최애, 연예인을 응원하던 응원봉이 이순간만큼은 모두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촛불'이 된 셈이다.
화력은 대단하다. 시위라는 것은 본디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연상케한다. 하지만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아이돌 노래를 떼창하는 광경은 마치 축제와 같았다. 질서정연한 팬덤 문화도 고스란히 시위로 이어졌다. 혼잡할 수 있는 인파에도 능숙하게 질서를 찾아갔고, 하나 돼 평화적이었다.
K팝 팬덤의 순기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K팝은 단순히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떨쳐나가며, 팬덤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결속력을 최우선하는 K팝 팬덤은 국가적인 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빠르게 하나가 됐다.
이색적인 현상에 외신들도 집중했다. AFP통신은 "집회 참가자들이 K팝을 들으며 즐겁게 뛰고,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집회는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또한 "국회 앞 시위가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고 주목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30대 아이돌 팬도 "축제같았다. 정말 재밌었다. 노래마다 응원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 집회는 K팝의 파급력, K-팬덤의 강점이 십분 발휘된 현상이기도 하다. 문화, 아이돌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 돼 응원한다'는 기조로 정치적 문제에도 적극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정치인이 아닌데 목소리를 왜 내냐'는 경솔한 생각은 K-팬덤에겐 없었다. 하나로 뭉칠 때는 뭉칠 줄 아는 성숙한 팬덤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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