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서현진의 연차가 쌓였다. 한자리에, 오래, 꾸준히를 꿈꾸고 있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극본 박은영·연출 김규태)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총 8부작이다.
서현진은 극 중 기간제 결혼 매칭 회사 NM(New Marriage) 소속 노인지를 연기했다. 서현진은 "인지를 공감할 수 있어서 이 대본이 좋았다. 인지는 결국엔 상냥했던 인물이다. 도하(이기우)의 집은 인지의 내면 같았고, 가지고 있는 직업은 외적인 모습 같았다"며 "그게 마치 평행 세계처럼 공존했다. 누구나 사회적인 모습이 있지만, 방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 나만 아는 내 모습이 있지 않냐. 그런 인지의 모습이 공감이 돼서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트렁크' 속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캐릭터는 노인지다. 한정원(공유)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도하의 빈집을 꾸준히 채워 넣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둥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덕분에 노인지를 연기한 서현진 역시 다양한 준비 단계를 거쳐야 했다.
서현진은 "탱고도 배우고, 카약도 촬영 당시 직접 가서 배웠다. 탱고가 쉽게 접하거나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다 보니 촬영 두 달 전부터 배워야 했다. 일부러 힘들까 봐 촬영 순서를 맨 뒤쪽으로 미뤄났다. 그러다 보니 촬영 쉬는 날 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더라"며 "결국 제작사 대표님께서 '탱고 드라마도 아닌데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셨다. 덕분에 적당히 농땡이를 피우면서 찍을 수 있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다만 극 중 유독 마른 체격으로 등장하는 노인지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이에 대해 서현진은 "카약신을 길게 찍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더라. 문제는 제가 현장에 반려견을 같이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까 제 짐도 있는데, 아이 짐도 있고, 밥시간에도 반려견을 먹이고 제가 먹어야 해서 밥을 먹을 새가 없더라"며 "화장실에 갈 때도 짖을까 봐 데리고 가는 바람에 힘이 2배로 들어서 살이 빠졌다. 일하면서 빠진 게 아니다. 애를 챙기다가 빠졌다. 면목이 없다"고 웃음을 보였다.
초반부 노인지는 한정원과 사랑에 빠질 리 없다고 단언한다. 노인지에게 한정원은 계약 결혼 상대 중 한 명으로, 일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마침내 사랑에 빠진다.
그런 노인지의 감정선에 대해 서현진은 "사실 정원이를 처음 본 대학생 때부터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 힘든 시기에 나눴던 대화가 좋았다.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좋았다. 똑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때가 있지 않냐"며 "감정이 변했다기 보단 처음 그 감정에서부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스텝이 시작됐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인지는 자신이 정원이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고, 내가 이 사람을 구해줄 수 있다고. 근데 결국 정원이가 먼저 움직여서 인지를 깨부수어준다. 그게 현실적으로 보였다. 원래 자신의 그림자는 자기가 잘 못 보지 않냐"고 말했다.
한정원을 밀어냈던 노인지의 가슴속엔 오랜 연인 서도하가 있었다. 과거 노인지의 스토커인 엄태성(김동원)이 노인지의 엄마에게 서도하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제보한다. 서도하는 결국 노인지의 엄마에 의해 전국적으로 아웃팅 당하고, 돌연 자취를 감춘다.
서현진은 서도하와 노인지의 관계성에 대해 "인지는 도하를 향한 사회적인 편견에 자신이 방패막이 되어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얄팍한 생각이냐. 지켜줄 수 없고, 쉽지 않다. 그래서 남아있는 집을 지키는 인지가 용서받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집을 깨끗하게 닦고, 요리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도록 하는 게 속죄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처음엔 오기였고, 다음엔 자신에게 주는 형벌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현진은 "사실 인지는 도하에게 용서받기 전엔 자신이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하를 계속 기다렸던 것도, 용서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걸 계속 밀어낸 거다. 아직 용서받지 못했으니까. 도하와 재회 장면에서 '그런데 도하야, 5년이야'라는 대사를 한다. 사실 그냥 헤어지면 되는데 도하가 떠났던 시점에 그대로 멈춘 집을 가꿔준다는 건 서로에게 필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기우와도 그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라는 마지막 대사가 인지의 본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한정원과 노인지는 한없이 달달해진다. 그러나 서현진은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너무 간지럽다"고 웃음을 보였다. 이어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말랑거리면 안 그럴 텐데, 갑자기 안 그러다가 (애정신이) 끼어들어오니까 굉장히 간지럽더라"며 "키스신에서 저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과 공유는 ''쪽'은 아닌데'라고 하더라. 근데 감독님이 '알지?'하고 가셨다. 알긴 뭘 알겠냐. 그냥 우리한테 던지고 가신 거다. 저도 공유에게 '알아서 잘 부탁드려요!'라고 던졌다. 근데 신을 잘 운용해 주셨다. 덕을 많이 봤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서현진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로코퀸'이다. 앞서 '또 오해영' '사랑의 온도' '뷰티 인사이드'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서현진은 동시에 익숙한 얼굴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이에 대해 서현진은 "걱정이 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하다. 물론 새로운 얼굴을 보여드린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그냥 웬만하면 캐릭터가 많이 겹치지 않게 선택하는 것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며 "최근엔 작품의 어둡고 밝은 느낌을 떠나서 대중한테 보내는 편지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 묻고 답할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연차가 쌓일수록 롤모델을 꼽던 입장에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서현진은 "그런 얘길 들으면 연기만 잘해야 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잘 살아야 될 것 같아서 굉장히 무섭다"면서도 "저도 롤모델이 있으니까 어땠나 생각해 보게 된다. 저의 롤모델 선배들을 빗대어본다면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이 길을 계속 가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된다. 저도 제 자리에서 대단히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단 꾸준히 하고 있다면 그 친구들이 좋으려나 싶은 생각을 지금 해본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서현진은 "제 롤모델 선배들은 많다. 한석규 선배, 전도연 선배 등 햇수가 늘어날수록 이 일을 계속하는 선배들이 대단하시다고 느낀다"며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지나오셨을까 싶다. 한 자리에 꾸준히 오래 계신 분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쉽지 않다"고 웃음을 보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