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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 김가영이 말하는 당구 그리고 인생…"당구, 힘들고 외로워도 옆에 있어 준 친구" [ST인터뷰]
작성 : 2024년 11월 18일(월) 07:00

김가영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김경현 기자] "당구는 항상 옆에 있어 주는 친구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외롭더라도 당구대는 옆에 있다"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이 지금까지 굴곡진 당구 인생을 돌아봤다.

김가영은 지난 10일 프로당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24-25 LPBA 결승전서 김민영(우리금융캐피탈)에게 세트스코어 4-3(4-11 7-11 11-0 2-11 11-2 11-8 9-3)으로 승리, LPBA 통산 11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우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LPBA 최초의 4연속 우승과 PBA-LPBA 통합 최초 24연승 신기록을 쓴 것. 종전 기록은 이미래(하이원리조트)가 기록한 3연속 우승,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이 기록한 23연승이다.

새로운 금자탑을 쌓아 올린 김가영을 스포츠투데이가 만났다. 15일 경기도 고양에 있는 김가영의 개인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우승 소감을 물었다. 김가영은 "여느 다른 우승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승을 했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럽고 기분 좋다. 그렇다고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은 정도"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1996년 포켓볼을 시작으로 당구 무대에 데뷔한 김가영은 어느새 28년 차 선수가 됐다. 김가영은 "(어릴 때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라면서도 "지금은 감정이 움직일 연륜이 아니다"라고 베테랑의 관록을 보였다.

그러면서 "아직 성장하는 단계라서 더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쉬운 결승은 없었지만, 유독 이번은 쉽지 않았다. 생애 첫 결승 무대에 오른 김민영은 기세를 몰아 김가영을 1-3까지 밀어붙였다. 패배의 끝자락에서 김가영은 3세트를 내리 따내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3으로 밀릴 때 불안하지 않았냐고 묻자 "선수는 늘 불안과 싸운다. 불안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얼만큼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불안이 1-3이기 때문에 올 때도 있고, 이기고 있기 때문에 올 때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늘 나를 불편하게 한다"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내려올 수 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실망스럽지 않다. 그래서 저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고 내려올 마음가짐과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답했다.

김가영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결승전에서 굉장히 안 좋은 경기력으로 많이 졌다"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실력에 50~60%밖에 발휘를 못 하고 내려와 속이 많이 상했다. 지금은 대회 나가면 70~80% 정도는 발휘하고 내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을 확정 지은 후 김민영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김가영은 "우리나라 분위기상 2등은 늘 할 것이 없다. 외국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2등도 그 자리에서 이야기도 하고 사람들이 박수도 많이 쳐준다. 그런 것이 아쉽더라. (김민영도) 되게 잘한 거고 멋있었다. 그 친구 최고 성적이다. 그냥 도망치듯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2024-2025시즌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같은 선전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김가영은 시즌 초 64강에서 연이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연속 첫판 탈락은 커리어 최초의 일이다.

김가영은 "빌드업 없이 도출되는 결과는 없다. 약이 됐다. 늘 안 좋은 결과가 있을 때 '나중에 얼마나 좋은 결과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노력을 무지하게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은 것 아닌가. 그러면 기다리면 된다. 계속 노력하면서. 그러면 결과는 언젠가 몰아서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김가영 / 사진=팽현준 기자


당구 인생의 시작은 아버지다. 김가영이 어릴 때 아버지는 당구장을 운영하셨고, 김가영은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취미로 하루에 1시간씩 치다 보니 중학교 1학년 때 400~500점을 쳤다.

김가영은 "아빠가 원래 선수 생활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취미를 넘어 특기로 하나 정도 있으면 재미있으니 치라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프로 세계에 입문하자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진행했다. 김가영은 "아침에 일어나서 사이클 타야지. 학교 잠깐 갔다 온 다음 훈련해야지. 훈련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 해야지. 중학생이 그 생활을 했다. 당구 선수인지 유도 선수인지 헷갈렸다. 심지어 유도는 비슷한 (또래) 친구라도 있지,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위 선배는 20대 중반이고 나는 중학생이었다. 여기 가도 외톨이, 저기 가도 외톨이인데 몸은 고통스러웠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만으로 당구 유학을 떠났다. 김가영은 "좋은 기억도 있고 아픈 기억도 있다. 제2의 고향 같다. 제가 정확히 18세 때 대만으로 떠났다. 거기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라고 대만 생활을 회상했다.

대만의 환경은 혹독했다. 날씨는 덥고 습하고. 천장에서 물이 새며, 찢어진 테이블에서 시합한 적도, 지진이 나는 데 큐대를 잡은 적도 있다. 김가영은 "그래서 제가 환경 탓을 안 한다"라면서 "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냥 한다. 내가 거기에 갔으니 맞춰서 살아야 하잖나.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편안하게"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김가영은 2006 도하 아시안게임 포켓볼 대표팀에 참가했다. 당시 포켓볼 대표팀에 통역이 배정되지 않았고, 대만과의 경기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김가영이 자연스럽게 통역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대만당구협회의 미운털이 박혔고, 김가영은 2년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김가영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만 시합 못 나가면 미국이나 한국 시합 나가면 되지 않나. 2년 못 나가는 거야 그렇다 치는데 내가 첫 정을 준 나라 아닌가"라면서 "당시에는 한국 선수들보다 대만 선수들이랑 훨씬 친했다. 사건 당사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라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친구들도 뒤에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이 거의 없다. 당구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종목이다. 그것 때문에 (대만당구협회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까 이슈를 만드는 것이고, 내가 제물이 된 것이다. 협회도 미안하니까 6개월 만에 풀어주긴 했다"라고 전했다.

김가영 / 사진=팽현준 기자


포켓볼에서 3쿠션으로 종목을 변경한 계기도 극적이다. 김가영은 2019년 출범한 프로당구 LPBA 투어 파나소닉 오픈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했다. 대한당구연맹은 이를 걸고넘어졌고, 김가영에게 제명의 징계를 내렸다. 결국 김가영은 포켓볼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됐고, 3쿠션 선수로 전향을 선언했다.

김가영은 "앞서 프로 무대를 만든다는 시도가 몇 번 있었다. 결과적으로 잘 안됐다. 그쪽으로 갔던 선수들도 다 복귀가 됐다. 지금까지 제명당한 선수가 없었다"라면서 "그런데 이번에 이분들(PBA)이 오신 거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준비해 오신 내용이 탄탄했다. 그리고 PBA가 제일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3쿠션으로 시작을 하지만 포켓볼도 프로를 만들겠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도음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가영은 "징계받을 각오는 했다. 그런데 제명은 생각하지 않았다. 기존에도 실업 리그가 생긴다고 나갔다가 다 복귀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3쿠션 선수로 전향했고, 같은 해 12월 열린 SK랜터카 챔피언십에서 류지원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의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앞섰다. 김가영은 "(3쿠션) 연습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 때였다. 아카데미도 하고 있을 때다. 시합 나가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1시간 연습할 때다. 어느 정도였냐면 (경기 전) 연습 시간 2~3분 주지 않나. 그때 뭘 연습해야 할지도 몰랐다. 테이블 파악하려고 치는 건데 모르겠더라. 그럴 때 우승을 했다"라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이후 3번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김가영은 "2020년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 시작한다고 바로 잘하나. 연습을 안 했을 때도 우승을 해봤으니까 욕심이 있는 거다. 오히려 부담만 되고, 부담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치가 없으니 더 안됐다"라고 말했다.

김가영은 당구계에서 유명한 '취미 부자'다. 수영을 시작으로 수상스키, 스쿠버다이빙 등을 오래도록 즐겼고,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흠뻑 빠져있다.

취미를 정하는 조건은 오직 '당구'다. 김가영은 "반사신경을 필요로 하는 운동은 제가 많이 다친다. 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