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지난달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에는 무려 2만3000여 명의 갤러리가 방문했다. 가장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 선수는 김주형이었다. 약 2년 5개월 만에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김주형을 보기 위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골프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고국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나선 김주형은 팬들의 기대에 걸맞은 플레이로 보답했다. 1, 2라운드에서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리더니, 3라운드에서는 공동 선두로 도약하며 우승 경쟁에 뛰어 들었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안병훈과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비록 우승 트로피는 안병훈에게 내줬지만, 김주형이 필드에서 보여 준 모습은 골프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경기 후 김주형은 화를 참지 못하고 거칠게 라커 문을 잡아당겼고, 이로 인해 라커 문이 파손됐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직후였다고 하지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행동이었다. 이 사실은 골프 팬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겼고, 김주형은 언론 인터뷰와 개인 SNS 등을 통해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다만 사과만으로 끝나기엔 사건이 너무 커져 있었다. KPGA는 해당 사건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김주형은 출석하지 않았고, 김주형의 대리인이 대신 출석했다. 또한 김주형의 진술서도 함께 제출됐다. 심의를 진행한 상벌위는 김주형에게 경고 조치를 부과했다.
이번 징계는 이사회 승인을 거쳐 확정되며,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15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경고 조치가 KPGA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인 데다, 선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는 만큼 이번 사건은 이대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필요 이상으로 커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 정도는 매우 경미했다. 라커 문을 부쉈다기 보다는 경첩이 떨어진 정도이고, 해당 골프장 측도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KPGA와 함께 대회를 공동 주관한 DP월드투어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작은 해프닝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김주형이 감정적인 행동이 잦은 것도 사실이다.
김주형은 지난 8월 대회 도중 버디 퍼트에 실패하자 퍼터로 그린을 내리 쳐 디봇을 만들고도 이를 복구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김주형의 캐디가 대신 복구했지만,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9월 프레지던츠컵에서는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세리머니를 하다가 공을 너무 늦게 꺼냈고, 상대팀 선수인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퍼트를 할 때 먼저 다음 홀로 이동해 매너 논란에 휘말렸다. 이번 사건까지 포함하면 최근 3개월 간 한 달에 한 번 꼴로 스스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김주형은 현재 임성재, 안병훈, 김시우 등과 한국 남자골프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세계랭킹은 25위로 한국 선수 중 두 번째로 높다. 2024 파리 올림픽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으며, 프레지던츠컵에도 인터내셔널 팀의 멤버로 2회 연속 출전했다. 수많은 유망주들이 자신이 제2의 김주형이 되기를 바라며 땀을 흘리고 있다. 김주형에게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부서진 문짝은 수리할 수 있지만, 손상된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렵다. 이번 KPGA의 경고 징계가 김주형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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