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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 유재명의 메이드(made) [인터뷰]
작성 : 2024년 08월 12일(월) 07:41

행복의 나라 유재명 인터뷰 / 사진=NEW 제공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유재명이 배역 그 자체가 됐다. 테이크(Take)와 메이크(Make) 사이 자신만의 '빌드업'을 찾은 유재명이다.

'행복의 나라'(연출 추창민·제작 파파스필름)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다.

특별출연과 우정출연을 제외하고 영화 '킹메이커'(2022)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유재명은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니까 참 설레고 떨린다. 한참 전에 내부 시사 때 편집이 덜 된 상태에서 본 적이 있는데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들이 왔다 갔다 했다"며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 됐다. 제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게 쉬운 것이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라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고 털어놨다.

행복의 나라 유재명 인터뷰 / 사진=NEW 제공


유재명은 극 중 故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합수단장 전상두 역을 맡았다. 유재명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다. '전상두'라는 이물이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의 이야기를 빌드업시키거나, 인물을 표현하기엔 분량도 그렇고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강력한 이미지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했다"며 "얼마 시간이 지나고 설명할 순 없지만 계속 그 인물이 떠올랐다. '이태원 클라쓰' 때도 처음엔 박새로이 아버지 역할이 들어왔는데 스케줄 때문에 거절했다가 장가 이미지가 잔상에 남아서 '제가 장가를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메이드가 됐다. 그때처럼 지인에게 '시나리오를 한 번만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누가 정해지셨냐'고 물어본 뒤 '아직 안 정해졌다'고 하길래 '한 번만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재명은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여러 이미지들 중에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들과 눈빛들이 잔상에 남았다.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 표현된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은 앞서 '남산의 부장' 서현우, '서울의 봄' 황정민 등이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어 '행복의 나라'로 바통을 이어받은 유재명의 입장에선 부담감이 있었을 터다.

유재명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산의 부장' '서울의 봄' '행복의 나라'처럼 그 시대를 다루는 영화가 연작처럼 나오는 것이 너무나 고무적이고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이젠 우리 시대가 예민하고 정치적인 걸 영화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좋다"며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지만, 비교보단 각각의 작품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고, 각자의 장점이나 매력들에 포커스를 맞춰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유재명은 "제가 '킹메이커'에서 김영삼 역을 했고, 설경구 선배가 김대중 역을 했다.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역시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편견과 선입관 역시 강하다. 그 인물의 이미지, 말투, 살아온 길이 있기 때문"이라며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맡으면서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저희 영화만의 맥락에서 전상두는 어떤 포지션이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앞서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 선배가 뜨겁고,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얻어내는 모습을 봤다면 저는 술수와 편법과 상대를 가지고 노는 듯한 뉘앙스로 자신만의 야욕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가 촬영할 땐 '서울의 봄'을 몰랐다. 아마 알았다면 헷갈렸을 것 같다.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저희 작품에 잘 집중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캐릭터의 내면을 세운 뒤엔 외면에 집중할 차례였다. 유재명은 "분장팀, 감독님과 콘셉트를 정리하면서 머리를 테스트 삼아 면도하고 라인을 정리해 봤다. 저는 살면서 제가 전두환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닮았다고 하니까 너무 놀랐다"며 "보안사령관이 사건 브리핑하는 장면을 내부 시사 때 보면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내 얼굴에 그 사람이 있다고?' 싶었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신 분들의 도움으로 잘 메이킹이 된 것 같다"고 웃음을 보였다.

다만 전상두는 박태주, 정인후에 비해 분량 자체는 적은 편이다. 한정된 분량 내에서 유재명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만큼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유재명은 "대사가 많고, 분량이 많고, 전상두가 자신의 야욕을 빌드업하는 과정이 더 많았다면 아마 저는 더 강력한 인물로 표현하려고 애썼을 것 같다"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캐릭터가 멋있고, 폭발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분량이 많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딜레마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제 분량이 많았다면 '유재명 너무 욕심부린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다. 동료들의 다른 인물 연기를 바라보면서 제가 저들의 연기 리듬을 이어주고, 권력으로 누르는 것을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다.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다행스럽게도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모티브가 된 인물을 쫓아가려 하지 않았다. 유재명은 "초반엔 영상도 찾아보고,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장교가 됐고, 어떻게 자신의 사조직을 만들었는지 공부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게 되더라. 그 인물이 우리 작품 안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의 나라 유재명 인터뷰 / 사진=NEW 제공


여기엔 추창민 감독의 도움이 있었다. 유재명은 "제 촬영 3일 전쯤에 전주로 내려가서 감독님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배우들은 촬영 직전에 불안감에 시달린다. 준비한 것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내가 준비한 것들이 맞을지, 틀리면 어떡할지, 이런 부담감이 기본적으로 따라온다"며 "제가 예전에 연극할 때 테이크, 메이크 개념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이 있다. 어떤 배우들은 만들어야 하는 캐릭터가 있고, 어떤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개념이라 연출과 연기를 하면서 선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래서 감독님께 저를 메이크 해달라고 요청했다. 근데 감독님이 놀라시면서 배우가 본인에게 직접 자신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낯선 경험이라고 하시더라. 그때 감독님께서 '재명 씨, 같이 만들어봐요'라고 답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와 함께 유재명은 "한 장면에 정말 많은 버전이 있었다. 한 테이크당 10개 이상이 있었다. '오케이'가 나도 '재명 씨,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거 있어요?'라고 물어보셨고, 제가 '이렇게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들은 버전이 10개씩 나온다. 이 영화가 잘 돼서 디렉터스 컷이 2시간 30분 나오면 새로운 전상두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행복의 나라'는 개봉을 앞두고 지난해 말 주연을 맡은 배우 故 이선균이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나며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해 유재명은 "이번 영화가 개봉하면서 '배우 이선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선균에 대한 여러 가지 마음들은 이미 충분히 잘 말씀드린 것 같다. 이런 얘기들이 절제되고 '배우 이선균'이 어떤 배우였는지, 그의 연기 자체에 집중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작품의 제목을 처음 접한 이들은 '행복의 나라'가 희망찬 이야기를 그려낼 것이란 추측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행복의 나라'는 결코 '행복의 나라'가 될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렇다면 유재명이 해석한 '행복의 나라'는 무엇일까. 그는 "'행복'이라는 가치는 모든 개인에게 절대적인 가치가 아닐 것"이라며 "'행복의 나라'를 떠올렸을 땐 복합적인 질문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 시대를 통과해서 2024년을 살고 있는 지금 가장 원론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소소한 행복들이 짓밟히고, 유린된 시간들을 돌이켜봤을 때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우리나라는, 나의 조국은 그런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현재도 해소되지 않은 채 개인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상당히 직접적인 제목임과 동시에 함축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는 살아있다' 이렇게 해버리면 아쉬울 것 같다. 마지막에 '행복의 나라' 음악이 나올 때 그 가사와 딱 떨어지더라. 정말 가슴을 치고 가는 노래였다"고 이야기했다.

행복의 나라 유재명 인터뷰 / 사진=NEW 제공


특히 유재명은 최근 첫 공개된 U+ 모바일tv 오리지널 시리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에 이어 영화 '행복의 나라'로 대중과 만나게 됐다. 연달아 두 작품을 선보이게 된 유재명은 "계획하고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연치 않게 시기가 비슷해서 겹쳤다. 거기에 악역이라는 점도 그렇다"며 "'유재명'이라는 배우는 전략적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NO 전략'이 전략이다. 행복하다. 두 작품 다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까,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작품이 들어온다면 어떤 이미지가 나한테 도움이 될지,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 그런 생각 없이 그저 배우로서 작품과 캐릭터와 관계성만 생각하며 지금처럼 한 작품, 한 작품 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서 나이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유재명은 현재 상영 중인 '행복의 나라'에 함께 출연한 조정석의 또 다른 작품 '파일럿'을 언급하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승세라고 들었다. 그런 코미디 영화도 잘 됐으면 좋겠고, 저희 영화도 잘 됐으면 좋겠고, 한국 영화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며 "잘 모르지만 귀동냥으로는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냐. 일단 저부터 시작해서 극장을 찾은 적이나 찾아가는 횟수가 많이 작아졌다. 이번 여름엔 좋은 영화들이 각자의 매력을 가진 영화들과 다 잘 돼서 극장이 좀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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