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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호의 이지뮤직]EXID의 차트 역주행을 통해 본 대중과 가요계
작성 : 2015년 01월 02일(금) 15:23

[스포츠투데이 문선호 기자]음악이 앨범 단위보다 음원 단위로 판매되기 시작하고, 온라인 음원사이트가 오프라인 시장을 압도하면서 실시간 음원 차트는 신속하게 변화하는 가요계의 동향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로 기능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 듣는 음악은 차트의 상위권에 머물며 미처 그 음악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손쉽게 끌어들이고, 이렇게 진입한 신규 청취자들의 호기심 어린 선택은 상위권 음악들의 아성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차트의 상위권에 한 번 노출된 음악은 계속 상위권에 머물거나 더 높은 순위로 오르는 게 다른 음악들에 비해 용이하며, 실시간 차트의 흐름은 차트의 한계 정점에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례들이 있는데, 이를 '차트 역주행'이라고 한다.

차트를 역주행하는 음악들은 발표 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건들로 인해 대중들에게 다시금 재조명을 받아 인기를 누리고, 차트의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정점까지 치고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차트 역주행은 대부분 방송에 의해 옛 히트곡들이 대중들에게 다시 들려지면서 발생하며,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90년대 음악을 재현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방송 후 S.E.S와 터보 등의 노래가 실시간 음원 차트에 오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엑스아이디(EXID)가 지난해 8월 27일에 발표한 '위아래'의 차트 역주행은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위아래'는 발매 직후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근접한 적이 없었음은 물론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재조명한 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아래'는 11월 중순부터 실시간 차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포털사이트와 유튜브에 'EXID 위아래 직캠' 관련 키워드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정 집단의 관심으로도 상위권 가능? - 음원 시장의 규모 문제

'위아래'의 역주행은 한 팬의 '직캠'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직캠'이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뜻하는 줄임말로, 인지도가 크지 않아 방송 활동이 제한적이었던 EXID의 오프라인 공연을 촬영한 팬이 이 직캠 영상을 웹에 게시하면서부터 EXID와 '위아래'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들이 주축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영상이 뜨거운 관심을 받자 음원 차트에서도 덩달아 '위아래'의 주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위아래'의 직캠을 통해 EXID의 팬이 되거나 '위아래'를 듣기 시작한 음악팬들의 선택은 이 노래를 음원 차트로 다시 소환했고, 11월 중순부터 '위아래'의 역주행이 시작됐다.

이 현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특정 집단의 집중적인 음원 선택으로도 실시간 음원 차트의 순위에 큰 폭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꿔 얘기하자면, 어떤 특정 집단이 계획적으로 한 음원이나 음반을 '밀어준다'면 그 음악은 실시간 음원차트 상위권에 노출될 수 있고, 앞서 밝힌 매커니즘에 의해 진입장벽이 낮아져 신규 청취자들을 손쉽게 확보하면서 음원 차트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대형 기획사에서 나온 음악들은 대박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박"이라는 업계의 속설은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어느 정도 규모의 팬덤을 가진 가수들의 음악은 짧은 기간이라도 음원 차트 상위권을 반드시 거치는 일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조금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음원 차트에는 '좋은 음악'이 오르는 게 아니라 '팬덤이 있는 음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특정 집단에 의해 음원 차트가 출렁일 수 있다는 건, 우리 음악 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작다는 걸 의미한다. 적은 인구수뿐 아니라 세대별 음악 선호도 차이가 크고, 음악 소비 방식 차이가 큰 것도 이런 현상을 한 몫 거들고 있다.

묻힌 음악은 얼마나 될까? - 음악이 아닌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

'위아래'가 11월 중순 이후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음원차트 상위권에 위치하거나 심지어 1위 자리(멜론과 벅스, 1월 2일 오후 3시 기준)를 꿰차고 있는 것을 단순히 안무의 선정성 때문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 노래는 중독적인 훅과 감각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으며, 음악성으로도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롱런할 수 있었던 노래가 발표 직후부터 재조명 받기 전까지 음원 차트 100위 안팎에 머물 수밖에 없던 건 아이러니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지 못한 무수히 많은 노래들 역시 음원 차트 1위에 오를 만한 음악성을 갖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묻혀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사실은 우리들이 음악을 스스로 '선택해서 듣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음악들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듣는 게 아니라 미디어나 마케팅 기법들을 통해 알게 된 음악들을 우리가 듣고 있다고 설명한다면, 이번 '위아래'의 역주행과 뒤늦은 EXID의 재조명은 쉽게 설명된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년 댄스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텔라 안무의 선정성과 여러 가수들의 각종 노이즈마케팅 기법, 방송 출연에 목말라하는 신인 가수들의 태도는 업계 사람들 모두가 이런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다. 대중들은 음악이 아닌 이미지를 소비한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주목하는 음악은 한 번쯤은 꼭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자

우리는 마음 놓고 음악을 탐색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여유롭게 살펴볼 시간조차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음악 시장은 점점 작아지며, 우리는 남이 주목하는 음악을 재빨리 듣고 마는 바쁜 음악 문화를 향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어떤 특정인의 잘못이 아닌 우리 사회의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이런 문제는 우리 인식의 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바꿔갈 수 있다. 처음 mp3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음악으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을 거라 절망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법률 제반 여건의 변화를 통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음원 시장을 확립하는 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더 이상 음원 차트나 미디어, 마케팅에 노출된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폭 넓은 음악을 탐색하고 인디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나라 음악 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해 더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EXID의 차트 역주행은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위아래'가 재조명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제 소위 메인 스트림에 편승하는 데 성공한 EXID가 자신들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지 않게 하는 데에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 이제 듣고 싶은 음악을 듣자./[문선호의 理智뮤직] 끝.

문선호 기자 ueberm@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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