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쑥스럽고 겸연쩍은 기분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한 게 대단한 일처럼 말해져서 겸연쩍은 기분이 듭니다."(신재평)
"10년 전 10주년 때는 훨씬 더 겸연쩍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닌데. 그때는 '기념행사를 하지 말자' 얘기도 했어요. 20년을 맞이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좀 얘기할 게 있겠다' 싶긴 한데 그때도 겸연쩍고 지금도 겸연쩍어요."(이장원)
밴드 페퍼톤스(PEPPERTONES, 신재평 이장원)는 인터뷰 초반 "겸연쩍다"는 말을 자주 발음했다. 데뷔 20주년을 향한 주변의 칭송이 매우 겸연쩍다는 것.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페퍼톤스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났다. 내심 "우주 대스타"를 꿈꾸며 달려왔다는 '인기 밴드' 페퍼톤스를 만났다.
2004년 데뷔한 페퍼톤스는 데뷔 20주년을 맞이해 17일, 20주년 기념 앨범 '트웬티 플렌티(Twenty Plenty)'를 발매했다. 이번 앨범은 리메이크 곡과 신곡이 2CD로 담겼다. 먼저, CD 1 '서프라이즈!!(SURPRISE!!)'에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새롭게 재해석한 페퍼톤스의 대표곡 10개 트랙이 실렸다. 잔나비, 루시, 나상현씨밴드, 유다빈밴드, 스텔라장, 권순관, 이진아, 드래곤포니 등이 참여했다.
CD 2 '<<리와인드(REWIND)'에는 타이틀곡 '라이더스'를 비롯해 'rewind', '코치', '불쑥', 'dive!', '스퀴즈번트', '왜냐면..', 'home', '늦여름하늘' 등 페퍼톤스의 반가운 신곡 9곡과 지난해 3월 발매한 'Freshman'의 리믹스 버전까지 10곡이 수록됐다.
페퍼톤스는 어렴풋이 '스무 번째 생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오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20주년 기념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페퍼톤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다른 가수들의 페퍼톤스 음악 리메이크가 A SIDE에,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되지 못했던 페퍼톤스의 미발표곡들이 B SIDE에 들어갔다.
다만 리메이크의 경우, 페퍼톤스가 주도한 건 아니었다. 소속사 안테나에서 아티스트 섭외부터 모든 것을 진행했고, 페퍼톤스는 모든 것을 수긍하며 따라갔다. 이장원은 "회사에서 '리메이크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을 때 우리는 겸연쩍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해주세요' 허락한 게 저희의 제일 큰 공이다. 곡 선정은 회사와 섭외 아티스트들의 소통으로 이뤄졌다. 저희가 직접 한 건 없다. 겸연쩍어서. 우리 노래를 모를 수도 있는데 '우리 노래 리메이크해줄래?' 할 수가 없지 않나. 곡들은 그분들께서 좋아하시는 곡들을 골라주셨다고 보시면 된다"고 했다.
이어 "작업 초기에는 스케치 같은 게 오고 갔는데 너무 겸연쩍어서 들을 수가 없더라. '이런 부분이 아쉬운데요? 그런 건 못하겠다. 그냥 완성되면 들어보겠다' 했다. 애초에 리메이크 앨범이 페퍼톤스의 20주년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접근했기 때문에 완성 단계 때 곡을 들었는데 정말로 선물을 뜯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신재평은 "'10팀이나 모아서 리메이크를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다. 회사에서 '어떤 어떤 분들로 라인업을 꾸리면 좋겠다' 공유해 주셨는데 저희는 그야말로 '되면 참 감동적이고 고맙겠네요'라고만 했다. 근데 '연락을 했더니 많은 팀들이 다 흔쾌히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시기로 했다' 해서 감격스러웠다. 저희는 감사한 마음으로 A SIDE를 받아들었다. A SIDE 부제가 '서프라이즈'다. 이 음반을 듣게 될 청자한테도 서프라이즈고, 저희한테도 깜짝 선물 같은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미공개곡들이 다수 포함된 B SIDE로는 그동안 갖고 있던 아쉬움을 털 수 있었다. 이장원은 "'20년 어치의 음악적 관록과 전에 없었던 사운드를 들려주겠어' '마스터피스', 그런 것보다는 20년 동안 있었던, 알려지지 않았던 소소한 일들을 모아서 들려질 수 있으면 우리의 아쉬움을 해결하면서도 들으시는 분들께 최근까지 했던 것과 다른 사운드를 들려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신재평은 "20년 동안 한결같이 뻔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대중가요에서 들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했고, 그래서 엇나가는 것들이 재밌었다. 그걸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조금은 재기 넘치고 장난기 있는 앨범이 됐다. 최근 발표한 음악들이 오히려 더 무게감이 있고 메시지가 실려 있다면 이번 음반은 메시지 자체가 저희들의 이야기다. 페퍼톤스가 이제까지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 어떤 음악을 했는데 발표를 못했는지, 그런 것들을 모아서 내는 거기 때문에 조금 더 초심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데뷔하고 기를 쓰고 새로운 걸 하려고 했을 때의 기분으로 편곡을 한 게 많다"고 밝혔다.
10곡을 추리기 위해 페퍼톤스는 옛날 하드와 이메일, 카세트테이프 등 자신들의 과거를 샅샅이 뒤졌다. 어마어마한 양의 습작들을 들어보며 과거의 순간들이 추억으로 떠올랐다. 신재평은 "저희들의 회고록 같은 성격도 있다. 사실 6곡 정도는 10년 넘은 노래들이다. 이거 만들면서 옛날 사진을 펼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재밌고 설렘이 컸다"고 털어놨다.
다만 타이틀곡 '라이더스'는 묵은 노래가 아닌 완전한 신곡이다. 앨범의 모든 기획이 다 정해진 뒤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노래로 맨 마지막에 쓰였다. 이장원은 "타이틀곡으로 쓴 건 아니었다"면서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부분은 있다. 들어보시면 약간 떼창이 들어있다. 저희가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스타일의 밴드는 아니다. 그런 걸 겸연쩍어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음악에 '이렇게 하시면 좋겠다'는 제안이 아주 약하게나마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페퍼톤스는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예상대로 흘러오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꿈같고 기쁘다고 표현했다. 특히 인디 밴드에서 인기 밴드가 됐다는 말에 "라임이 맞다"며 반색한 이장원은 "사실 데뷔할 때 우리 노래가 대단히 좋아서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 때문에 전세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근데 그 꿈은 근처에도 가지 않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을 맞이해서 지금도 액티브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기쁨이지 않을까. 처음 시작할 때 '우주 대스타'를 논했다. 10년 뒤도 생각하지 않은 채 하던 얘기들인데 20년을 맞아서 이렇게 하고 있는 이 자체가 너무 꿈같다"고 했다.
자신감이 넘쳤던 과거에 대해 이장원은 "사실은 우리 둘 사이에서 우리 둘은 세계 최고의 밴드였다. 우리가 널리 알려지진 않았던 것 같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는 밴드라고 말은 하지만 속은 다르다. 우주 최강 밴드다. 우리 음악이 최고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때보다는 현실적이 되면서 오히려 겸손해진 게 없지 않아 있다. 혼자 했으면 현실 자각을 훨씬 빨리 했을 수도 있는데 둘이 있어서 항상 '우리 잘못이 아니야. 우린 완벽해' 해왔던 게 있는 것 같다. 제멋에 겨운 게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세상이 좋아할 것'이란 패기로 시작해 20년의 세월을 쌓으며 인기 밴드 자리에 오른 페퍼톤스는 100세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쭉 나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100세 시대잖아요. 저희가 백 살이 되면 80주년쯤 되지 않나요. 같이 쭉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저희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는데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영양제도 챙겨 먹고 있고, 코어 근육 강화는 물론, 손과 목이 다치지 않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계속 건강 얘기만 하고 있어요."(이장원)
"저희 가장 큰 버킷리스트는 저희들의 환갑잔치예요. 저희가 동갑이라. 저희 곡 'New Hippie Generation'에 '인생은 길고 날씨가 좋아서'라는 생뚱맞은 가사 한 구절이 있는데 '그걸 할아버지들이 하면 괜찮겠는데' 했었어요. 10년도 더 전에 인터뷰 자리에서 '꿈이 뭐예요?' 해서 농담 삼아 그렇게 얘기했는데 벌써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네요. 아마 칠순으로 수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신재평)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