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거칠어 보이면서도 푸근하고 사람 좋은 미소로 시청자 혹은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배우 류승룡. 국민의 웃음 장벽을 낮춰버린 그가 이번엔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황당한 소재를 실사화한 작품으로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호불호를 알면서도 기꺼이 도전한 류승룡의 '다채로운 맛'에 보는 이들도 기꺼이 수저를 들고 싶어 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의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 류승룡은 극 중 '최선만' 역으로 분해 '고백중'과 함께 딸을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그려냈다.
사람이 닭강정이 되는 황당무계한 소재의 세계관에 몰입한다는 것이 누가 봐도 어려워 보였지만, 류승룡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인생에 이런 작품은 딱 한 번 만나게 되는, 원한다고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안재홍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과 재미있게 잘 찍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도 시청자 반응이 어떨지 '설렘'이란 게 있지 않겠나.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 분명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면서 "혹시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다면 '감자마을'이라는 작품도 우리 해보자 이런 얘기도 했다. 살색, 빨간색 타이즈 입고.(웃음) '닭강정'을 뛰어 넘으려면 그것밖에 없을 거 같다"고 너스레 떨었다.
처음엔 이병헌 감독에게 '닭강정'이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다. 류승룡은 "한 줄 로그라인 듣고 농담하는 줄 알았다. 코로나19가 한참 창궐할 때라 '많이 힘들었구나'(웃음). 그런데 몇 개월 뒤에 진짜로 대본을 주더라. 시나리오와 대본을 보고 좀 충격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대본을 직접 읽은 뒤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다 보고나니 '이걸 만든다고?' 기대감도 있었고 모든 보시는 분들이 쇼킹이 있을 거 같다. 읽으면서 쇼킹은 특이한 소재는 전면에 배치돼 있고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결국엔 시공간을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과 사랑, 인류애 이런 것들이 있어서 문턱이 있지만 그것만 잘 넘으면 쭉 갈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 '닭강정' 합류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닭강정'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기 때문 아니었냐는 질문에는 "이병헌 감독과 합을 한 번 경험해보기도 했고, 많이 보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기복이 있지 않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가 굉장히 좋았다. '닭강정'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독특한 소재를 만화처럼, 혹은 2D를 3D처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결정하는 포인트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B급 코미디' '4차원 개그' 장르로 분류되는 '닭강정'을 처음으로 시도하며 우려나 걱정도 크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류승룡은 "저는 다양성에 기여하는 작품이라고 분명 생각했다. 물론 저는 극호였기 때문에 했을 거다"면서 "극 중에도 나오지만 '민초단', 피자 위 파인애플 토핑처럼 취향이 극명하겠다란 생각은 했다. 또 1화만 잘 넘어가면 계속해 볼 수 있을 텐데란 생각도 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취향을 넘어설 수 없더라도 색다른 맛, 중독을 부르는 맛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류승룡은 "예전에 일본 분들을 모시고 K푸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닭갈비를 드시는데 깻잎을 건저내시더라. 아무래도 향이 독특하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것만 찾는 분들도 계신다. 우리 작품이 약간 그런 느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미소 지었다.
웃음이 휘발될까 우려해 리허설도 최소한으로, 안재홍과의 찰떡 호흡만 믿고 연기를 하면서도 배우들에게도 '웃참'의 위기는 있었다. 류승룡은 "작품을 보면 어디까지가 애드리브고 대본인지 모르겠다. '홍차'(정호연)와 '고백중'이 회상을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 '가지마요' '눈 떠요' 말한 게 애드리브 같다. 우리는 진지한데 관객분들은 웃는 부분이 제일 웃음 참기 힘들다"면서 "또 유인원(유승목) 박사가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라바 움직임을 보이면서 본인이 웃음이 터져 그 장면도 테이크 많이 갔다"라고 털어놓았다.
1화에서는 연극톤, 만화적인 연기톤과 움직임으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매체연기에서는 보기 힘든 연기기 때문인데, 류승룡은 "최대한 톤 자체가 만화적이란 걸 환기시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연기 안 하고 완전 리얼한 연기를 하면 오히려 이질감이 생기는 설정이라, 앞에 도입부분을 그렇게 전면에 배치한 거 같다. 그게 마치 애피타이저처럼 이 작품이 (시청자에게) 소화될 수 있도록 식욕을 돋우기 위한 배치인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류승룡은 극단 시절을 포함하면 약 30년, 매체연기만 곧 20년 경력의 배우다. 오랜 기간 연기자의 길에 몸 담았던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있을까. 류승룡은 "뭘 이룬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끝까지 잘,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마지막 작품까지 최선을 다 해서 후회 없이 하고 싶다란 생각이다"면서 "생각도 못한 장르게 참여하게 되고 굳이 앞으로도 바라는 게 있다면 좀 더 다양한 작품들에, 국한되지 않고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고 욕심을 드러냈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천만배우'라는 칭호를 얻기도 한 류승룡이지만, 과거엔 '다작배우'로도 불렸다. 류승룡은 "('닭강정'을 하기까지)캐릭터를 제 나이에, 제 생김새로 할 수 있는 걸 많이 했는데 '뭐 없을까?' 그래서 그런 것도 작용한 거 같다. 이런 작품은 안 나올 거 같다!, 신선한 거 같아!, 도전해보고 싶은데? 모두가 깜짝 놀랄 거 같아! 이런 것들이 저 나름의 미션으로 있었던 거 같다"면서 "기획자도 많고, 이갸기 꾼도 많은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인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라디오에서 '환갑 때까지 코미디'라고 말했던 류승룡. 지금도 그 생각이 여전할까. 그는 "당분간은 그럴 거 같다. 브라질 가서 찍은 작품(차기작)도 코미디다. 결이 좀 다르지만. 공교롭게 이 시기에 코미디 두 작품을 하게 되니까"라고 귀띔했다. 이어 "이상하게 악역도 하고 했는데 코미디가 임팩트가 센 거 같다. 그래서 조금은 안식년처럼? 시간을 가져볼까 싶다. '류승룡 코미디가 보고 싶어' 이런 얘기가 나올 때까지. 우리나라에 '감자마을'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의 포용이 가능해지면 감자나 고구마로 나올 거 같다.(웃음)"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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