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해외 시상식에서 많은 한국 작품이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수상할 때마다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높은 수준의 시청자·관객·리스너의 니즈와 눈높이에 맞춘 '웰메이드'를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모여 이러한 성과가 만들어졌다.
빛이 있다면 그 이면에 그림자도 있는 법. K-콘텐츠의 화려한 영광을 바래지게 하는 '암'도 있다. 스포츠투데이는 창간2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23년 대한민국 콘텐츠 관련 업계를 뒤흔들고 K-콘텐츠의 발전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민폐촬영 논란, 일부 OTT플랫폼의 거대화로 인한 부작용, 암표 문제 등의 실태를 살펴봤다.
◆반복되는 '민폐촬영', 결국 돌파구는 자정 노력
지난해 여럿 작품이 민폐촬영 논란으로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논란은 크게 ▲소음 발생·쓰레기 방치, ▲무단 점용, ▲안전 문제 등으로 나뉘었다. 민폐촬영 논란이 사회적 관심을 모은 초기에는 주택가에서 늦은 시간까지 소음을 발생시키거나 쓰레기를 방치한 채 떠나는 형태였다. 이후에는 미흡한 행정 절차로 인한 무단 점용, 시민의 안전은 뒷전이 된 형태의 사례까지 나오면서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큰 골칫거리다. 스태프와 시민과 갈등으로 논란에 휘말렸던 한 A 제작사 관계자는 "공개 전부터 대중에게 부정적 이슈로 낙인찍히게 되는 일이라 속상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 쉬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결코 반길 수 없는 이슈지만, 변수가 많은 현장의 모든 걸 컨트롤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이러한 논란이 생기는 것 같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공장소나 사유지에서 대한 촬영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시민들에 대한 강제적 통제 권한이 없어 일반 보행자가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혹은 마이크에 소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스태프의 통제가 필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와 시민 사이에서 시비나 갈등이 불거지게 되면, 개인간의 갈등이라 하더라도 '민폐촬영 혹은 갑질'이란 비난은 오롯이 방송·제작사에 돌아오게 된다.
장소 섭외 및 촬영 진행을 위한 행정 절차는 로케이션 매니저 같은 외부 전문가를 통해 진행되지만, 이 역시 문제 발생가 발생했을 때의 비난은 방송·제작사의 몫이다. 앞서 '무인도의 디바'는 행정 권한이 없는 마을 이장에게 장소 섭외 협조를 구한 사실이 알려져 뒤늦게 무단점용 논란으로 지적받았는데, 같은 업계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도보에 놓인 촬영 짐을 피해 차도로 걷는 보행자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대중의 입방아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에 각 제작사는 자체적으로 지침 등을 마련해 논란을 예방하고 있다. B 제작사 관계자는 "촬영 현장에서 지켜지거나 고려해야 할 사안에 대한 지침을 단체메신저에 주입식으로 반복해서 공유한다. 또한 소음과 관련해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무전기를 사용해 소음공해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프로듀서 실무 교육 프로그램에 민폐촬영 논란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켜 실무자에게 교육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제작사의 고충, 노력과는 별개로 반복되는 '민폐촬영' 논란에 대중의 분노는 누적되고 있다. 사과문 하나면 논란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각 지자체는 공공의 시설 또는 국유지에 대한 훼손 및 무단 사용에 대해서는 항만법 등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긴 했지만 실질적인 처분은 다른 이야기다. 앞서 tvN '무인도의 디바' 넷플릭스 'Mr. 플랑크톤'이 촬영 소품 및 쓰레기 방치로 도마 위에 올랐으나, 서귀포시 담당자는 "현재는 모두 원상복구된 상태로 확인됐다"면서 "원상 회복 명령을 내린 뒤에도 원상복구 조치가 되지 않았을 시에만 고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 나쁘게' 민폐촬영을 지적받더라도 사과 후 원상 복구만 하면 사실상 별도의 행정·법적 처분은 없는 상황.
잇단 논란에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이용 의원은 보행자와 공공시설 이용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제작진에게 관련 의무를 부여하는 '촬영 민폐·갑질 예방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방송·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환경에 법으로 강제력을 부과하는 상황이 달가울리 없다. 그러나 티빙 '피라미드 게임'이 촬영을 위해 촬영짐 등으로 보도를 막아 등굣길 학생 및 일반 보행자가 어쩔 수 없이 차도를 이용하는 등 안전불감증이 엿보이는 사례까지 나온 만큼, 강제적으로라도 시민의 안전을 우선 확보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일부 제작사의 논란이 업계 만연한 관행으로 비치면서 '제작·촬영'이라고 하면 일단 반감부터 갖고 보는 다소 부정적 대중 인식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시설 및 공유지에서 촬영은 시민의 협조가 전적으로 필요하다. 원활한 촬영과 협조를 위해서라도 일부 방송·제작사만 아니라 업계 전반의 자정을 위한 변화 노력도 분명 필요해보인다.
◆기울어진 자본의 저울, 길 잃은 제작사
"방송 편성을 받기 어렵다"라는 업계의 볼멘소리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K콘텐츠 특수'를 맞은 여러 제작사가 콘텐츠 제작에 나섰지만, '본방사수'가 무색해진 시청습관과 글로벌 OTT의 공룡화 등으로 방송가는 점차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에 많은 작품이 돌연 제작 중단되거나 편성을 받지 못해 길을 잃게 된 상황이 발생했다. 소규모 제작사의 경우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불거진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돈'이다. 공영방송 KBS는 최근 몇몇 예능 프로그램의 종영 소식을 전해 화두에 올랐는데, 수신료 분리 징수 및 광고료 수입 하락으로 인한 제작비 급감이 원인일 것이란 업계 해석도 나왔다. 예능만 아니라 드라마도 비슷한 상황이다. 광고 수입도 줄어 예산은 줄었는데, 필요한 제작비는 배로 뛰면서 편성띠가 절반으로 잘려나간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큰 제약도 없으면서 막강한 자본까지 갖춘 글로벌 OTT 플랫폼이 있었다.
방송의 경우, 브랜드가 노골적으로 노출되거나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되면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별도의 큰 법적 제약이 없는 OTT의 경우 노출이 자유로워 광고주에게도 선호도가 훨씬 높다. 광고주 측에서는 브랜드 또는 제품명 등이 명확하게 노출되는 것을 바라지만 방송에서는 한계가 있어 제재가 없는 OTT를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한 업계 관계자는 "광고주들은 같은 광고비에 방송보다는 OTT, 더 나아가서는 'CF 한 편을 만들어주다시피 하는' 유튜브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가는 유튜브와 OTT에 밀려 광고 수익도 내기 힘들어졌다.
반대로 제작비가 커진 이유는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글로벌 OTT의 예산이 업계 기준이 되면서다. 제작비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배우 출연료, 스태프 인건비, 작가료 등으로 구성된다. 2~3년 사이 글로벌 OTT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정적 인력에 대한 인건비도 올라가고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제작비가 상승하지만, 기존 제작비에서 감당하지 못한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제작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배우의 출연료다. 글로벌 OTT의 경우 제작사가 원하는 톱스타급 배우의 출연료도 소위 말해 '부르는 대로' 지급할 능력이 된다. 여기에 맞춰 스타들의 '억대' 몸값이 더더욱 뛰게 되고 예산이 한정적인 국내 방송사와 국내 OTT의 경우 이를 맞춰줄 수 없어 편성띠를 줄여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네임벨류 있는 배우를 앉히기 위해 작품 수를 줄이고, 더 치열해진 경쟁에서 편성·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더더욱 이름 있는 배우를 욕심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오늘도 사랑스럽개, 모범택시 포스터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여러 방법도 모색되고 있지만, 출연료가 비교적 적은 신인 배우 등을 기용하거나 해외 판권 판매를 통한 자구책도 한계가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총장은 "신인만 쓰기엔 불확실성이 높다. 또한 제작을 하더라도 국내 플랫폼만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세계 다른 유통시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만으론 (제작비와)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면서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사전 제작 형태로 만들어져 방영 전부터 여러 해외 로컬 OTT 플랫폼에 판매가 됐다. 비록 국내 시청률은 아쉬울 수 있지만, 사업적으론 아주 성공한 드라마다. 다만 '차은우'라는 네임벨류 덕분에 판매된 것이지 모든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송중기 주연의 '재발집 막내아들', 이제훈 주연의 '모범택시' 등도 주연배우의 네임벨류가 방영 전 해외 OTT 플랫폼에 판매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방송사 등이 글로벌 OTT 자본에 대항력을 갖기엔 타깃으로 하는 '시장'의 크기도 너무나 다르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글로벌 OTT의 경우 전체 제작비의 50~60%는 가격을 해준다. 나머지를 국내 방송사 등에 방영권을 판매하는데, 지난해 상반기만해도 (국내 방송사 등에서) 40%는 받았다. 그런데 올해부터 방영권이 전체 제작비의 2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어려워졌다. 그러나 해외 OTT는 여전히 비슷한 가격 선을 유지 중이다. (시장이 한정적인 국내와 달리) 글로벌 OTT는 세계 시장에 스트리밍 서비스하면서 시장성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세분화·기업화 됐는데…구시대적 법에 발목 잡힌 '암표' 문제
가요·공연 업계는 최근 '암표'와의 전쟁으로 한참 시끄럽다. 암표는 오랜 문제였지만,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불공정한 티켓 구입법, 더욱 다양해진 판매 채널, 분업화 및 기업적 형태로 발전 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불법 거래로 인한 사기 행각이 더욱 큰 규모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것은 자명하다.
암표는 1차적 피해자인 소비자만 아니라 업계 전반에도 피해를 입힌다. 소비자 보호에만 중심을 둘 경우, 암표 판매상이 공연 직전에 티켓을 취소해 공석이 발생하면 공연 기획·제작사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한 암표를 거르기 위해 예매자 본인확인 과정에서도 이를 위한 별도의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객석이 많은 공연일수록 구매자 확인을 위한 인력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티켓 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티켓이나 비용 등을 마련하는 준비책 역시 아티스트나 공연사 측이 감수해야 한다.
일부 아티스트는 암행어사 제도, 추첨제 등을 다양한 아이디어로 암표에 대응하고 있지만, 실상 한계도 존재한다. 한국레이블산업협회 윤동환 회장은 "일부 대형 아티스트 측은 암표로 티켓이 나가든 정상 경로로 판매되든 어차피 매진이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성시경, 아이유, 임영웅, 장범준 등 파워있는 가수와 기획사들이 나서서 개선책을 찾는 것은 굉장히 멋있는 일이다"면서도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 공연에 암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잡을 수 있는 암표는 10% 정도일 것이다. 또 장범준처럼 추첨제의 경우도 소규모 공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아이유, 임영웅, 장범준, 성시경 / 사진=DB
업계 관계자들은 우선 '암표'를 정의하는 법적인 재정의, 그리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우리나라 법에서 말하는 암표와 처벌 대상은 현시대와 동떨어져 있다.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각종 SNS·중고거래 사이트 등 다양한 채널로 암표 거래가 성행하지만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은 해당 '공연장 앞'에서 벌어지는 오프라인 거래에 한하고 있다. 무려 50년 전에 제정된 법안이다. 이러한 오프라인 불법 거래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찰 측에서도 실질적인 조사나 처벌은 어려운 상황.
3월부터 시행되는 공연법 개정안 역시, ▲'매크로'(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를 이용해 ▲'웃돈'(프리미엄, 수고비 형태)을 주고 티켓을 거래하는 행위를 모두 만족시켜야만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크로 프로그램 등 불법적 경로로 티켓을 구매하더라도 웃돈을 받고 재판매하지 않으면 암표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웃돈을 받고 판매하더라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습적인 판매를 처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르바이트 고용을 통한 예매책, 판매책, 전달책 등 각각의 역할이 세분화 된 기업형 범죄에는 개정안을 통한 처벌이 어렵다. 윤동환 회장은 "개정법에 따라 잡아내려면 마약 단속처럼 검·경이 합동으로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 과연 암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경이 나설까 싶다. 아마 그렇게 적발되는 경우는 없을 거 같다"면서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결국은 '암표'가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그에 따라 암표를 구매하는 것은 범죄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구매자에 대한 처벌도 없어, 일부 구매자는 암표 거래가 불법이란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암표 거래가 문화 공연계의 큰 이슈로 대두되고 공론화 되면서 관련 부처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강력한 처벌 수위와 현실적인 대책이 강구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