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뿌리가 깊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배우 홍사빈이 그렇다. 연극 스태프로 시작해 연출자, 연기자로서 차분히 길을 닦아왔다. 데뷔 5년 만에 칸에 입성한 홍사빈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화란'(감독 김창훈·제작 사나이픽처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김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일찌감치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홍사빈은 극 중 김연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캐스팅 과정을 묻자 "오디션을 봤다. 주어진 것으로 연기를 했고, 너무 하고 싶어서 페이지와 글자 배열까지 외웠다. 최선을 다한 것이 진심으로 닿았다"고 말했다.
홍사빈이 분한 김연규는 양아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었다. 홍사빈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어두운 현실을 피할 수 없는 처절함을 보여줬다.
홍사빈은 역할에 대해 "또래 남자 배우들이라면 당연히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 20대의 배우로서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점이 있었다. 물론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연규라는 캐릭터가 외부 요소들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캐릭터라 설정 자체라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특히 연규를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홍사빈은 "뭐든 '처음'이라는 생각이었다. 보여지는 얼굴이나 감정, 행동, 말투가 장면마다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는데 현장에서 어떤 선배와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민이란 표현도 최대한 절제했다며 "해석이 되게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의문을 자아내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연규를 연기함에 있어서 '불쌍'하게 보이는 건 잘못된 것 같더라. 연규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은 '오해였어'라는 말 한마디로 다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들어서 어른이 되면 무색하게 서로 말을 안 하고 생각만 하는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런 점이 영화 속에 들어가야 하고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선배, 감독, 연출진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 머리카락 방향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말했다.
홍사빈은 연기하는데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을 받자 "당연히 느꼈다. 하지만 연규도 낯선 일들의 연속이다 보니 저 또한 위로가 됐던 같다"며 "제일 무서운 게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꿈꾸는 것도 일말에 가능성 때문이다. 작품에서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가능성으로 달려가는데 연규가 느꼈을 '화란'으로 향한 일말의 가능성이 맞닿아있더라"고 전했다.
'일말의 가능성'은 홍사빈이 생각하는 '화란'의 메시지였다. 그는 "작은 희망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크고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희망이 무참히 짓밟히고 뒹굴어도 약간 작은 불씨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걸 '화란'을 보면서 느꼈다. 작은 희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선 연민과 동정으로 느낄 수 있지만, '화란'의 아이들을 보며 작은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홍사빈은 함께 호흡을 맞춘 대선배 송중기를 향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그는 "'너 편하게 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해주셨다. 거기서 제가 편하게 하지 못하면 그것마저 결례가 될 것 같았다. 망설이거나 눈치를 보면 안 돼 연습을 많이 했다"고 얘기했다.
수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는 홍사빈은 "무수히 많은 연습을 하는 환경을 송중기 선배가 제공을 해줬다. 알 수 없는 유대감이 생기더라. 그런 신뢰감을 믿어야 하는데 안 믿는 건 배반 아닐까. 정말 편하게 해 보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은 연극을 했다. 하나에 이야기를 위해 무수히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런 환경을 중기 선배가 제공을 해주셨다. 그렇게 진행이 되다 보면 알 수 없는 유대감이 생긴다. 그런 신뢰감을 믿어야 하는데 안 믿는 건 배반이다. 정말 편하게 해 보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의붓남매로 호흡을 맞춘 김형서(비비) 배우와도 즐겁게 연기했다고 한다. 그는 "(욕) 절반이 애드리브다. 초반에 오토바이 키를 뺏고 머리와 헬멧을 때린 뒤 '꺼져'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키를 뺏은 뒤부터는 전부 애드리브다. 저희끼리 재밌게 찍었던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첫 장편작에서 타이틀롤을 맡고, 송중기와 김형서 배우와 레드카펫을 밟은 홍사빈. 치열하게 고민하고 촬영한 '화란'이기에 의미도 남다르다. 그는 "많은 분들을 뵙고 이런 일들이 생긴 게 하나의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저의 20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분들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화란'이라는 영화는 가슴속에 계속 쥐고 있어야 되는 영화인 것 같다"고 벅차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했던 홍사빈이다. 연극영화 전공인 그는 연극 스태프로 시작해 조감독, 연출자, 배우까지 차분히 길을 닦아왔다. 홍사빈은 "원래 배우가 꿈이었는데,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슬쩍 시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아 붙었고 꿈이 거창하지 않았다. 스태프부터 시작해 관련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23살까지는 조명, 음향을 트는 일을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 만났던 선배들은 현재 큰 자양분이 됐다. 어쩔 땐 배우로서 만나 뵙게 되는 기회도 있다. 많이 귀여워해 주셔서 '저 친구 연기하네'라고 하실 수 있다. 남몰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쑥스러움이 많다. 스태프로 일단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연출 경험은 홍사빈에게 큰 배움이 됐다. 홍사빈은 "연출은 감독의 말을 잘 듣고 이해를 잘해서 좋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업 중 하나다. 책임감과 무게감을 알게 된다"는 진중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홍사빈의 열정은 '연기'로 귀결됐다. 그는 "내향적이고 쑥스러움이 많은 편이라 연기를 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점이 좋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연기라는 핑계도 재밌다"며 "어른이 되는 과정을 조금씩 겪는 것 같다. 밉고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연기는 잘못이 없지 않나. 어르고 달래서 하고 있다. 연기는 친구 같다"고 웃었다.
데뷔 5년 만에 '화란'을 만나 신예로도 주목받고 있다. 선보일 차기작도 3편이라고. 홍사빈은 "아직까지 현실의 연규를 마주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근데 겪어야 하는 숙제다. 대세배우란 수식어는 너무 어렵고 일말의 희망으로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 친구 연기하는데 작품 보면 그럴 법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럴 법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고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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