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 배우 송중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란다. 새로움을 쫓고, 시도하고, 때론 '노개런티'를 부를 수 있는 그다. 배우로서도 평범한 아빠로 변화를 맞이한 송중기는 끊임없이 달리는 중이다.
'화란'(감독 김창훈·제작 사나이픽처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김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작품은 당초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 김창훈의 데뷔작이자, 송중기의 노개런티 출연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제76회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관심받았다.
먼저 송중기는 노개런티 출연작으로 화제 된 것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시작해야겠다. 작품이 좋아서 노개런티를 한 게 아니"라고 운을 뗐다. 그는 "먼저 제안을 받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에게 제안받은 다른 작품을 거절하는 자리에서 '화란' 시나리오를 받은 거다. 읽어보니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고 싶었것"이라고 출연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본래 '화란' 시나리오 초고는 훨씬 더 거칠었다. 제가 출연한다고 하면, 상업 영화 흥행 공식에 따라 카체이싱 등을 추가할 거 같았다. 제작비가 늘어나면 본래 '화란'의 정서와 상관없는 영화가 될까 봐 우려되더라. 이 매력을 살려야 해 개런티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중기가 매료된 '화란'의 정서는 스산하다.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치건과 연규의 처절함, 어두운 서사가 기저에 깔려있다. 이는 그가 출연을 확정한 확실한 이유였다.
그는 "스산하고 끈적끈적한 정서의 장르를 하고 싶었던 차에 '화란'을 만났다. 작품을 우선 본 다음 치건 역할을 보게 됐다. 저는 캐릭터를 다양한 것을 하는 것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송중기는 치건 역으로 외모적인 변화도 줬다. 그는 "귀도 특수분장을 한 거지만 분장차에서 하고 나오면 기분이 달라지더라. 얼굴도 까무잡잡하게 했다. 실제 왼쪽 볼에 어릴 때 다쳤던 상처가 있다. 다른 작품에선 커버하거나 가리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음영처리 해서 더 돋보이게 했다. 저로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본 거다. 이 작품을 좋아하기에, 화란'으로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전했다.
치건의 거친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도 만들었다고 한다. 송중기는 "춘천에 있는 오픈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촬영장에 갈 때마다 새로운 역기가 생겨있더라. 영화 대표님이 '중기 눈에 띄는 곳에 하나씩 갖다 놔라'했던 거다. 몸 만들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며 "아무래도 '화란'은 연규의 감정이 메인으로 진행돼 치건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짧다. 이미지에서 풍겨지는 게 있어야 해 몸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짧은 치건의 전사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고. 송중기는 "비주얼적으로 만들어가면 튈 것이라 생각했다. 가정 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표현한 게 찢어진 귀였기 때문에 (전사 설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연규는 왼쪽 눈 밑부터 뺨까지 찢어진 흉터가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상징적 의미로 표현됐다"고 털어놨다.
노개런티로 출연할 만큼 '화란'에 매료된 송중기는 이번 현장이 즐거웠다며 "오랜만에 허심탄회하게 홍사빈 배우, 감독, 연출진들과 공유하면서 찍었던 것 같다. 마지막 액션 장면에 들어가기 전까진 새벽 6시까지 토론하고 샤워만 한 뒤 오전 7시에 촬영 현장에 간 적도 있다. 오랜만에 적나라하게 '으X으샤'하며 만든 지점이 즐거웠다"고 뿌듯해했다.
'화란'은 대사 대신 눈빛, 행동으로 감정이 표현되는 비중이 크다. 이는 영화에 대한 열린 해석이 가능함과 동시에 의문만 남기는 양가성을 띤다. 이를 두고 송중기는 '화란'을 '친절하지 않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송중기는 "이 영화의 콘셉트다. 대사도 많이 없고 이미지로 때워지거나, 기저에 깔린 정서로써 표현되는 점이 있다"고 얘기했다.
영화 '무뢰한'을 예시로 든 송중기는 "굉장히 좋아해 여러 번 본 작품이다. 극 중 배우 김남길이 전도연을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미묘하게 그려지는 지점이 매력적이었다. '화란'에서도 치건이 연규를 도와주려는 건지 아닌지 미묘하더라"며 "더불어 신인 감독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무뢰한'을 만든 제작진이라는 것이 든든했다. '무뢰한'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화란'도 같은 세션에 초청받은 것으로 연결되니 조금 더 뿌듯했다"고 말했다.
송중기는 또한 "'화란'이 친절한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는 모르겠다. 칭찬도 욕도 들을 각오가 돼 있다. 저희끼리 치열하게 임했으니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작품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배우로서도 인간 송중기로서도 새로움을 맞이한 그다. 특히 송중기는 영국 출신 배우 케이티 루이즈 손더스와 결혼 후 지난 6월 득남해 많은 축하를 받았다.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송중기는 "일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다가도 '아 나 아빠 됐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며 "아기를 갖고 싶다는 건 저와 아내의 꿈이기도 했다"고 웃었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송중기는 아내의 고향인 이탈리아 로마에 함께 머물며 아들의 출산 과정을 함께하기도 했다. 아내를 살뜰히 챙기는 장면도 포착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출산 후 육아에 전념했다는 송중기는 "'화란'이 칸에 초청됐을 때, 아내가 만삭이라 신경 쓸 게 많아 함께 가지 못했다. 아직도 '화란'을 함께 못 봤다. 아기를 같이 키우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다 못 보더라"고 아빠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송중기의 결혼, 아내의 임신, 출산 소식은 늘 세간의 화제였다. 올해 초 송중기가 영국의 공영방송사인 BBC 측과 드라마 오디션을 진행했다는 설이 나오자 가족과 함께 외국에 터를 잡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이날도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내가 한국 국적이 아니라 그렇게 바라봐 주신 것도 있다. 팩트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많은 선배들이 다져놓은 것 덕분에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해외 작품을 하고 싶어 몇 년 전부터 오디션에 도전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내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아는 지인을 소개해주고 덕분에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예전에 비해 기회가 많이 생겨 도움을 받고 있다"며 "지루하면 집중을 못하는 편이라 새로운 것을 찾는 것 같다.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시스템으로도 연기를 해보고 싶다. 오디션을 봤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다만 확실히 한국 배우들에게 관심이 많더라. 아직 기회는 많이 열린 것 같다"고 전했다.
배우로서 아직 고프다는 송중기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세다. 최근 들어 전통적인 공포영화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소름' '기담' '불신지옥'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장르가 하고 싶다"고 눈을 빛냈다.
더불어 송중기는 "조금씩 나이가 들고,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힘 좀 빼려고 한다. 아직 빼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 맥락에서 이번 '화란'으로 시도해 본 것 같다. 평가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앞으로도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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