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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진짜 재난은 '지진'이 아닌데 [무비뷰]
작성 : 2023년 08월 09일(수) 08:20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공포물보다 소름 돋는다.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역설적인 제목과 어울린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연출 엄태화·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영화는 대지진이 벌어진 이후 황궁 아파트 주민 민성(박서준), 명화(박보영)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안정적인 삶을 꿈꿔온 민성에게 아내 명화와 내 집인 황궁 아파트는 꼭 지켜야만 하는, 그의 전부다.

그러나 재난 상황 속 인류애와 각박한 현실 앞에 민성은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그를 잡아주는 것은 작품 속 유일한 선(善) 명화다.

다만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이 등장하며 상황은 반전된다. 영탁은 황궁 아파트를 지켜내고, 주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갖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책임감을 느끼며, 동시에 그 '맛'을 알아버린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외치는 영탁과 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싶은 명화, 그 사이에 선 민성의 엇갈린 시선들은 극한 상황 속 인간이 지닌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황폐화된 도시 속 유일한 피난처인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살기 위해' 외부인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다만 누구나 간절한 상황 속 주민들을 쉽사리 비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외부인들을 무작정 배척하기도 어렵다. 영화는 전개 내내 관객들에게 '누가 선이고, 악(惡)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보단 생존의 갈림길 앞에 놓인 인간의 민낯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을 떠올려봤을 때 황궁 아파트는 주민들에게 있어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듯, 주민들의 마지막 황궁 아파트가 천국은 아니다. 또한 콘크리트는 차갑고,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콘크리트'와 '유토피아'라는 두 단어의 결합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생명이 자라나기 어려운 메마른 콘크리트 땅에서, 어떻게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엄태화 감독은 주민들에게 천국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황궁 아파트를 세련되고,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누군가에겐 지켜야 하는, 안전한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겐 재난 상황 속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는 냉혹한 장소라는 아이러니함을 한 프레임 안에 보여준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정서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재난 상황 속에서도 자가와 전세를 구분 짓는 이들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극 중 캐릭터인 영탁이다. 또한 이를 그려내는 배우 이병헌은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타이틀 롤이지만, 동시에 가장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겁다. 묵직한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가슴에 얹어진 듯 무겁다는 것이 더 어울린다. '재난 드라마' 장르를 앞세웠지만, '재난' 그 자체보단 재난 후 인간의 본성에 더욱 집중했다. 귀신보다 무서운 현실에 숨이 턱 막힌다. 그 어떤 공포물보다 소름 돋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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