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김은희 작가가 SBS 금토드라마 '악귀'로 또 하나의 장르물을 추가했다.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닌 사람 보이는 작품을 만든 그. 이를 함께 해준 배우들에게 연신 감사를 표한 김은희다.
'악귀'(극본 김은희·연출 이정림)는 첫방 시청률 9.9%로 시작해 최종화 11.2%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오컬트 미스터리라는 마니악한 장르임에도 청춘의 단상을 적절히 녹여낸 점이 통한 것이다.
김은희 작가는 스포츠투데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기획부터 시작해서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까? 공중파에서 오컬트라니 시청자분들이 받아들여 주실까? 고민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들도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이정림 감독 또한 감사를 전했다. 이 감독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작가님, 배우들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내용들도 흥미롭게 봤고,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진짜 비밀로 할 테니 나한테만 몰래 말해줘'라는 문자만 여러 개 받았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은희 작가는 '악귀'를 집필할 때 '사람'에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김 작가는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니까 그 귀신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이정림 감독도 귀신이 주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고. 이 감독은 "모든 드라마가 그렇겠지만, '악귀' 역시 주인공 구산영, 염해상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끝까지 쫓아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촬영 전부터 작가님과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가 둘을 응원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인물들의 첫 등장이나 공간 구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또 악귀를 비롯한 귀신들, 상황을 묘사할 때 지나치게 화려한 VFX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익숙하면서도 무섭고 기묘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 감독은 '15세 등급'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 공포를 담았다고 말했던 바 있다. 실제 '악귀' 방송에선 목을 메 자살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했다. 스토리상 중요한 장면이긴 하나 동시에 우려의 반응도 있었다. 이에 이 감독은 "3부 도입부에 남석훈이라는 배역이 옷걸이로 목을 매 자살한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알 수 있는 컷들도 찍었으나 본방송으로 내보내진 않았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호하게 보였으면 했고 모방의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시청자들이 뒷이야기를 추리하고 상상했으면 하는 바람과 동시에, 실제로 남석훈의 죽음은 명백히 가해자가 있는 타살과 다름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자살귀 나무에 매달려 있는 시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트라우마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었지만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이었기에 최대한 화면을 어둡게 눌러 실루엣으로 이미지만 전달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적나라하게 모든 과정이 다 나오는 죽음은 보이스피싱범 한 명이다. 큰 죄를 저질렀고 법망을 피해 빠져나온 범죄자였기에 표현 수위를 시청자가 납득하고 함께 분노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은희 작가와 이정림 감독은 '악귀' 주역 김태리, 오정세, 홍경과 김원해, 김해숙, 진선규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악귀와 구산영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한 김태리, 귀신 보는 민속학자 염해상을 연기한 오정세, 경찰 이홍새 역을 맡았던 홍경까지 캐릭터 연구에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 가늠케 했다.
김은희 작가는 배우들에 대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었다. 오컬트라는 새로움에 도전해 주고 멋진 연기를 보여주신 명품 배우들, 사랑하고 존경한다. 귀신보다 배우분들의 연기가 더 소름이 끼쳤던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정림 감독은 "김태리, 오정세, 홍경 배우와는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셋 다 질문이 엄청났다. 촬영 막바지쯤 배우들에게 고백했는데 주연들이 내 꿈에서까지 나타나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들이 파생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막막했던 순간들이 해결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태리 배우에 대해 "열정적으로 현장을 이끌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네" 한마디도 수십 번 뱉어 보며 좀 더 좋은 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배우고 그 결과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고 칭찬했다.
오정세 배우에 대해선 고요하지만 단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 감독은 "고독, 외로움, 외골수 등 염해상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다 소화하고 표현해 줬다"며 "홍경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 진중하며, 태도만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다. 극 중 서문춘 형사가 죽은 뒤 시청자들이 더 슬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 홍경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또한 이 감독은 "김원해 배우는 현장에서 등불 같은 존재로 후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김해숙 배우는 화면 속에선 정말 무서워 보이지만 컷, 하면 호호 하고 웃는 소녀 같은 배우로 스태프들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며 "진선규 배우는 좀 과장해서 첫 만남에 이미 알고 있던 옆집 형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 나이보다 12살이나 많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엄마처럼 늘 보듬어 주시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해해 주신 박지영 선배님께도 감사드린다"고 배우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특히 김은희 작가는 '악귀' 진짜 정체 향이 역을 연기했던 심달기 배우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김 작가는 "심달기 배우는 외모적으로 제가 생각한 향이와 싱크로율이 딱 맞았다. 편집본을 보고 향이 그 자체를 연기해 주셔서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고 칭찬했다.
'악귀'는 1958년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거슬러 여러 청춘들의 이야기과 이러한 청춘들을 좀먹는 그릇된 욕망과 사회악을 다뤘다. 끝까지 노력하는 청춘의 희망을 앗아간 불행, 그것을 이겨내고자 자신 안에 욕망과 끊임없이 싸우는 구산영의 모습은 우리네 청춘이었다. 결국 시력을 잃은 구산영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을 택한 엔딩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은희 작가는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지 않나. 특히나 끔찍한 범죄를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악귀'는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뺏아간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엔딩에 대해 "구산영은 스물다섯, 아직은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청춘이다. 극 중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희망만이 가득하진 않겠죠. 그런 현실을 흑암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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