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입 떡 벌어지는 스케일로 영화의 감동을 무대 위에 그대로 구현해냈다. 13년의 기다림을 만족스럽게 보답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다.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명작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이 지난달 21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전 세계 186개 도시, 1억 6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 7개의 토니상과 4개의 올리비에 상을 포함한 70여 개의 주요 상을 받으며 뮤지컬 역사를 새롭게 쓴 작품이다. 한국어 공연은 2009년 공연 이후 13년 만이다. 초연 이래 21년간 단 두 차례만 성사됐다.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의 유령'은 천사의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인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천재 음악가 유령이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4년 뮤지컬 버전이 제라드 버틀러와 에미 로섬 주연으로 영화화 된 바 있다.
뮤지컬보다 영화를 먼저 봤기에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어떻게 무대 위로 옮겨질지 궁금증이 컸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와 깜짝 놀랄 만한 상상력으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다.
현실감 있게 구현된 압도적인 스케일의 무대는 한껏 고조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시작 전부터 천막에 덮여 있던 1톤의 거대한 샹들리에로 관객의 마음을 빼앗고, 그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올라가며 기대감을 점점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웅장한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 이어 크리스틴이 유령의 거처로 찾아가는 시퀀스는 환상 그 자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신은 그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배를 띄운 지하 호수는 자욱한 안개와 수백개의 촛불이 어우러지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2막이 시작되는 가면무도회에서는 화려함이 정점을 찍는다. 수십명의 배우들이 각기 다른 색깔과 디자인의 의상으로 빚어내는 가면무도회는 관객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극 전개도 흥미롭기 그지 없다. 분명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묘한 긴장감이 있다. 유령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샹들리에는 언제 떨어질지, 유령은 대체 어디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자꾸만 전후좌우를 둘러 보며 한번씩 공연장 이곳저곳을 체크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 반대급부로 익숙한 넘버들은 안정감을 준다. 'The Phantom of The Opera' 'The Music of The Night' 'All I Ask of You' 'Think of Me' 등 아는 것에서 오는 흡족함이 적지 않다.
여기에 배우들은 유감 없는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극을 무리 없이 이끌어나간다. 특히 유령 역 조승우의 존재감은 가히 반전으로 느껴질 법하다.
1막의 유령 조승우는 다소 아쉽다. 가창력이나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이 짙은 아쉬움은 2막에서 완벽히 해소된다. 이 신출귀몰한 유령은 극이 진행될수록 공연장 여기저기를 휘저으며 관객들의 마음도 휘젓는다.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인 만큼, 조승우는 자칫 섬뜩할 수 있는 유령의 감정선도 섬세하게 그려내며 몰입도를 높인다.
극 말미, 유령은 이름값 톡톡히 하며 유령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유령이 남기고 간 쓸쓸한 공허감은 커튼콜로 달랠 수 있었다. 끝난 것처럼 막을 내리다 다시금 인사하는 커튼콜이 반복돼 허탈감보다는 더 큰 만족감을 안고 공연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