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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내려놓음의 미학 [인터뷰]
작성 : 2023년 03월 01일(수) 10:20

산이 인터뷰 / 사진=권광일 기자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

17년을 이어온 가수로서의 세월은 산이에게 내려놓음의 미학을 가르쳤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작업한 첫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다. 산이의 정규 2집 'Just Rap Shit'이다.

'Just Rap Shit'은 제목처럼 랩으로만 채워져 있으며, 힙합이라는 장르가 주는 특유의 무게감을 산이만의 재치로 풀어낸 앨범이다.

정규 1집 '양치기 소년'에 이어 이번 정규 앨범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렸다. 타이틀 외 수록곡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는 현실이 장벽이 됐다. 또 '정규라는 작품으로 나의 아티스트성을 증명해서 평론가한테 별 5개를 받아야 돼' 부담과 압박도 컸다. 그렇게 정규를 회피했던 그는 유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정규 2집을 만들게 됐다.

산이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다. 제가 아마추어 시절에 저를 아무도 모를 때, 블로그 같은 데에 음악 올리고 했을 때처럼 아무 부담 없고 재밌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원래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스타일을 바꿔야 돼. 트렌드가 바뀌었으니 나도 바뀌어야 돼'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나다우면서도 전혀 옛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를 아예 바꾸지도 않게, 그 중간점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산이 인터뷰 / 사진=권광일 기자


강박관념을 버리고 싶어도 실제 마음을 내려놓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음악 작업을 하던 그는 불현듯 스친 어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신을 옥죄던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산이는 "문득 제 음악 지향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 뭐하고 싶어? 많은 분들한테 사랑받는 대중적인 앨범을 하고 싶어? 랩을 하고 싶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5대 5로 좋은데' 그렇게 혼잣말을 계속 했다. 그러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너 지금 데뷔한지 17년 됐는데 왜 눈치를 보면서 하려고 해? 하고 싶은 거 해. 꿋꿋이 네 길을 걸어가는 아티스트 해. 이미 네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람들로 인해서 많은 것을 이뤘고, 지금 너무 행복하게 잘 하고 있으니까 너 하고 싶은 거 해. 차트 1등해서 유명해져야 돼. 그런 거 없어'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부담 없이 작업하다 보니 두 달 만에 'Just Rap Shit'이 완성됐다. 작업 과정도 편안함 그 자체였다. 그는 "그냥 음악 틀어놓고, 비트 마음에 드는 거 고르면서 녹음했다. 가사도 생각나는 대로 일단 부르고 나중에 괜찮은 것들을 고르는 식으로 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가사에 신경을 많이 썼던 과거와는 정반대되는 행보다. 산이는 "그동안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되고 뭔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그런데 제가 예전 제 1집 앨범을 들어봤는데 아끼는 앨범인데 많은 곡들이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려운 시를 읽은 것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저조차도 모르겠더라. 자세히 읽어보면 말은 되지만 한번에 쏙쏙 들어오진 않더라. 이번에는 뇌에서 나오는 대로 뱉었기 때문에 그 순간순간 귀에 심플하게 박히더라"라고 했다.

산이 인터뷰 / 사진=권광일 기자


신보 타이틀곡은 '여름끝 매미'다. 산이는 "여름 매미 소리를 진짜 좋아한다. '웽웽' 이 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여름이 끝나가면 매미들이 떨어져서 죽지 않나. 그게 너무 슬펐다"면서 "한편으로는 힙합 얘기도 된다. '너네는 한철, 여름끝 매미다' 그런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름끝 매미'란 표현을 잘 안 쓰지 않나.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까 오히려 신선하더라. 사실 이건 타이틀 후보에도 있지 않았다. 원래 앨범이랑 동명인 'Just Rap Shit'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믹싱된 걸 듣는데 이게 가장 저답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타이틀곡이 됐다"고 밝혔다.

이미 '한여름밤의 꿀'을 히트시켰던 그는 또다시 '여름'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심지어 지금은 여름도 아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산이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던 것 같다. 생각을 안 해봤다. 두 곡의 결이 너무 다르지 않나"면서 "의식해서 쓰면 티가 나고 듣는 대중분들이 알아차린다. 광고를 할 때도 바이럴을 하면 무의식 중에 거부감이 들 수 있지 않나. 너무 노리고 하면 은연 중에 노래에서 느낌이 날 것 같다. 그런 걸 읽었다. 너무 고통스럽게 작업물을 창작하면 보거나 듣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그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온전하게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다만 실제로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보다는 여름을 좋아한다는 그는 "옛날 같으면 어떻게든 엮으려고 했을 거다. 근데 이번엔 진짜 그런 게 없다. 노래 순서도 곡 만든 순서대로다. 첫 번째 곡이 처음 만들었던 곡이고 마지막으로 만든 곡이 10번 트랙에 있다"고 설명했다.

산이 인터뷰 / 사진=권광일 기자


편안했던 작업 과정만큼, 산이는 'Just Rap Shit'을 듣는 청자도 그저 편안하게 듣길 바랐다. 그는 "빡센 곡들은 피로감이 세지 않나. 맨 처음에 들었을 땐 '우와' 하는데 듣다 보면 피곤하다. 이번 앨범은 심플하고 간결하고 그냥 흘러 지나가는 음악 같은 느낌이다. 계속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 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니까. 일단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게 가장 크죠. 2023년도의 산이가 이런 음악을 하고 싶었고, 이런 음악을 냈다. 그걸 인정해주시고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사람이니까 제 존재잖아요. '저는 음악적으로 이렇습니다' 했는데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잖아요. '싫어. 하지만 이게 지금의 산이구나' '좋아. 이게 지금의 산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여 주시면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산이 인터뷰 / 사진=권광일 기자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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