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포효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며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진행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 16강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다.
한국 축구는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이번 대회마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벤투호는 만만치 않은 대진운과 선수들의 부상 악재에도 불구하고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며, 지난 4년 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 10회 연속 본선 진출, 험난했던 본선 준비
2022년 벤투호의 출발은 산뜻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무패로 순항하던 벤투호는 올해 2월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8차전에서 2-0 완승을 거두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조기 확정지었다.
그러나 한국은 4월 진행된 조 추첨에서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어느 한 팀 쉬운 상대가 없는 조 편성 결과 때문에, 이번에도 조별리그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본선까지의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7월 한일전에서 0-3 대패는 축구팬들에게 월드컵에 대한 큰 불안감을 심어줬다. 이후에도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에 대한 의문, 이강인(마요르카) 기용에 대한 논란이 카타르 출국 직전까지 대표팀을 흔들었다.
월드컵 직전에는 주요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손흥민(토트넘)은 월드컵 개막을 3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안면 골절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고, 박지수(김천상무)는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해 카타르행이 좌절됐다. 황희찬(울버햄튼)은 대표팀 합류 직전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겼고, 김민재(나폴리), 김진수(전북 현대) 등 혹독한 경기 일정을 소화한 선수들도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투혼으로 부상을 극복했다. 특히 손흥민은 특수 제작한 마스크를 들고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을 소화하며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기적의 16강 이룬 벤투호
벤투호의 월드컵 첫 상대인 우루과이는 신구가 잘 조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팀이었다. 그러나 벤투호는 오히려 우루과이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강팀을 상대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받았던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가 힘을 발휘했다. 벤투호는 수비 후 역습으로 일관하던 기존 한국 축구의 한계를 넘어, 오히려 우리가 주도하는 경기를 펼쳤다. 비록 우루과이의 골문을 열지 못하며 0-0 무승부에 그쳤지만, 귀중한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국은 1승 상대로 생각했던 가나와의 2차전에서 오히려 2-3 패배를 당했다. 이번에도 더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가나가 날린 3개의 유효슈팅이 모두 골이 되는 불운이 겹쳤다. 조규성은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한 경기 멀티골을 기록했지만, 팀의 패배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경기 후에는 벤투 감독이 앤서니 타일러 심판의 이른 경기 종료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벼랑 끝에서 맞이한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 한국은 이른 시간 포르투갈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김영권의 동점골로 추격했지만, 무조건 승리한 뒤 우루과이-가나전 결과를 지켜봐야 했던 한국은 결코 무승부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의 끊임 없는 노력은 경기 종료 직전 빛을 발했다. 후반 추가시간 홀로 긴 거리를 단독 드리블 돌파한 손흥민이 페널티 박스로 침투하는 황희찬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했고, 황희찬은 곧바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역전골을 터뜨렸다.
짜릿한 역전승으로 포르투갈전을 마무리지은 벤투호는 이후 그라운드에 모여 우루과이-가나전의 결과를 지켜봤다. 우루과이가 가나에 2-0으로 승리하면서 한국은 우루과이와 같은 승점, 골득실(1승1무1패, 승점 4, +0)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득점에서 한국(4골)이 우루과이(2골)에 앞서면서 조 2위를 차지, 극적으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선수들은 관중들을 향해 슬라이딩을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선수들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불가능은 없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16강 진출을 자축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든 성과였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1차 목표를 달성한 벤투호는 기세를 몰아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에 도전했다. 그러나 16강 상대는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힌 브라질이었다. 이미 조별리그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벤투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브라질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국민들은 벤투호의 성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난 7일 벤투호의 귀국 현장에는 수백 명 이상의 팬들이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 '굿바이' 벤투…다음 사령탑은?
지난 2018년 8월부터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벤투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벤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전 재계약에 관해 논의했지만, 계약기간 등에 대한 이견으로 동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벤투호가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면서, 벤투와 한국은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됐다.
한국 축구의 다음 과제는 차기 사령탑 선임이다. 벤투 감독과의 작별 소식이 전해진 이후, 대한축구협회가 국내 사령탑 선임을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몇몇 국내 지도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대한축구협회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부인하고, 내년 2월까지 차기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다음 사령탑은 벤투 감독의 유산을 잇고,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이미 한국 축구는 4년간 올바른 신념과 철학이 있는 지도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내면 목표를 이룬다는 것을 벤투 감독을 통해 배웠다.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감독으로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지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인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