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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만들어 준 벤투, 그와 함께한 4년여의 여정 [스투 View]
작성 : 2022년 12월 14일(수) 02:15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대한민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파울루 벤투 감독이 고국 포르투갈로 떠났다.

벤투 감독은 13일 오후 11시 30분 가족 및 코칭스태프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그들이 탄 비행기는 아랍 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벤투 감독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일정이 끝난 후 대한축구협회와의 계약이 종료돼 한국과의 동행을 끝냈다. 4년 4개월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던 한국 축구는 이 기간 분명히 한 단계 성장했다. 벤투 감독과 함께 했던 4년 4개월을 되돌아보자.

벤투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이 종료된 후 한국의 사령탑에 취임했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스웨덴, 멕시코에 연달아 0-1, 1-2로 패했지만 최종전에서 당시 FIFA 랭킹 1위였던 독일을 2-0으로 누르는 '카잔의 기적'을 달성했던 때라 한층 분위기가 올라 있었다.

상황이 이러했던 터라 축구 팬들 눈에 벤투 감독은 성에 차지 않았다. 한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 팀이었던 중국 슈퍼리그 충칭 당다이 리판에서 6개월 만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그의 지도력을 의심했다. 충칭이 벤투 감독에게 약속된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 사실이 숨겨져 있었지만, 팬들은 이를 몰랐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이제 우리는 긴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지휘봉을 잡은 그 순간부터 한국 축구에 적극적으로 '빌드업 축구'를 불어넣었다.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 및 적극적인 패스 플레이를 통해 점유율을 가져오는 것을 강조했으며 그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우리가 주도하는 축구를 하기를 바랐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취임식을 가지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 /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초창기에 다소 흔들리기도 했었지만, 벤투호는 벤투 감독의 공식 데뷔전이었던 2018년 9월 7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2-0) 이후 그해 11월 20일 우즈베키스탄전(4-0 승)까지 6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며 순항했다. 감독 부임 후 6경기 무패는 역대 한국 대표팀 사령탑 중 최초로 세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벤투호는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카타르에 0-1로 발목이 잡히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첫 공식 대회에서 정상 탈환을 목표로 야심차게 나섰지만, 모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지원을 받고 있던 카타르의 거센 돌풍을 넘지 못했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아시아 8강도 넘지 못하는 감독이라며 빠른 경질론을 꺼내들기도 했다.

시련은 계속됐다. 2019년 12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3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반등하는 듯 했지만, 2021년 3월 일본 원정 평가전을 나섰다가 0-3 참패를 당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FC) 등 주요 선수들을 사용할 수 없는 여건에서 해외파 선수들이 상당수 포함된 일본과 맞섰지만, 완패를 막지 못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이례적으로 사과에 나설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언론도 싸늘했다. 벤투호의 4년 4개월 중 가장 비난이 컸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뚝심으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계속 밀어붙였다.

다행히 벤투호는 조금씩 반등하기 시작했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선수단 운영도 조직력 상승의 배경이 됐으며 선수들도 벤투 감독의 철학을 믿고 적극적으로 따랐다. 그 결과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이란을 11년 만에 꺾는 등 상승세를 탔고, 7승 2무 1패(승점 23점)라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일찌감치 카타르행 비행기표를 거머쥐었다.

이후 벤투 감독은 2022년 6월 평가전에서 브라질에 1-5로 대패했고, 9월 평가전에서는 이강인(RCD 마요르카)을 쓰지 않아 비판을 받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고수, 결전지인 카타르에 입성했다.

사령탑인 벤투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던 그들은 카타르에서 한국 축구가 더 이상 축구의 변방이 아님을 증명했다. H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페데리코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 로드리고 벤탄쿠르(토트넘)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한 우루과이를 상대로도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0-0 무승부로 아쉽게 승리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호평을 받기에 충분한 경기력이었다.

이어진 가나와의 2차전에서는 아쉽게 수비진이 흔들리며 2-3 분패를 했지만, 일방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며 빌드업 축구의 위력을 보여줬다.

특히 벤투 감독의 리더십도 이때 빛을 발했다. 한국이 종료 직전 코너킥을 얻은 상황에서 주심이 경기를 종료시키자 김영권(울산현대), 손흥민 등 일부 선수들은 달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이를 본 벤투 감독은 즉각 뛰어가 선수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레드카드를 받았다. 이는 한국 선수들의 투지를 깨우는 결과물로 되돌아왔다.

가나와의 2차전에서 심판에 항의하고 있는 벤투 감독 / 사진=Gettyimages 제공


갈수록 단단해지고 단결한 벤투호는 마침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짜릿한 2-1 역전승을 기록, 16강 티켓을 따내는 '알라이얀의 기적'을 연출했다.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은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2002, 2010, 2022)였다.

이후 벤투호는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는 1-4로 무릎을 꿇으며 카타르에서의 여정을 마쳤지만, 달라진 한국 축구의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제 한국 축구는 4년 4개월 동안 함께했던 최장수 사령탑인 벤투 감독을 떠나보내게 됐다. 그의 업적은 분명하다. 단순히 실점을 막다가 기회가 오면 무조건 상대 진형으로 달리고 보는 수동적인 축구 대신, 우리의 방식대로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지배하는 능동적인 축구를 한국에 이식했다. 아울러 그는 뚝심있는 유능한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부여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한국 축구는 새 시작점에 서 있다. 카타르에서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벤투 감독이 남기고 간 유산들을 살리고 발전시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는 한국 축구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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