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기본 레시피만 있으면 이런저런 도전도 무섭지 않아요"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의 특징은 레시피 그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리 시간이나 순서를 임의로 수정하거나, 불필요한 재료를 추가해 맛을 헤치기 일수다.
평소 요리를 즐기는 남지현은 정석 그대로의 레시피를 고수한다. 사실 요리의 가장 기본 레시피 안에 '핵심'을 지켜냈을 때, '응용 레시피'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아역부터 일찌감치 연기에 발을 들인 남지현 역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찾아 지금도 레시피 연구 중이다.
tvN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연출 김희원)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 700억을 둘러싼 세 자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번 작품에서 남지현은 세 자매 중 둘째이자, 사명감이 투철한 OBN 방송국 소속 기자 '오인경' 역으로 분했다.
가장 먼저 남지현은 종영 소감에 대해 "12부작까지 같이 오시기 힘드셨을텐데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아 감사드린다. 결말까지 너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고 말하며 시청자에게 감사를 잊지 않았다.
오인경은 어릴 때부터 가난을 이겨내려 공부에 매진했으나, 대학에 가서야 '개천에 용 난다'는 옛말이란 것을 알았다. '부자 아빠'를 둔 친구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오인경은 그들 앞에서도 쫄지 않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자의 길을 택했다. 때론 답답하다 느껴질 정도로 심지 곧은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이다보니 남지현은 "저도 대본을 봤을 때 인경이가 '이렇게까지?' 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라며 시청자 호불호를 예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렇지만 인경이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 안 한다. 단지 뚝심 있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다보니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을까?'라고 대한 답답함을 느끼는 포인트가 되면 '쟤 왜 저래?'라고 하실 걸 예상했다. 그런데 이해하실 수 있다면 '쟤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생각하실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처음 캐릭터가 공개된 이후 오인경에 대한 이러한 시청자의 엇갈린 반응이 흥미로웠다고.
작은 아씨들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남지현은 실제 사회부 기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발음이나 포즈 등 리포팅 수업을 받기도 했다.
연기하는 남지현 조차도 오인경의 '끈질김'에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이는 현직 기자와 대화를 통해 답을 얻었다. 남지현은 "자문기자님이 본인은 '오히려 그래서 오인경을 기자란 직업을 아는 분이 쓰셨나보다' 했다더라. 기자님이 생각하시기엔 한 가지를 끝까지 좇아서 원하는 진실을 찾아내고 퍼즐을 모두 맞춰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엄청난 쾌감과 성취감을 뜨겁게 느끼는 사람이 기자를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고 얘길 하셨다"고 전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남지현은 인경의 답답하리만치 굳건한 성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지현은 "현실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싶더라. 그래서 인경이를 연기할 때 더 과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와 캐릭터가 비슷한 면이 있으면 몰입하기 쉬워진다. 남지현과 오인경. 어떤 면이 닮은 것 같은지도 물었다. 남지현은 "사실 인경이가 저랑 많이 안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경이만의 고유함이 있어서 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파악해서 연기할까에 좀 더 집중했다. 저와 연결 짓는 건 생각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남지현은 "방송을 보다가 제 친구들이 '이거 그냥 넌데?' 하는 반응이 있더라. '어디가?' 그랬더니 일단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너처럼) 다큐던데?' 하더라. 몇 가지 지점은 닮았을 거 같다"며 친구들의 반응을 전했다.
"방송 막바지에 박재상(엄기준) 방송국 홀에서 만나서 얘기하는 것 중에, '전 느리지만 확실하게 일하는 타입이에요'라는 대사가 있어요. 이 대사를 보고 아, 어쩌면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일타는 타입이거든요' 남지현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 대사는 남지현과 비슷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오인경이란 캐릭터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이 됐다.
후반에서야 오인경의 진가가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오인경이 숨은 주인공'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남지현은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가끔 현장에서도 얘길 많이 해주셨다. 첫 미팅 때 작가님은 인경이 같은 경우 어려운 캐릭터라 생각한다고 하셨다. 초반에 확실히 뚜렷하게 나타나는 캐릭터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걸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라 초반에는 더 안 나타난다고 하시더라"고 입을 열었다.
감독과 작가의 걱정처럼 오인경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쭉 달려간다. 오인경에 대해 "요령 피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단계란 단계는 다 밟아서 간다"라고 설명한 남지현은 초반엔 걱정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처음엔 답답하실 수 있겠다 생각했다. 답답해하는 분이 많아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안 좋게 보시면 어쩌지?'란 생각을 중간에 생각했다"면서도 "그래도 작가님의 대본이나 감독님의 연출력이 있기 때문에 믿고 갔다. 그랬더니 다행히 세 자매 편이 되어주시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은 아씨들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실제로 극 중에서처럼 700억 원이 남지현의 손에 쥐어진다면 어떻게 쓸까? 남지현은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도 한참을 고민하다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냥 좋은 집 하나 사고 나머진 좋은 곳에 쓰거나 하지 않을까 싶다. 뭔가 특별하게 700억을 잘 못쓸 거 같다"며 웃었다.
그렇다면 하필 왜 '집'이었을까. 그는 "저는 머무르는 공간을 아끼는 거 같다. 그런 공간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집이었다. 친한 사람을 초대해서 만날 때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집 이란 저만의 공간에서 제가 해주는 요리로 지인을 대접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요리를 즐겨한다니 그럼 어떤 요리를 잘하냐고도 물었다. 남지현은 "요리를 딱 뭘 잘한다기 보다는 레시피를 잘 따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실패가 없다. 안 들어가도 되는 재료는 못 넣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중요한 재료와 순서 등을 잘 맞춰 따라 하는 편이라 실패할 확률이 낮다. 레시피만 있으면 이런 저런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단점은 응용이 어렵다(웃음)"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역 때부터 꾸준하게 쉬지 않고 작품 활동했던 남지현. 휴식기 때 요리만 아니라 온전히 진짜 '휴식'을 즐길 법도 했으나, 남지현은 연기자로서 자신을 발전시키기를 선택했다. 남지현은 "사실 쉴 때밖에 할 수 없다. 촬영 중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마치는 게 목표다 보니 그때는 발전이라기 보다는 준비한 것을 시험 보는 느낌이다. 디테일을 추구하는 과정인 거 같다. '보일만한 성과로 한 단계 넘어갔나?'는 혼자 쉴 때 확인한다. 그렇게 준비한 것을 다음 작품에서 또 보여드리고. 이러한 과정(준비)과 결과(작품)를 반복 중이다"고 말했다.
'작은 아씨들'의 오인경 캐릭터도 크게 보면 남지현의 목표를 향한 '과정' 중 하나였다. 그동안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두가 응원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맡았던 남지현은 자신만의 색깔이 강한 '오인경'을 만났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까지 가기 위해 남지현은 기꺼이 지금까지와 결이 다른 오인경을 택했다.
유쾌하면서도 똑부러진 말씨를 가진 남지현이지만, 자신과 정반대 이미지인 악역에도 욕심을 드러냈다.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남지현은 "악한 역할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 빌런도 스펙트럼이 넓지 않나. 나쁘기만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이해가 되어서 안쓰러워보이는 악역도 있고, 아니면 '순수 악 그 자체다' 이런 느낌도 있을 거고. 그런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 캐릭터로 접근하는 거니까 새로운 작업이 펼쳐질 거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라며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