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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유선이 찾은 비상구 [인터뷰]
작성 : 2022년 07월 28일(목) 12:00

이브 유선 인터뷰 / 사진=블레스이엔티 제공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어느덧 데뷔 20년이 넘은 배우에게도 정체기는 찾아온다. 스스로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게 된 순간 '이브'라는 비상구를 찾은 배우 유선이다.

유선은 최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이브'(극본 윤영미·연출 박봉섭)에 대해 "이 작품을 만난 것 자체가 저한테 되게 좋은 선물 같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도 있지만, '이브'가 저에게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이브'는 13년의 설계, 인생을 걸고 펼치는 한 여자의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격정 멜로 복수극이다. 유선은 "배우로서 저희는 역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나를 선택해줄 때 비로소 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주어지는 역할을 해왔는데 어느 순간 답답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며 "그게 '이브'를 만나기 전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매번 계속 고민이 됐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뭔가 정체돼 있어서 답답했다. 뭔가를 뚫고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더라"고 털어놨다.

그런 고민 끝에 유선이 선택한 것은 연극이었다. 유선은 "'마우스피스'라는 연극을 통해 기본으로 돌아가고, 제 자신을 재점검하기로 했는데 덜컥 '이브'가 찾아왔다. 연극도 13년 만에 하는 거라 어려워 죽겠는데 힘든 캐릭터를 만나서 두 개를 병행해야 하는 순간이 와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말부터 유선은 이인극 '마우스피스'와 '이브' 촬영을 병행했다. 유선은 "'마우스피스'는 2인극이라 100분간 퇴장 없이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이브'도 생애 만나본 적 없는 역대급 캐릭터였다"며 "병행하는 게 숨 막힐 정도로 벅찼다. 잘해야 하는 건 분명해서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다. 부담감에 체중이 4㎏ 정도 빠졌다. 결과적으론 연극을 했던 것이 '이브' 한소라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브 유선 인터뷰 / 사진=블레스이엔티 제공


유선이 맡은 한소라는 정재계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한판로(전국환)의 외동딸이자 LY그룹 강윤겸(박병은)의 아내다. 동시에 이라엘(서예지)의 인생을 망치게 한 주범이자 복수 대상이다.

극 중 한소라는 그야말로 안하무인 캐릭터다. 금수저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한소라는 자신이 갖고 싶은 걸 놓쳐본 적이 없다. 욕망이 가득한 한소라의 삶에 '절제'란 없었다. 이에 이를 연기하는 유선 역시 매 순간 모든 것을 토해내야 했다.

한소라에 대해 유선은 "연극을 하면서 한 달 반 정도 한소라를 준비했다. 내적 독백까지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준비했다. 지금까지 감정이 소진돼 버릴까 봐 집에서 깊게 감정신을 리허설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번엔 집에서 리허설을 해봤다. 다른 어떤 때보다 잘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소라를 통해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라며 "그걸 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도 저에겐 너무 의미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 걸 통 틀어서 저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다 보니 작품을 보내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유선 본인에게도 낯설었던 한소라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된 건 박봉섭 감독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유선은 "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을 만한 역할이었다. 분명 캐스팅 과정 속에서 거론됐던 다른 배우들도 있었을 텐데 감독님은 무조건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더라"며 "그런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었고, 감독님의 안목을 증명해내고 싶었다. 동시에 제가 배우로서 정체기였기 때문에 이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두려웠다. 그만큼 절실했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던 유선 표 한소라는 박봉섭 감독의 '원픽'이었다. 유선은 "궁금해서 감독님께 직접 여쭤봤다. 근데 감독님이 제가 '원픽'이었다고 하시더라. 저를 고집하신 감독님의 뚝심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그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이야기했다.

박봉섭 감독의 신뢰를 등에 업은 유선은 자신만의 한소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기존 다른 작품들 속에 악역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소라는 다른 악역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제 눈에 띈 것은 한소라의 천진함이었다.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올바른 성장 과정을 겪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해 몸만 어른인, 아직 정서는 아이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원초적으로 반응하고 제대로 된 인간 관계도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울 땐 굉장히 힘이 있어도 자아가 드러날 땐 천진함이 있다는 차별점을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브 유선 인터뷰 / 사진=블레스이엔티 제공


유선은 "극 중 한소라가 이라엘이 쳐들어와서 집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러곤 강윤겸의 사무실에 가서 매달리는데 이 장면을 집에서 연습하는데도 휴지가 수북하게 쌓일 정도로 울고, 가슴이 아팠다"며 "촬영 땐 제가 먼저 촬영했는데 원래 한 번 찍으면 감정이 다 소진된다. 그런데 제 껄 다 찍고 상대 배우가 찍는데도 개운하기보단 그 감정선 안에 머물러있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남편을 빼앗기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한소라는 결국 정신병동에 갇혀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결말에 대해 유선은 "너무 좋은 장면이고, 너무 소중해서 잘하고 싶었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집에서 연습을 해봤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펑펑 났다. 촬영장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는 장면을 찍는데 순간 아픔이 느껴지면서 감정이 훅 들어가게 됐다"고 매 순간 감정의 파도 속에 휘말렸음을 회상했다.

이렇게 만난 한소라는 유선에게 탈출구와 같았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드러내며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냈다. 유선은 "용기를 많이 얻게 된 작품이다. 그동안 제가 어떻게 노력해야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고, 어떻게 한계를 극복해야 하나 답답한 고민이 있었다"며 "그때 어떤 선배가 '너한테 찾아온 캐릭터 속에서 스스로 발견하게 될 거고, 그걸로 뚫고 나갈 힘이 생길 거야'라고 해주셨다. 그런 고민 끝에 만나게 된 게 한소라였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유선은 "해내야 한다는 저의 처절함과 절실함, 그런 것들이 '이브'를 함에 있어서 힘이 돼 준 것 같다. 절실한 마음을 갖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닿은 것 같다"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아서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한소라는 저에게 비상구 같은 역할을 해줬다. 가능성을 만들어 줬고, 그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음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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