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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담백함 [인터뷰]
작성 : 2022년 06월 30일(목) 13:00

박찬욱 / 사진=CJ ENM 제공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강렬하지 않아도 은근한 사랑이 바로 표현됐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통해 또 다른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박찬욱은 최근 진행된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제작 모호필름)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드보이' '박쥐' 이후 3번째 수상이다. 특히 그는 이번 칸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로커' 송강호와 얼싸안으며 환호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브로커'를 보지 못했던 상태라 송강호 배우가 상을 받을지 몰랐다. 하지만 송강호 이름이 불릴 때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게 되더라. 1999년도부터 시작된 그와의 우정,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얼싸안고 좀 쑥쓰러운 모습을 보이게 됐다"고 회상했다.

오랜만에 국내 영화팬을 만나게 된 소감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처음 '헤어질 결심' GV를 가졌는데, 영화를 많이 웃고 즐겼다는 반응이 가장 반가웠다. 그간 유머를 중시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강렬하다 보니 웃어도 되는지 몰라서 못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맘 놓고 웃을 수 있는 영화란 인식이 생겨 반갑다"고 말했다.

박찬욱 / 사진=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강렬하고 파격적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헤어질 결심' 안에는 은근한 사랑을 담아냈다고 한다. 그는 "'박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많은 작품들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사랑이 배경으로 물러난 것 같기도 하다. 때문에 생각해본 결과 이번 '헤어질 결심'에선 남녀의 로맨틱한 감정과 이 감정을 숨기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이에 사랑 외 다른 요소들은 뒤로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선 절제가 필요했다는 그다. 박찬욱 감독은 "폭력 장면이나 선정적인 묘사를 절제했다. 사랑의 감정에서 파생된 섭섭함이나, 미워하는 마음도 다 절제됐다. 이는 디테일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의 앵글부터 배우들의 눈빛 하나까지 뭐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빠트리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의 디테일은 '헤어질 결심' 만의 특별함이 됐다. 그는 자신만의 연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비결은 딱히 없다. 기준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새로움이다. 독창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것을 늘 생각한다. 다만, 조심해야 할 건 그저 새롭기 위해 새로운 것,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게 말이 되고, 관객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범위 안에서의 새로움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 사진=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은 배우 탕웨이를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그가 출연을 거절했다면 작품은 무산됐을 거라고. 박찬욱 감독은 "저도 정서경 작가도 영화 '색계'를 보고 탕웨이의 팬이 됐다. 함께 얘기하다 보면 늘 탕웨이가 거론됐다. 그를 기용할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원작도 없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된 기회에 주연을 탕웨이로 정한 다음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출연 논의는 대략 줄거리가 만들어졌을 때 진행됐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저희 사무실로 불러 2시간 정도 설명했다. 이후 탕웨이가 하고 싶다는 답을 보내왔다"며 "대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탕웨이를 자주 만나 그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특히 서래와 해준에는 각각 탕웨이와 박해일의 실제 특성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탕웨이는 고집스럽고, 한 번 정한 것은 바로 핵심으로 가는 면이 있다. 또한 무표정으로 있을 때는 뭔가 속에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이런 점을 서래에게 녹였다"며 "박해일은 반대 같다. 좀 투명한 사람이다. 눈을 보고 있으면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드러난다. 큰 동작이나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을 짓지 않아도 보이는 점을 써먹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박찬욱 / 사진=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은 해준과 서래의 숨소리 등으로 서로가 통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특히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을 위해 숨을 맞춰주는 장면에 대해 "'헤어질 결심'에는 정사장면이 없어 그 못지않는 감정의 교류가 한 번 표현될 필요가 있어 고민하다 만든 장면이다. 숨을 같은 속도로 쉬고, 불을 끄고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점은 관능적이지 않지만, 분명한 교감"이라며 "서래가 중국어로 속삭이는 건 해준에겐 자장가로 들릴 것이다. 독특하고 재밌는 사랑의 속삭임 같은 느낌으로도 다가간다"고 설명했다.

해준과 서래, 두 사람 뒤에 흐르던 노래 '안개'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은 "노래로부터 받은 감동을 영화로 옮기고 싶어 출발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안개'에 대해 "제일 처음, 그룹 트윈폴리오이 부른 '안개'로 삽입했었는데, 너무 감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두 남자의 목소리로 나오니 해준의 입장으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 같아 적절치 않다고 봤다. 이에 정훈희, 송창식한테 '안개' 듀엣 버전을 요청드렸고, 성사돼 영광스러웠다"고 감사를 전했다.

'안개' 외에도 바닷가와 도로 전체를 담은 부감 구도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는 주관적인 시점이 많이 나온다. 전화기 안에서 인물을 본다던가, 죽은 사람 눈을 통해 본다던가, 그런 비현실적인 시점샷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부감 구도는 '여기서부터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른 류의 추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부감 장면 두 개 중에 두번째 것에는 파도가 들어왔다 나갈때 서래의 옆모습을 그렸다가 쓱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를 표현해냈다"고 밝혔다.

이처럼 박찬욱 감독은 미묘한 연출, 절제로 '헤어질 결심' 만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하지만 작품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않겠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결말은 보기 나름이다. 이것이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저 해준, 서래의 사랑 방식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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