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마음고생을 거치고 배우가 됐다. 손숙의 외손녀란 타이틀보다 오롯이 자신의 재능만을 인정받고자 했다. 끝내 자신의 힘으로 '헤일로' 주연을 꿰찬 하예린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하예린은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파라마운트+ 오리지널 '헤일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헤일로'는 26세기를 배경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최강의 전사 마스터 치프와 외계 종족 코버넌트의 갈등을 다룬 액션 블록버스터 시리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함과 동시에 유명 Xbox 게임을 원작으로 둔 작품이다. 해외에서 먼저 공개된 후 티빙과 파라마운트+ 협력으로 국내에 선보여지게 됐다. 특히 호주 출신 한국계 배우 하예린과 국내 배우 공정환이 주연급으로 캐스팅돼 주목받았다.
하예린은 캐스팅 과정에 대해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졸업 공연을 하던 중 선배가 오픈 캐스팅콜이 진행된다는 게시물을 SNS로 보내줬다. 16세 동양 여배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고, 1분 자기소개를 영상을 찍어 보내라더라. 도전할까 말까 고민하다 영상을 보냈다. 단계를 거치다가 7개월 후 관 하를 맡게 됐다"고 밝혔다.
하예린이 연기한 관 하는 마드리갈 행성에 살고 있는 반란군의 리더 진 하(공정환)의 딸이다. 코버넌트에 의해 아버지와 동료들을 잃은 뒤, 아버지를 대신해 반란군을 이끄는 인물이다.
하예린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아무래도 관 하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생존자라 고통과 아픔이 많은 캐릭터다. 이에 살아나가려는 힘, 아버지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은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가장 신경 썼다"고 말했다.
반삭의 머리스타일도 강렬했다. 이에 "반은 진짜 제 머리다. 코로나 때문에 촬영을 잠시 쉬다가 오랜만에 갔는데, 반가발로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후반부에는 윗부분은 가발이고, 옆머리는 진짜 제 머리를 밀었다"며 "촬영 초반에는 전부 제 머리여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머리 스타일이 왜 그러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예린은 격렬한 전투신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는 "'헤일로' 1화에서 코버넌트 군과 싸웠던 장면이 기억이 난다. 액션신이 많아 찍는데 한 달이 걸렸던 것 같다. 찍으면서 허벅지에 부상도 입었다"며 "촬영 시간이 15시간이 될 수도 있어 힘을 유지하는 데 가장 신경 썼다. 또 운동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관 하에 몰입한 하예린은 마지막 촬영 때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하예린은 "첫 오디션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총 2년 반 정도 걸렸다. 코로나 때문에 촬영이 많이 힘들어지긴 했다. 그 2년 반 동안 관 하를 소화하려고 노력했었다. 마지막 촬영 때 비를 맞는 장면이 있다. 마치 모든 걸 씻어내는 느낌이었다. '컷' 소리를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아낸 기억이 있다"고 털어놨다.
'헤일로'는 SF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에 참여한 작품이다. 이에 부담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하예린은 "영광이기도 했으나,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부담감을 계속 갖고 있으면 연기할 때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했다. 또 주연이기도 해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자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하예린과 부녀 호흡을 맞춘 공정환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예린은 "함께 연기하는 게 정말 편했다. 같은 한국 배우가 상대 배우가 돼 편안함도 느꼈고, 많은 작품을 해본 배우여서 조언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호흡도 자연스럽지 않았나 싶다"고 감사를 표했다.
앞서 공정환은 영어를 잘하는 하예린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하예린은 "연출가가 영어로 다이렉션을 주면, 공정환 선배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선배는 프로라 낯선 환경에서도 아주 잘 적응하며 촬영하더라"고 밝혔다.
하예린은 배우 손숙의 외손녀로 유명하다. 손숙은 하예린의 '헤일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예린은 "할머니 핸드폰 배경화면도 제 사진으로 바뀌었다. 배우 친구분들에게도 얘기한 것 같더라. 조언 같은 건 잘 안 해주시는 편이지만, 그냥 '용감하게 해라'라는 정도로만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하예린은 손숙을 통해 배우의 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5살 때 할머니의 연극을 보러 갔었다. 분장실에 가서 다른 배우들을 만나본 기억이 지금까지 남는다. 배우가 스테이지에 들어가기 전 과정을 직접 보며 배우들은 자신감 있고, 멋진 사람들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실제 배우가 되니 아무래도 이미지가 예쁘게 포장된 것 같다. 실제 배우는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다 보니 촬영이 끝나면 너무 피곤하더라. 특히 감정 소모가 많은 장면을 찍을 땐, 15분간 쉬고도 또 감정을 끌어 올려야해 힘들다. 하지만 힘들수록 결과가 더 좋게 나오는 것 같다"며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배우의 삶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는데, 할머니가 거짓말은 안 하셨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외조모 손숙은 하예린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하예린은 "고등학생 때는 손숙의 손녀라는 타이틀이 아닌 저의 재능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할머니가 존경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됐고, 할머니처럼 연기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연기를 50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온 배우란 점에서 저의 롤모델이 됐다"고 전했다.
하예린은 호주 시드시에서 태어났다. 연기 공부를 위해 15세 때, 한국으로 건너와 계원예고를 다녔다. 이후 다시 호주로 돌아가 시드니 국립극예술원에서 학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연기 공부를 시작한 하예린은 "고등학생 때 정말 힘든 3년을 보냈다. 밤새면서 대본을 외우고, 희곡을 읽고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니 이런 게 배우의 삶인가 싶었다. 하지만 작품을 잘 알고, 인물의 서사를 이해할 줄 아는 게 좋은 배우임을 깨달았다.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열심히 극복해나갔다"고 회상했다.
호주에서도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하예린은 "학교에 동양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인종 차별도 있긴 있었다. 그런 점도 많이 힘들었다. 왕따 당한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저는 연기를 통해서 자신감을 갖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을 연기를 통해서 하지 않았나 싶다. 저의 힐링은 연기였다. 호주에서 마음고생이 많아서 연극, 영화를 더 많이 봤던 것 같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 "연기는 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힐링을 해주는 매력이 있다"며 "항상 예술적인 것을 하고 싶단 마음이 있었다. 어떻게든 연기를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안 되면 도전하고, 계속 극복하려고 노력을 했던 점이 저의 원동력이었다. 어떻게든 할 것이라는 믿음과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배우로서 한국계 호주인이 갖는 강점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하예린은 "아무래도 한국말과 영어도 할 수 있으니 다양한 기회가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외국에서 제작하는 동양 작품들도 많이 생기고 있어 유리하게 다가온다"며 "또 한국에선 팀워크가 중요하다면, 호주와 외국은 자신 위주로 하는 문화가 있다. 한국계 호주인으로서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가니 그런 면에서 좋은 도움을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예린은 국내 작품 출연에도 의지를 내비쳤다. 영화 '기생충' '놈놈놈'을 가장 재밌게 봤다며 "기회가 된다면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 하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다. 또 송강호 배우와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눈을 빛냈다.
동양인 배우로서의 이루고 싶은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예린은 "외국 작품들이 동양 배우를 잘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경험이 쌓이고, 계속 도전해 어느 정도 상태가 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동양인 배우로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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