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홍 기자]1950~1960년대 충무로는 번화가였다. 가수· 코미디언· 영화배우가 모두 이곳을 거닐었다. 당시 충무로는 한국영화와 같은 의미로 통용됐다. 충무로가 영화의 메카로 불린 이유는 60년대 당시 주요 극장이 충무로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많던 극장은 현재 거의 사라졌다. 이제 충무로 골목은 옛 연예인들에게 추억의 거리다. 희극배우 한무도 한때 충무로 거리를 거닌 적이 있다. 그는 1979년 MBC '청춘만세'로 데뷔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입지를 넓혔다.
그런 그를 충무로의 한 사우나 앞에서 만났다. 수수한 옷차림에 느긋한 말투는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 같아 보였다. 아직도 추억 때문에 충무로를 자주 찾는다는 한무, 그는 충무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냈다.
인터뷰는 충무로 골목에 위치한 한 다방에서 진행됐다.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도 이 충무로 골목에는 없다. 대신 70·80년대 풍의 낡은 다방만 있다. 오래된 다방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무와 묘하게 닮았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추억 속 어딘가에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추억'과 '희극배우 한무',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한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전 신당동 쪽에 살아요. 그럼에도 충무로에 자주 오는 이유는 사우나와 이발 때문이에요. 밥은 안 먹어도 사우나는 해요. 거리가 멀더라도 좋은 사우나가 있으면 찾아갑니다."
그럼 한무는 왜 하필 충무로의 사우나를 찾는 것일까. 기자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충무로가 어떤 곳인가. 1960년대부터 영화의 메카인 곳이다. 그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희극 배우로서 충무로에서 입지를 넓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충무로는 그에게 매우 각별해 보였다.
"지금 나이 먹은 연예인들은 모두 여기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충무로는 50·60년대에 굉장한 번화가였어요. 가수· 코미디언· 영화배우가 모두 이 골목을 거닐었죠. 때로는 가수와 사회자들이 직접 거리에서 쇼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70년대 초반부터 충무로는 고유의 색깔을 잃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았습니다."
그는 먼 곳을 쳐다봤다. 과거시절을 회상하는 듯 했다. 50~70년대 등 사회·문화적 과도기를 겪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당시 충무로는 전성기였어요. 모두 눈만 뜨면 여기 모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70년대부터 방송국 또는 텔레비전이 생기면서 이쪽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어요. 나만해도 그래요. 당시 MBC '청춘만세'로 데뷔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충무로를 나오지 않게 됐죠. 그래서 요즘 여기 오면 허전합니다."
한무 씨는 갑자기 옆자리의 노신사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릴 수 있는지 정중히 요청했다. 노신사는 한무를 단번에 알아봤고, 흔쾌히 담배 한 개비를 줬다. 옛날 충무로의 공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한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도 사람들이 절 매우 좋아해요. 아무래도 제가 서민적인 이미지라서 그러는 것 아닐까요. 방송에서도 제가 연예인이라는 걸 티를 내본 적이 없어요. 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가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인 요청에도 거부하는 법이 없어요."
한무는 매니저가 없다. 유유자적 혼자 일한다. 대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소박하다. 고등학교 동창부터 옛 후배들을 자주 만난다. 한무와 충무로 골목은 사람 냄새 난다는 점이 닮았다.
"요즘은 나이도 있고 그리 바쁘지도 않으니 혼자 다녀요. 스케줄 관리도 제가 해요. 이래봬도 약속 하나는 칼이랍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에게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전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게 더 편해요. 사람냄새가 나는 충무로는 나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죠. 예전부터 나와 동료가 아지트로 삼던 곳이에요."
한무는 아직도 충무로 곳곳을 활보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안 가본 목욕탕이 없을 정도다. 물론 충무로가 예전만큼의 낭만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무에게 있어 충무로는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변할지언정 버릴 수 없는 애장품과도 같다.
최홍 기자 choihong21@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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