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베테랑 배우 김하늘도 안 해본 연기가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동료 배우들과 처음 도전해보는 캐릭터로 호흡을 맞췄다. 데뷔 27년 차에도 안 해본 배역이 있다니.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지난 1996년 패션 브랜드 전속 모델로 데뷔한 김하늘은 1998년 영화 '바이 준'으로 배우에 도전했다. 이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청춘만화' '7급 공무원' '블라인드' '여교사'를 비롯해 드라마 '해피투게더' '피아노' '로망스' '온에어' '신사의 품격' '바람이 분다' '18 어게인' 등 굵직한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이어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김하늘은 tvN '킬힐'(극본 신광호·감독 노도철)에 도전했다. '킬힐'은 홈쇼핑에서 벌어지는 세 여자들의 끝없는 욕망과 처절한 사투, 성공과 질투에 눈먼 세 여자의 무기 하나 없는 전쟁 드라마다.
김하늘이 맡은 '킬힐' 속 우현은 제법 괜찮은 평판을 가진 UNI 홈쇼핑 쇼호스트지만 '정상'엔 오르지 못한 인물이다. 설상가상으로 근근이 유지하던 평판은 여러 악재와 겹쳐 나락으로 떨어진다. 겉으론 나무랄 데 없는 커리어지만, 항상 한 끗이 모자라 뜨뜨미지근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우현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지자 위험한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이에 대해 김하늘은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땐 어려웠다. 이런 류의 작품이 처음이었고, 전작 '18 어게인'이 말랑말랑한 로맨스 작품이라 욕망 있는 캐릭터 흐름을 따라가려니 덜컹 거리는 느낌이 나더라"며 "하지만 막상 감독님,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해가 가더라.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극 초반부 우현은 처절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우현은 무능력한 남편 도일(김진우)과 틈만 나면 돈을 구걸하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한다. 특히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장면 속 우현의 감정은 시청자들에게도 울컥함을 안겼다. 김하늘은 해당 장면이 언급되자 "시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따귀를 맞는 장면이다. 기가 막혀서 울고, 웃다가 격앙되는데 제가 데뷔 27년 차인데도 그런 장면을 찍어본 기억이 없었다"며 "이런 장면들은 감정이 어디까지 나올지 몰라서 첫 테이크에 해버려야 한다. 너무 잘하고 싶다 보니 목소리도 음이탈이 나고, 너무 긴장됐다. 가장 잘하고 싶었고,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가족과 직장,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던 우현은 결국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향하는 우현은 거침없고, 무섭지만 동시에 쓸쓸했다. 김하늘은 우현을 회상하며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고 울컥했다. 이어 "우현이 너무 안쓰러웠다. 사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친구다. 직장 안은 너무 치열했고, 혼자 올라가고 싶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좋은 가족, 좋은 버팀목들이 있었다면 잘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현이는 혼자 잠식됐다. 개인적으로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우현은 매일 악다구니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 우현을 연기하는 김하늘 역시 매 순간을 악과 깡으로 버텨야 했다. 김하늘은 "매 신이 어려웠다. 탈진까진 아니었지만, 하루는 악다구니를 지르는 장면만 촬영을 했다. 그런 감정을 하루 종일 찍다 보니 마지막 장면에선 도저히 자신이 없더라. 감독님한테 못할 것 같다고 했었다"며 "이혜영 선배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그때 감독님이 저를 믿는다고 해주셨다. 그 순간 갑자기 에너지가 났다. 제가 정말 좋은 분들과 촬영을 했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킬힐 김하늘 인터뷰 /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김하늘 표 우현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본인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세 여자의 전쟁을 그리는 '킬힐'에선 우현 역의 김하늘과 함께 모란 역의 이혜영, 옥선 역의 김성령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이어 이혜영과 김성령이 언급되자 김하늘은 "저에겐 너무 대선배님들이셔서 처음엔 긴장이 많이 됐다. 게다가 선배들이 맡은 역할도 쉽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보니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사담을 많이 나누지 못했다"며 "다행히 극 중반, 후반부에 들어서며 마음이 풀어져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너무 따뜻하셨다. 저 혼자만 긴장한 것 같았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너무 멋지게 몰입하시고, 촬영 밖에선 편하게 대해주셔서 그런 태도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서툰 실수들도 이어졌다. 김하늘은 "처음에 너무 긴장해서 NG를 많이 냈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더 긴장이 됐다"며 "나중에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 선배들 역시 캐릭터가 쉽지 않다고 하시더라"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김하늘은 "로맨스는 카메라 앞이나, 뒤에서나 항상 즐겁다. 웃으면서 촬영할 수 있고, 장난도 많이 친다. 하지만 '킬힐'은 선배들도 너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 장난을 전혀 못 쳤다"며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말 걸기도 어려웠다"고 뜻밖의 고충을 털어놨다.
또한 김하늘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여자 배우분들이랑 촬영을 해보고 싶었다. 제가 항상 남자 배우들이랑 로맨스를 하거나 조금 어린 친구들이랑 해서 여자 배우들이랑 촬영한 작품이 없었다"며 "다른 분들이 여자 배우분들이랑 촬영하면서 교감하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킬힐'이 들어와서 환호를 지르면서 촬영했다. 배운 것도 많고, 의지도 많이 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킬힐 김하늘 인터뷰 /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어느덧 데뷔 27년 차를 맞은 김하늘이지만, '워맨스' 작품도, 매 순간 감정을 토해내야 하는 캐릭터도 처음이었다. 김하늘은 "제가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많이 해봐서 '킬힐' 우현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됐다"며 "감독님과 현장에서 이렇게까지 매 순간 얘기했던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다. 제 안에서 부딪히며 우현을 표현해내는 순간들이 저한테는 또 한 번의 성장 지점이 됐다. 다음 작품에 한 발짝 올라갈 수 있는 밑받침이자 용기가 됐다.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김하늘은 "사실 제가 로맨스 코미디를 안 한지 생각보다 꽤 오래됐다. 하지만 '로코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계속 가지고 가고 싶다"고 웃음을 보였다. 이어 "제가 '킬힐'을 선택한 것처럼, 해도 해도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다. 장르물이든, 멜로물이든, 여러 가지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 동시에 멜로물도 해보면서 '멜로 여왕'이라는 수식어도 듣고 싶다"고 열정을 과시했다.
아울러 김하늘은 "제 원동력은 항상 제 자신이다. 학창 시절엔 눈에 띄지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이나 꿈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제가 뭘 잘하는지 항상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며 "연기를 시작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저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저를 사랑하게 됐다. 저를 더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연기고, 제 자신의 가장 큰 원동력 역시 제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하늘은 "저한테는 매 순간, 매 작품이 발전의 시간이다. '킬힐'은 저에게 발전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며 "향후 제가 작품 활동을 함에 있어서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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