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그동안 묵직한 작품들로 관객들과 만나왔던 설경구가 '야차'와 함께 첫 도전에 나섰다. OTT 플랫폼 첫 진출부터, 오락 영화까지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설경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야차'(각본·연출 나현)는 전 세계 스파이의 최대 접전지 선양에서 활동하는 국정원 해외 비밀공작 전담 블랙팀과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일명 '야차'로 불리는 블랙 팀 리더 지강인(설경구)이 특별감찰관으로 나타난 검사 한지훈(박해수)과 만나 벌어지는 첩보 액션 영화다.
설경구가 첫 OTT 플랫폼 진출작인 '야차'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최근 출연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음은 분명했다. 설경구는 '야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조금 편한 오락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쉬운 영화 일은 없지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답했다.
특히 '야차'는 첩보 액션을 담고 있다.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출연진들은 "한국 영화팬이라면 꿈꿨을 첩보 액션물"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주연 지강인 캐릭터를 맡은 설경구 역시 양 어깨에 실린 무게감이 상당했을 터다.
이에 대해 설경구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지강인이 표면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사람처럼 보여서 현실감이 좀 떨어졌다"며 "감독님에게 '톤을 좀 다운시켜서 발바닥을 땅에 붙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럭비공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조금 더 럭비공 같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긴장감이 더 생겼을 텐데"라며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제가 표현한 지강인은 너무 정직한 사람 같았다. 거칠고, 아무 곳에서나 성질을 부리지만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불안함이 보이도록 연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설경구 표 지강인'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내면과 외면 모두에 집중했다. 지강인의 내면이 럭비공이었다면, 외면은 해외 비밀공작 전담 블랙팀을 이끄는 무자비한 '야차'였다. 여기에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가 어우러져 수많은 액션신을 직접 선보여야 했다.
설경구는 "한동안은 작품에서 액션 연기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불한당' 때 잠깐 액션이 나왔다. 처음엔 제가 나이가 드니까 액션 작품이 안 오는 줄 알았다"며 "근데 '야차'는 액션 장면이 상당히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액션을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유 있는 액션도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를 보고, 화려한 주먹질보다는 액션도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같았으면 힘으로 밀어붙였을 텐데, 여유 있게 '툭툭' 치는 것도 괜찮더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설경구는 "굳이 '첩보 액션' 장르를 해야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저한테 대본이 왔길래 읽으면서도 '내가 이걸 해도 될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멋 부리는 걸 해도 되나'하면서 조금 부끄럽더라"며 "하지만 저에겐 블랙팀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같이 만들어가면 재밌고, 오락 영화로 가볍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해봤던 스케일의 영화였기 때문에 호감이 많이 갔다"고 털어놨다.
극 중 지강인의 가장 주된 액션 상대는 그의 경계 대상이었던 한지훈이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지강인과, '정의는 정의롭게 지켜야 한다'는 한지훈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설경구는 '이방인'에서 '동료'가 되는 한지훈에 대해 "지강인과 대립점이 애매하다. 대립이라고 보기엔 때리고, 밥 먹이고, 괴롭히고, 입으로는 가라고 하지 않냐"며 "그게 좋게 말하면 '케미'인데, '정의'라는 목표점이 같아서 그런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한지훈을 연기한 배우 박해수를 언급하며 "'저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해수에게 반했다. 연기를 떠나서 사람이 좋더라. 굳이 '어떻게 하면 호흡이 잘 맞을까'라는 생각도 안 했다. 호흡을 맞추려면 캐릭터 이전에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데 너무 편하게 한 팀처럼 좋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블랙 팀 요원들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설경구는 "양동근의 유연함과 송재림의 작품 속 마초 같은 매력, 모범생 같은 박진영과 액션을 좋아하던 이엘에게 애정을 많이 줬다. 블랙팀이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마음을 주고받고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설경구는 전작 '불한당'을 포함해 '킹메이커'와 이번 작품 '야차'에서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브로맨스 케미'를 보여줬다. 이에 대해 그는 "저는 그냥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비위를 맞추려는 게 아니고 서로 편하게 개인 대 개인으로 편해지려고 한다"며 "상대 배우가 저를 잘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편안함이 화면 안에서 잘 보여지는 것 같다. 의도적인 '브로맨스'는 아니고, 좋은 배우들을 만난 것"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큰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왔던 설경구는 '야차'를 통해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가 아닌,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게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시청'이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했었다"면서도 "성적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부담감과 힘을 뺀 덕인지 성적표는 상승세를 그렸다. 지난 8일 전 세계에 공개된 '야차'는 13일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를 달성했다. 또한 이날을 기준으로 1254만 시청 시간을 기록,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대만 등 총 45개국의 TOP 10 리스트에 올랐다.
설경구는 "좋은 성적을 낸 이유는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던 박해수 덕분이다. 본인 입으로도 '넷플릭스 공무원'이라고 말하더라"며 "'야차' 촬영 끝 무렵에 '오징어 게임'이 공개돼서 저희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울러 설경구는 '야차' 속편에 대해선 "아직은 더 봐야 될 것 같다. 확신이 서야 하는데 구체적인 모습까진 생각을 못해봤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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