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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연상호X탁재영, 복수와 카타르시스의 딜레마 [인터뷰]
작성 : 2022년 04월 04일(월) 10:52

돼지의 왕 탁재영 작가 연상호 감독 인터뷰 / 사진=티빙 제공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과연 폭력을 폭력으로 되돌려주는 것은 응당한 대가이자 통쾌한 복수가 될 수 있을까. 연상호 감독과 탁재영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내내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극본 탁재영·연출 김대진)은 연쇄살인 사건 현장에 남겨진 20년 전 친구의 메시지로부터 '폭력의 기억'을 꺼내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적 스릴러다. 연상호 감독이 2011년 발표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다.

96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은 탁재영 작가의 손 끝과 티빙이 만나 12부작으로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로 가기엔 내용이 부족했다. 제작사, 탁재영 작가와 만나 스릴러를 가미해 연쇄살인 구성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며 "탁재영 작가가 그런 스릴러 구성들을 재밌게 잘 만들어준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반면 탁재영 작가는 "상당히 많은 걱정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도록 리부트 해야 하는데 혹시나 원작이 가진 메시지나 오묘한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우려했었다"며 "원작 메시지와 스릴러 장르에서 어떻게 재미를 조합시켜야 12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연상호 감독님이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대로 가지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돼지의 왕 탁재영 작가 연상호 감독 인터뷰 / 사진=티빙 제공


드라마 '돼지의 왕'의 큰 틀은 성인이 된 학교 폭력(이하 학폭) 피해자가 그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가해자들을 찾아가 응징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 역시 중학생 시절 폭력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그때의 흔적을 복기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주요 캐릭터인 정종석(김성규)은 원작에서 대필작가로 등장하지만, 드라마화되며 형사로 직업이 변경됐다. 황경민(김동욱)이 저지르는 살인과 그가 남긴 메시지를 추적하는 인물이다.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이 워낙 호평받은 작품에, 팬들도 많기 때문에 원작 팬분들 말고 일반 시청자분들이 즐기시기를 바랐다"며 "사회 드라마적인 측면에 스릴러 장르를 접목시키면 훨씬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원작과 다른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원작과 달리 주인공들의 사건은 성인 위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탁재영 작가는 "원작에선 캐릭터들이 끔찍하고 피폐한 삶을 살면서 회상하는 장면들이 있다"며 "원작 속 끔찍했던 과거들을 겪었던 인물들이 현재 성인으로는 어떤 인물이 됐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 역시 "원작을 상영했을 당시 학폭 가해자들이 원작에선 드러나지 않았다. 그때 '가해자들은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들었다"며 "탁재영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가해자들의 미래 모습을 넣어 드라마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인 정종석의 동료 형사 강진아(채정안)도 추가됐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은 황경민도, 정종석도 뒤틀린 남성성의 결과가 초래한 비극 같은 느낌이다. 이 부분을 여자 형사가 따라가게 하면서 목도하게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작 속 사건의 시발점과 같은 캐릭터 김철은 드라마에선 다소 늦게 등장한다. 해당 부분에 대해 탁재영 작가는 "구성상 12부작이라고 하면 터닝 포이트가 되는 전환점이 6부작이다. 그 전환점을 만들어 주는 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좀 다른 분위기로 환기시켜주는 존재인 김철"이라며 "김철은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정종석과 황경민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가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초반부는 이를 빌드업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잔혹했던 학창 시절 폭력의 기억을 되짚는 만큼 드라마화되며 적나라한 피해 장면들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탁재영 작가는 "초반부에 학폭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에게 복수하면서 시청자분들이 느끼는 역린과 카타르시스로 시작했다면, 중반부 이후부턴 시청자분들이 '황경민의 사적인 복수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저희는 '돼지의 왕'이 어른들을 위한 스릴러라고 생각한다. 다소 폭력이 적나라하더라도 후반부로 갈수록 도덕적 딜레마와 복수의 정당성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이런 걸 같이 고민하길 바랐기 때문에 초반엔 좀 리얼하게 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돼지의 왕 탁재영 작가 연상호 감독 인터뷰 / 사진=티빙 제공


앞서 '학폭'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다수 있었던 만큼, '돼지의 왕'만이 가지는 차별성도 필요했다.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폭만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폭력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질문들, '세상은 왜 강자와 약자로 나뉘고 서열화되고 그 사이엔 폭력이 존재하는가'라는 큰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탁 작가는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선 학폭 소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부까진 학폭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더 큰 문제들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8부작으로 분량이 늘며 주인공들의 관계와 사건은 더욱 촘촘해졌고, 시청자들에겐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더 친절해졌다. 탁재영 작가는 "원작에서 아이들의 관계나, 아이들이 느끼는 정서들의 이유들의 서사를 좀 더 만지면서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며 "원작 속에선 정종석과 황경민이 어떻게 친구가 됐고, 이들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까진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에선 그런 둘의 관계를 조금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은 끝없이 폭력과 피해, 그리고 복수의 정당성에 대해 묻는다. 연상호 감독은 "사실 복수를 한다는 것 자체는 말이 안 된다. 큰일 날 일이다. 이 작품의 주제 자체도 황경민이 겨누고 있는 복수의 칼날이 초반부에선 가해자라고 통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뒤로 진행되면서 학교에서 겪었던 폭력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동시에 그 칼날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도 한다"며 "내용 자체가 '피해'와 '가해'라고 하는 것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뭐가 진짜인지 모를 것 같은 상황으로 치닿는다고 생각한다. '복수의 정당성'이랑은 전혀 다른 진행과 결말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울러 탁재영 작가 역시 "4부까지 나왔던 복수의 행위가 응당한가에 대해선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과거의 상처를 통해 치유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다른 사람을 해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응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이후 자연들을 보면서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실 것 같다"고 귀띔했다.

끝으로 탁재영 작가는 "이 드라마 속 가해자들의 태도는 '그거 다 장난이었잖아' '어릴 때 한 번쯤 그럴 수 있지 않나' '시간 다 지났고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는 거 아냐?'라고 한다"며 "만약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신다면 한 번쯤은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에겐 장난일 수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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