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동=스포츠투데이 이서은 기자] 허구연 신임 KBO 총재가 취임식에서 현 한국 야구의 부족했던 점을 가감 없이 꼬집으며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29일 서울 한국야구회관빌딩에서 허구연 신임 KBO 총재의 취임식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KBO는 지난 25일 "24일 열린 구단주 총회에서 서면 표결을 통해 만장일치로 허구연 MBC 해설위원을 제 24대 총재로 선출했다"고 취임 소식을 알렸다. 이로써 최초로 야구인 출신 총재가 탄생했다.
1951년 생인 허구연 신임 총재는 야구 선수 출신으로 고려대 시절 중심 타자로 활동했다. 졸업 후 당시 실업야구 최강팀이던 한일은행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2년 만에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은퇴했다.
은퇴 후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MBC 야구 해설위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5년 청보 핀토스 감독직에 오르며 역대 최연소(만 34세) 사령탑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이듬해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코치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온 허구연 총재는 야구 지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해설위원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해설위원 뿐만 아니라 행정가로서의 다양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허구연 총재는 대한야구협회 이사, KBO 규칙위원장, 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야구발전위원장, 아시아야구연맹 기술위원회 위원장, KBO 총재 고문 등을 역임한 끝에 야구인 출신 1호 총재의 자리에 올랐다.
이날 허구연 총재는 KBO 육성팀으로부터 올 시즌 사용하게 될 공인구를 전달받은 뒤 취임사를 발표했다.
허구연 총재는 단상 앞에 선 뒤 "마이크 앞에 섰지만, 해설할 때랑 정말 다른 듯 하다"며 "이런 어려운 시기에 총재를 맡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운을 뗐다.
이어 "야구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래서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KBO도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팬들에게 실망을 준 사건과 사고, 국제대회 부진 등 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겹쳤다. 저는 9회말 1사 만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다고 생각한다"고 비유했다.
허구연 총재는 취임 기간 내 핵심 과제를 발표했다. 그는 "제일 먼저 팬 퍼스트(FIRST)로 시대의 흐름에 맞춘 디지털 기반 야구 산업화를 이루겠다. 팬들 뿐만 아니라 MZ 세대의 유입에 심혈을 기울이기 위해 MZ세대위원회를 창설하겠다"라고 계획을 전했다.
두 번째 과제로는 인프라 건설을 위한 대외 협력과 규제 완화를 말했다. 허구연 총재는 "인프라의 개선을 위해 힘이 닿는 한 관계자들과 협력해 문제점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 야구센터 건립을 위해서도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 번째로 허구연 총재는 약화된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허구연 총재는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교류전을 열겠다. 다가오는 국제대회들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사실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지 않나. 그런데도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수준이 어디에 와 있는지 선수들이 몸으로 느껴야 한다. 특히 한일전 같은 경우는 우리도 A매치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허구연 총재는 "2017년 역대 최다인 840만 관중 돌파 후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금년은 상당히 좋은 조짐들이 많다.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광현(SSG 랜더스)이 돌아왔고 좋은 신인들도 상당히 많다. 외국인 선수들도 관심을 끄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매우 중요한 한 해다. 1000만 관중 돌파가 쉽지 않겠지만, 10개 구단에서 100만 관중이 들어올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허구연 총재는 처음부터 최근 가장 뜨거운 문제인 '강정호의 키움 히어로즈 복귀 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키움은 지난 18일 "KBO에 강정호에 대한 임의해지 복귀 승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미 임의해지 복귀 승인 요청에 앞서 강정호와 2022시즌 선수 계약을 체결했고 연봉은 2022시즌 기준 최저 수준인 30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정호는 지난 2016년 12월 서울 강남구에서 음주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 뒤 운전자 바꿔치기로 음주운전을 무마하려는 시도까지 저질렀다. 이미 2009년, 2011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고도 구단에 이를 은폐한 사실까지 알려지며 당시 큰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그러나 키움이 올해 갑작스럽게 강정호의 복귀를 '통보'하면서 지난 부족함을 진단하고 흥행을 노리던 KBO 리그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를 두고 KBO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허구연 총재는 "(강정호 건은)여러 각도에서 조명을 하고, 고려해봐야 한다. 저도 고민 중에 있고 심사숙고 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허구연 총재는 취임식 하루 전인 28일 선수들에게 '4불'(음주운전,승부조작,성범죄,금지약물 복용)의 메시지를 전하며 경각심을 심어준 바 있다.
이에 대해 허구연 총재는 "지금은 팬들이 쌍방으로 소통하고, 가감 없이 표출하는 시대다. 그런데 한국 야구는 그만큼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터졌다"라며 "재임 기간 동안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최근 MLB에서 복귀한 김광현이 복귀 기자회견에서 팬서비스 문제를 언급하며 허구연 신임 총재와 좋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미디어데이 때 선수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다. 그 자리에서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저도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감한다. 김광현이 참 고맙고, 문제 의식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이 든다"며 "KBO 선수들이 얼마나 그동안 팬들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는지 느꼈다. 구단에서 돈을 주지만, 실제로 팬이 주는 것 아닌가. 팬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지 않나. 선수들이 진심으로 팬서비스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MZ 세대의 유입을 위해 MZ세대위원회를 만들 것을 언급했던 허구연 총재는 중계권 문제로 뉴 미디어(유튜브)에서 경기 영상들을 볼 수 없는 점도 지적했다.
허구연 총재는 "이사회에서도 말을 했는데, 쇼츠나 흔히 말하는 '짤'들을 인터넷 상에 풀어놓지 않고 팬들을 확보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긴 야구 경기를 보겠는가. 그걸 차단시켜 놓고 젊은 팬들이 떠나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며 "중계권을 많이 받는 것에만 집중했지 어떻게 젊은 팬들과 함께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했다. 내년에 중계권 계약이 끝나지만 사무국 TF팀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검토해보겠다"라고 답했다.
아마야구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허구연 총재는 "아마야구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티볼과 같이 야구 놀이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웃풋이 바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길게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설위원으로서 받았을 법한 재치 있는 질문들도 나왔다. 허구연 총재는 "올해 어떤 팀이 우승할 것 같냐"는 질문에 "외국인 선수 세 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잘할 팀은 김광현이 돌아온 SSG와 양현종이 돌아오고 이의리, 김도영이 활약을 일으킬 KIA 타이거즈를 주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허구연 총재는 "강팀은 LG 트윈스, NC 다이노스, KT 위즈일 것 같고. 롯데 자이언츠는 래리 서튼 감독이 두 번째 시즌이니까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김도영, 문동주를 보러 야구장에 오고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아닌가.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신인왕이고 누가 타이틀 홀더를 차지할 것 같고 이런 걸 예상해야 하는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허구연 총재는 KBO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전했다. 허구연 총재는 프로 선수들의 일탈 시 구단, 선수들과의 법적 문제 우려로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구연 총재는 "상벌위의 조항들을 한시적으로라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하며 "음주운전 같은 경우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상벌위 없이 내부 규정으로 아웃시켜야 한다"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게 아니라, 상벌위를 개최할 필요도 없이 강력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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