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필수 조건, 소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다. 소외된 곳을 들여다 보고 미처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 철학이 없다면 쉽지 않다. 문화계를 휩쓴 팬데믹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같은 소신을 굳건히 지키는 곳이 있다. 오랜 역사 만큼 단단히 뿌리를 내린 독립영화 상영관, 인디스페이스다.
국내 최초의 독립영화 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는 2007년 11월,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에 터를 잡고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물론 소외된 독립 영화를 고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경제적 이윤도 고민이지만 정치적 이슈와 연관된 지난 2009년은 인디스페이스가 겪은 가장 어려운 시절로 기억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와 연계되면서 강제 휴관에 들어선 것이다.
운영이 재개된 건 영화인, 시민들의 후원 덕이었다.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온정의 손길이 모아졌고 2012년 서울 광화문, 2015년 종로 3가 서울극장에서 다시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간간이 발길을 하는 곳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완벽히 대처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멀티플렉스가 영화 시장을 장악한데다 펜데믹 악재가 겹치면서 서울극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것이다. 모진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자 했던 인디스페이스는 다시 휴식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시대가 꺽을 순 없는 법. 인디스페이스는 이달 초 롯데시네마 홍대입구로 이전, 다시 문을 열고 관객들과 만난다.
인디스페이스 재개관 / 사진=인디스페이스 제공
인디스페이스의 역사는 휴관, 재개관의 반복이다. 독립 상영관에 있어 운영의 어려움은 일상과도 같다. 멀티플렉스도 죽어가는 시기, 이들의 어려움은 곱절일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영화인 503명은 독립 상영관의 위기를 호소하는 제안문을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코로나19 사태 후 극장 매출은 감소됐고, 국내 영화 산업은 타격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다. 가장 피해가 극심한 것은 중소 제작, 배급사 및 상영관이다.
인디스페이스 이은지 홍보팀장은 스포츠투데이에 "독립 상영관의 위기는 늘 도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어려움은 있었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며 "실은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버틸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문화 지킴이라는 사명감에서다. 다양성이 사라진 영화계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팀장은 "독립영화가 사라진다면 문화의 다양성 또한 위기를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독립영화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존재한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영화, 사회를 여러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들이 이 사회에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팀장은 "많은 이들의 삶의 시야를 넓혀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독립영화관이 지금의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다양성은 인디스페이스의 철학이자 존재의 이유다. "거대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작품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자 한다. 개봉의 뜻을 가지고 저희 극장의 문을 두드리는 작품들을 최대한 상영하려고 노력한다"는 이 팀장은 "다양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디스페이스는 영화인들의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멀티플렉스는 흉내낼 수 없는 정다움이 있는 곳이다. 상영이 끝나면 감독과 배우가 관객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다. 멀티플렉스도 GV가 존재하지만 인디스페이스의 토크 시간은 더욱 특별하다. 토크 행사가 가장 자주 열리는 극장이고, 그 만큼 대화에 밀도감이 높은 편이다. 독립영화 상영관만이 지니는 매력이다.
고유 프로그램도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열리는 '인디돌잔치'가 그것. 개봉한 지 1년 된 작품들 중 관객 투표로 선정된 한 작품을 상영하고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다.
철학과 소신이 있는 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꿋꿋하고 묵묵하게, 영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인디스페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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