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짧지만 굵다. 작품 속 이유미가 보여 주는 존재감이다. 이번 '지우학'에서 역시 이유미의 매력이 통했다. 잠깐 동안에도 임팩트가 강렬해 짙은 잔상을 남기는 그다.
2010년 영화 '황해'로 데뷔한 이유미가 '화이' '배우는 배우다' '조류인간' '능력소녀' 등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특히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는 강렬한 연기를 펼치며 배우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유미가 얼굴을 제대로 알린 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서다. 이어 '지금 우리 학교는'(극본 천성일·연출 이재규, 이하 '지우학')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했다.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극 중 이유미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나연 역을 연기했다.
이유미와 나연의 첫 만남은 원작인 웹툰이었다. 웹툰 속 이기적이고 악랄한 나연을 바라보며 '참 나쁘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 나빴던 나연과 오디션에서 재회했다. 이유미는 오디션 당시를 회상하며 "대사를 씹어 잘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쉬워하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나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유미를 향한 신뢰였다. 이유미는 "촬영 전 감독님과 배우들이 한 명씩 면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왜 제가 나연이 됐냐고 물어봤더니 감독님이 제 전 작품을 보시고 믿고 있었다고 얘기해 주셨다"며 "그 말이 너무 감사했고 그 말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 믿음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나연이 된 이유미는 역할의 서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빌런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의 행동과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전사를 만들어갔다. 이유미 표 빌런이 탄생할 수 있던 이유다.
먼저 이유미는 나연의 가정환경에 집중했다. 그래야만 극 중 경수(함성민)에게 '기생수(기초 생활 수급자)'란 독설을 뱉는 나연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그는 "나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 때문에 경수한테 하는 행동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라온 친구가 나연인데 경수가 다른 친구와 너무 쉽게 친해지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는 모습들을 보면서 질투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유했던 가정환경을 외적으로도 표현하려고 했다. 실제 작품 속 나연은 핑크색 가방, 카디건을 착용하며 온실 속 화초 같은 공주 이미지로 비춰진다. 이에 대해 이유미는 "(의상들이) 공주님처럼 키워준 가족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 주는 장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밉고 악랄하지만 이유미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나연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나연에 대해 "주변에 없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한다"며 "정말 나연이처럼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가까운 사람이 변할 수도 있는 거지 않냐. 그런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나연은 친구를 배신한다. 이후 친구들에게 다시 다가가려고 하지만 결국 좀비가 된다. 이유미는 그런 나연의 죽음이 아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유미는 나연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는 "나연이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선생님이 마지막에 해 주신 말을 되새김하면서 좋은 일을, 또 친구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을 거 같다"고 언급했다.
이유미에게 유독 애틋했던 친구도 있다. 바로 경수다. 그는 "현장에서도 경수 역의 함성민에게 미안했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며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기에 임할 때는 감정에 휘두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미안해서 어버버 거리면 안 될 것 같아 정말 열심히 연기를 했다"고 전했다. 또한 함성민과 함께 더 나은 장면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유미는 "대사를 많이 바꾸진 않았지만 어미나 행동을 취하거나 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둘 다 열심히 파이팅 넘치게 했다"고 설명했다.
나연에게 있어 경수는 애증이었다. 이는 이유미가 둘의 관계를 '러브라인'으로 정의한 이유기도 하다. 이유미는 "많이 미워하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저 나름대로 나연이 방식대로 로맨스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경수 너무 사랑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우학'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 준다. 정의의 사도, 선의를 지닌 사람뿐만이 나연과 같은 악역도 등장한다. 이는 이유미가 생각한 '지우학'의 강점이자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는 "'지우학'은 사람이 사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만약 진짜 좀비가 나타난다면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유형으로 사건들을 대처할 것"이라며 "'지우학'에서 그런 다양함을 보여 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유미는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사연 많은 역할을 소화했다. 상처가 가득하고, 어두운 사연으로 점철된 역할 등을 연기했다. 강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도맡아 온 만큼 이러한 이미지 고착화에 대한 우려도 있을 터.
그러나 이유미는 "캐릭터에 갇힐 것 같다는 걱정은 안 하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저는 더 멋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러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섭지만 무섭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미는 자신이 맡은 모든 역할을 사랑했다. 그게 빌런일지라도, 또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역할일지라도. 다만 이제는 새로운 모습에도 욕심이 나는 그다. 이유미는 "단명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좀 오래 살아보고 싶다"며 "밝고 재밌는 캐릭터도 해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 못 해 본 역할이 많아 '이것만 할 거야'라는 마음은 아니다. 더욱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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