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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 유인수가 쌓아올린 공든 탑 [인터뷰]
작성 : 2022년 02월 17일(목) 14:28

지금 우리 학교는 유인수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구 제공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단순히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부터 걸음걸이, 인물의 행동 하나까지 고민하고 구축한다. 유인수 표 윤귀남이 더더욱 시청자들의 분노를 부른 것도 어쩌면 이 덕분이다. 스스로 '배우로서의 가치'에 대해 끝없이 의구심을 가졌다는 유인수는 이제야 비로소 웃게 됐다.

2017년 영화 '기억의 밤'으로 데뷔한 유인수는 생각보다 연기판에 잔뼈가 많다. 고등학생 시절 무작정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상경했다는 유인수는 수많은 보조출연 시절을 거쳐 오늘을 맞이했다.

과거 '위기탈출 넘버원' 대포통장 편에 출연했던 사실만으로도 가족들과 환호했다는 유인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예능 '런닝맨'에도 출연했다. 당시 주인공 김정환 역을 맡은 배우 류준열 옆자리에 발탁(?)돼 벅차올랐다는 유인수는 이제 누군가의 옆자리 1번이 아닌 '배우 유인수'로 당당히 불리게 됐다.

오랜 시간 꿈꿔온 시간을 즐기고 있는 유인수에게 이번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극본 천성일·연출 이재규, 이하 '지우학')은 그야말로 자신감이 됐다.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달 28일 공개돼 약 2주간 1위 자리를 수성했다.

달라진 일상이 피부로 와닿는 건 유인수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실 제가 체감하고 있는 부분들은 거의 비슷하다. 근데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반응을 더 많이 검색하고 찾아보더라"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지우학'은 현재 국내외로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인수는 "해외 스트리밍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앞섰다. 제가 어떤 배우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시청자분들이 훨씬 많으셨을 거다. 저라는 사람을 이 작품으로 마주하실 텐데 제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잘 표현될까 싶었다"며 "특히 해외 시청자분들은 자막으로 그걸 받아들이시는데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섬세한 호흡이나 톤들이 자막에 조금 뒷전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반응을 보니 제가 고민했던 부분들을 알아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미팅 연락을 받고 '지우학' 원작인 동명의 인기 웹툰을 먼저 섭렵했다는 유인수는 "원작을 다 보고 난 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윤귀남' 밖에 없었다. 캐스팅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제가 맡을 만한 캐릭터들을 찾아봤는데 윤귀남은 저보다 훨씬 능력 있고 경험 많은 배우가 해야 될 것 같았다"며 "캐스팅됐을 땐 제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임팩트 있는 인물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부담감과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유인수가 맡은 '지우학' 속 윤귀남 캐릭터는 좀비 면역자 겸 최대 빌런이다. '절비'(절반 좀비)가 돼 괴력을 얻게 된 윤귀남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심마저 잃은 괴물이 된다.

앞서 이재규 감독은 캐스팅 비화에 대해 "캐릭터와 최대한 닮아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재규 감독이 배우들에게 내 준 숙제는 '현장에선 연기적 활동보다 본인으로서 작용하고 반응하기'였다. 이를 회상하던 유인수는 "처음엔 굉장히 놀랐다. 근데 감독님이 따로 저한테 '윤귀남은 네가 만들어줘야 해'라고 하셨다. 저에게 왜 윤귀남을 주셨는지는 여쭤보지 못했다"며 "나중에 코멘터리 영상에서 제가 독백 연기 대회에서 했던 작품 속 모습에서 설움과 원통함이 윤귀남과 비슷한 면을 찾으셨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미 '윤귀남'이라는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머지는 이를 연기하는 유인수의 몫이 됐다. 자신만의 '윤귀남'을 고민했다는 유인수는 "원작에선 귀남이가 사이코패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저는 평범한 인물이 말도 안 되는 큰 힘을 얻었을 때 이걸 섬세하게 제어하는 것이 아닌, 그 힘을 즐겁게 사용해서 제삼자가 볼 땐 어느 순간 괴물이 돼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사이코패스적으로 화내도 눈이 돈 연기를 하는 것보단 학생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를 조금 더 입체화 시키려고 했다"며 "감독님께선 많은 언급을 안 해주셨다. 저를 믿어주시는구나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좀 불안한 지점도 있었다"고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유인수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구 제공


배우에게 있어 좋은 발성과 딕션(발음)은 생명이다. 유인수가 연기한 윤귀남은 이 또한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걸음걸이도 마음대로, 발성도 최소화시키며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며 "평상시에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이런 변화를 겪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를 고민했다. 완성된 편집본을 본 시청자분들이 제가 고민했던 과정들에 대해 언급해주실 때 성공했다는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좀비에 물린 뒤 빌런 '절비'가 된 윤귀남은 점차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성까지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유인수는 이 같은 캐릭터에 대해 "좀비가 된 이후엔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시작과 끝에선 다른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며 "1, 2회에선 귀남이가 껌을 씹고 있다. 좀비가 됐을 땐 이나연(이유미)을 해하고 손가락을 씹는다. 이건 무언가를 씹는 게 익숙한 사람이 좀비가 됐을 때 두 개체 사이가 다르지 않다는 걸 연결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원작에서 오롯이 악인으로 그려지는 윤귀남에게 유인수는 숨을 불어넣었다. 그는 "단순히 판타지적인 악인으로 표현하기 싫어서 일진도, 왕따도 아닌 애매한 순간에 포진돼 있는 이인자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 괴물이 돼 가는 과정을 그렸다. 원작 속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각색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인수가 구축한 윤귀남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던 건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한 몫했다. 유인수는 "작품 준비 과정에서 제일 공을 들인 건 좀비 안무 연기와 액션 연기였다. 학생들 액션이고, 좀비 사태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이라 일반적인 드라마, 영화 속 액션과는 결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고 차별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유인수는 "좀비 연기자분들이 촬영 전에 상주하실 땐 순하게 계신다. 그냥 같이 밥도 먹고 지내는데 슛만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전력으로 달려오신다"며 "교장실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못 들어갔다. 근데 진짜 달려와서 저를 무시더라. 그분들은 그분들의 몫을 한 거긴 한데 저는 연기를 안 하려고 해도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저분들이 전력질주를 할 걸 아니까 제가 진심으로 안 뛰면 다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뜻밖의 고충을 밝혔다.

극 중 고등학교가 배경이 된 만큼, 출연 배우들 역시 한 학급 학생들처럼 끈끈해졌다. 다만 유인수는 빌런 역을 맡은 탓에 개인 촬영이 많아 외톨이처럼 현장을 떠돌았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안무나 액션 연습할 땐 다 같이 있었다. 전 출연진들이 몸을 쓰는 촬영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지더라"면서도 "촬영에 들어가니 혼자 활동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무리에 유대관계가 돈독해지는 걸 바라보면서 한편으론 조금 부러운 면도 있었다. 그래도 촬영장에서 제가 혼자 활동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몰입도를 깨지 않는 선에서 배우들과 마주했다"고 털어놨다.

인기와 동시에 논란도 컸다. 원작에서 볼 수 없던 성착취, 미혼모 출산 장면 등은 대중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장르와 별개로 과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유인수는 "촬영을 준비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촬영 내내 배우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끔 많이 신경 써주셨고, 저희에게도 물어보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장면만 떼놓고 본다면 이것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으로 소비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장면을 통해서 그 이후 인물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강한 동기가 됐다. 그중 가해자 윤귀남은 면역자라는 아이러니한 모순들이 조금 더 부각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 학교는 유인수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구 제공


'지우학'을 통해 스스로 배우로서의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유인수는 "전작에서도 윤귀남과 비슷한 느낌의 일진 역할을 많이 했었다. 다만 그 캐릭터들은 어딘가 허술한 일진들이었다"며 "귀남이를 준비하면서 연민, 허술함을 제외하고 사소한 눈빛부터 하나하나 새로 만들었다. 누군가 알아봐 주지 못해도 제가 생각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쌓아갔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유인수는 "연기를 하고, 작품을 함께함에 있어서 행해지는 모든 과정들이 즐겁다. 스태프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현장에서 같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그걸 쫓아서 지금까지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평소 사색과 잡념을 즐긴다는 유인수는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시간들을 즐겼다. 이는 연기의 좋은 소스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해야 했다. 유인수는 "그동안 제가 배우로서 일을 하는데 가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계속했었다"며 "'지우학'을 만나고 나선 그 지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것 같다. 덕분에 자신감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연기도 기술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연기 노트도 만들었다. 유인수는 "사소한 것부터 상대방의 어느 쪽 눈을 봐야 하는지 같은 기술적인 것까지, 잊어버리면 제 것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잡아두려고 애쓴다"며 "기술로 시작한 연기 노트는 지금 제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걸로 바뀌게 됐다"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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