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넷플릭스가 한국에 발을 내딛기도 전부터 이미 그들과 인연이 시작됐다. '넷플릭스 딸'이라는 별명이 언급되자 고개를 끄덕이던 배우 배두나가 이번엔 넷플릭스와 손잡고 한국 최초 SF 드라마 '고요의 바다'로 돌아왔다.
배두나와 넷플릭스의 인연은 2015년 첫 선을 보였던 미국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8' 시즌1부터다. 넷플릭스 코리아가 출범한 이후엔 '킹덤' 시리즈, '페르소나'에 이어 이번 '고요의 바다'까지 주연을 맡았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연출을 맡은 최항용 감독이 앞서 발표한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앞서 원작 단편영화를 먼저 본 후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는 배두나는 "감독님이 굉장히 영리한 방법으로 SF물을 만드셨다. 학생 시절 졸업 작품이었음에도 굉장히 몰입을 잘 시키더라"며 "전 이미 해외에서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등 SF 작품을 찍은 경험이 있다. SF 작품과 일반 작품의 차이부터 상상력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걸 보면서 '한국 예산으로 만드는 SF 영화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배두나는 이러한 우려가 곧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최항용 감독과 만난 배두나는 '고요의 바다'를 통해 국내 첫 SF 드라마의 포문을 열었다. 배두나는 "원작을 보면서 이분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이 맡은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 캐릭터를 언급하며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묘사라면 제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류 계기를 밝혔다.
배두나는 '송지안'의 모티브를 최항용 감독에게서 얻었다고 깜짝 고백했다. 이에 대해 "감독님을 모티브로 잡았다. 감독님이 말이 없고 얼굴이 정말 하얗다. 제가 '은은한 오타쿠'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며 "감독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송지안을 사회성도 별로 없고, 은둔형 외톨이 스타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탄생한 완성본에 대해 배두나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물론 아쉬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여건이 더 좋았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라며 "저희가 갖고 있던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조건 속에서 피, 땀 흘려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만족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고요의 바다'는 공개 직후 SF 장르 특성과 느린 호흡으로 인해 엇갈린 호응을 얻었다. 단편 영화였던 원작을 8부작으로 늘린 탓도 있었다. 배두나는 "이 작품은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심리 묘사나 공포감 때문에 선택했다"며 "요즘은 1회에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더라. 자극적인 걸로 시선을 잡고 가야 하는데 우리 작품은 '고요의 바다'지 않냐. 고요한데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분위기다. 외부에서 파도가 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자극적인 걸 원하시는 관점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SF 장르의 가장 큰 특성은 상상력이다. 보는 이들은 물론,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현장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배두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찍을 때 다른 장르 작품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했다"며 "다행히 '고요의 바다'는 많은 부분들이 구현돼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기하기는 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충은 뜻밖의 부분에 있었다. 배두나를 비롯한 배우 공유, 이준, 김선영, 이무생 등은 달을 배경으로 하는 탓에 우주복을 입고 액션신을 소화해야 했다. 배두나는 "다른 작품에서 양궁, 격투기, 수중 촬영 등 고생하는 건 다 해봐서 괜찮았는데 우주복이 가진 기본적인 무게감이 너무 무거웠다"면서도 "입다 입다 우주복까지 입게 됐다. 배우로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고요의 바다'는 '국내 최초 SF 드라마'라는 수식어 부터, 출연 배우 라인업까지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여기에 배우 정우성이 제작자로 나서며 또 한차례 주목을 받게 됐다. 배두나는 "시나리오를 받고 마음의 결정을 하기 전에 우연히 파리의 한 식당에서 정우성 선배를 봤다"며 "저희가 원래 사적인 자리에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안 한다. 그때 '시나리오 읽어봤어?'라고 물으시길래 '네'라고 답했다. 그게 끝이었다"고 담백한 일화를 밝혔다.
배두나는 김은희 작가부터 '매트릭스' 연출 워쇼스키 자매까지 국내외 창작자들로부터 열띤 러브콜을 받았다. 해외시장까지 발판을 넓힌 지 오래다. 천천히 쉬어갈 법도 하지만 배두나는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2'와 tvN '비밀의 숲2', 영화 '#아이엠히어' '바이러스' 등 쉬지 않고 '열일'했다.
자신의 '열일' 이유를 묻자 배두나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가 몸을 사릴 필요가 없어졌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하는 것이 제 전투력"이라며 "해외 작품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재밌다. 앞으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조연, 블록버스터, 독립 영화 등등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겠다"고 열정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배두나는 "제 드라마 데뷔가 1999년이다. 참 운이 좋게도 그때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라 눈부시도록 빠르게 발전했다.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며 "배우로서 활동 무대가 넓어지니까 좋다. 해외 제작자들과 작업을 통해 한국 영화인으로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배워가고 있다"고 의지를 다졌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