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영화 '토이스토리' 속 버즈의 명대사가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 지각변동 중이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메타버스'로 떠들썩하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다.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코로나19를 만나며 급부상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 멀어져 버린 세상이 '가상'세계를 입으며 활성화된 셈이다.
오프라인 시장의 위축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기업들에게 메타버스는 더없는 호재였다. 비대면 상황에서도 가상세계로 수익을 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솔깃한 아이템인가. 더군다나 이 가상세계에는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 인원 제한이란 한계도 없다. 온라인으로 무한대의 가능성이 생긴 격이다.
실제 메타버스 시장은 무한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메타버스 시장이 2025년, 2800억 달러(약 33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메타버스는 대중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연예계를 타고 크게 확장 중이다. 연예계 전반을 휘감은 메타버스는 온라인 업무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MZ세대'를 집중 저격한다. 도리어 메타버스가 면대면보다 더 친숙한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강한 파급력을 미친 것이다.
◆ 엔터업계 지형도 바꾼 '메타버스'
사진=영화 매트릭스, 아바타, 프리 가이, 용과 주근깨 공주 포스터
엔터업계에서 메타버스는 주요 홍보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예계 전반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해 콘텐츠를 홍보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극장에서 먼저 싹을 틔웠다. 영화계에서 메타버스란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편화돼 사용된 세계관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현실을 다룬 '매트릭스'(1999)가 그러했고, 인간의 의식으로 나비족의 몸을 원격 조정하는 '아바타'(2009), 암울한 현실과 달리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한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그린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 그러했다.
최근에도 가상세계를 주제로 한 영화가 줄이었다. 올해만 따져도 수 편이다. 자아가 생겨버린 게임 속 캐릭터가 게임 속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는 '프리 가이', 평범한 소녀가 가상세계 U에 접속해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애니메이션 '용과 주근깨 공주' 등이 그 예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나 상상하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방송계도 메타버스 시류를 탔다. 소위 '부캐'로 메타버스 세계관을 예열하던 방송계는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로 시청층 공략에 나섰다.
예능의 경우, 유토피아에서 일어나는 생존 미션을 담은 가상 시뮬레이션 넷플릭스 '신세계로부터', 블루바이러스의 치료제인 행복을 찾기 위한 다섯 종족들의 '부캐' 버라이어티 TV조선 '부캐전성시대' 등 메타버스를 적용한 프로그램들이 이미 전파를 탔다.
드라마 업계도 '메타버스 모시기'에 혈안이다. 드라마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는 메타버스 드라마 제작에 나섰다. 컴투스는 메타버스 사업 확대를 위해 최근 배우 이정재 정우성 소속사인 아티스트컴퍼니를 인수하며 "톱배우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세계를 뒤흔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메타버스 게임으로 제작돼 어마어마한 부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강원도 강릉을 배경으로 제작된 해당 게임은 수일 만에 7만 명을 끌어모았다.
가요계는 비지니스적 관점에서 메타버스 세계관을 안정적으로 안착시켰다. 다른 분야와 달리 가요 분야는 팬과의 대면 활동이 필수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행사가 장기간 불가능한 상황, 메타버스가 가수와 팬을 연결하는 소통 창구의 역할을 수행하며 성공적인 비지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많은 가수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해 큰 수익을 거뒀다. 방탄소년단의 메타버스 콘서트는 약 500억 원의 매출을 냈고, 블랙핑크의 메타버스 팬사인회는 하루 동안 4600만 명이 참여했다.
'메타버스 그룹'도 속속 등장 중이다. 대표주자는 에스파다. 지난해 데뷔한 에스파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 아이(ae)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이른바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미래형 그룹의 비전을 제시했다. 동시에 메타버스를 'MZ세대'에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가요계 대형기획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이미 빅히트, YG엔터테인먼트가 메타버스 플랫폼에 120억 원을, JYP엔터테인먼트가 50억 원을 투자했다.
◆ 엔터와 메타버스, '윈윈'할 수 있을까
사진=신세계로부터, 부캐전성시대 포스터, 에스파
메타버스는 엔터업계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각 업계의 특성이 맞물리며 시너지가 날 수 있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엔터 속 메타버스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 내다보며 '확장' 쪽에 무게를 뒀다.
실질적으로 메타버스 기업은 유저 확보가 필수적이다. 엔터업계는 '팬덤'이라는 다수의 안정적인 소비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양쪽이 손을 잡으면 메타버스 쪽은 유저를 손쉽게 늘릴 수 있고, 엔터 쪽은 소속 아티스트의 인기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엔터업계가 메타버스를 필요로 한다기보다는 그쪽에서 엔터 아티스트를 원한다. 엔터 쪽 입장에서는 큰 돈 들어가는 것 없이 아티스트 초상권을 주게 되면 그걸 기반으로 메타버스 쪽에서 금융상품을 만들지 않나. 엔터 쪽은 그에 따른 초상권이나 로열티를 받는 것이니 추가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는 면에서 엔터 쪽에서도 메타버스와 협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직 초기 단계기 때문에 어떤 플랫폼이 이 시장을 장악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는 그들 간의 출혈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이 심할 때는 엔터 초상권을 필요로 하는 니즈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성숙됐을 때는 다양한 방면에서 디지털 상품이 나올 수 있겠지만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엔터 쪽이 득 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연예기획사 제이지스타 황정기 대표는 "메타버스의 몇몇 선두 기업이 있지만 현재로서 메타버스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시장이다. 메타버스의 유저 확보가 아직 안 되고 있다. 아직 대중의 메타버스 이해도가 낮다. 활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라고 봤다.
계속해서 "판매와 구매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아직 어떤 걸 기대하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전시회를 연다고 가정할 때 올 수 없는 해외 관람객을 위해 온라인 전시회를 연다고 치자. 그건 메타버스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다만 엔터업계의 매출 상승효과는 있을 전망이다. 황 대표는 "메타버스 쪽에서는 콘텐츠가 필요하고, 엔터 입장으로는 다양한 광고주가 생기는 것이다. 경쟁사가 많으면 엔터사 매출도 늘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플랫폼의 다변화로 국내외 팬덤들은 활동 영역을 가상으로 점차 넓혀갈 것이고 실제 팬덤의 주 활동 무대가 가상공간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며 "메타버스를 통해 발생하는 문화적 파급력이 대규모 경제효과로 이어지며 K팝 시장에도 큰 영향력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다.
영화, 방송계도 메타버스의 확장을 예상했다. 영화 홍보사 호호호비치 이채현 대표는 "외화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쪽도 메타버스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호호비치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협업을 진행한 영화 '씽2게더'의 홍보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메타버스는 본인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끼나 능력을 보여주는 공간이지 않나. 그게 MZ세대의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다. 기술이 발달돼 3D 효과나 가상현실이 실제처럼 구현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것"이라고 했다.
또 "지금 극장에 가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오리지널 굿즈를 갖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는 손쉽게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메타버스가 팬덤을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도 할 수 있어 더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캐전성시대' 제작사인 연예인 메타버스 아바타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 최용호 CHO는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메타버스 아바타를 만들길 원한다. 실제 1일부터 마미손, 원슈타인, 더원, 이지훈, 폴킴 등의 메타버스 아바타가 공개된다"면서 "2, 3년 전 불었던 '부캐' 유행이 '아바타'로 바뀔 거다. 아바타라는 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부분을 이뤄줄 수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원슈타인은 '키가 크고 싶다'고 해서 3.5m 거인에 비율 좋은 메타버스 아바타로 만들어진다. 폴킴은 '하늘을 날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해서 날개를 얻는다. 그런 것들이 CG나 기술로 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또 아바타로 망자가 부활하기도 하고, 아파서 춤을 출 수 없는 분들이 춤을 출 수도 있다. 추억 속에 있는 분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의 또 하나의 형태로 이런 좋은 기능도 있다"고 덧붙였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는 유티플러스 유태연 대표는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유튜브가 그러했듯 메타버스가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유튜브로 예를 들면 방송이라는 영역이 원래 전문가 영역이지 않았나.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개인들이 방송을 만드는 시대로 바뀌었다. 수익을 나눠주니 개인들도 영상을 만들지 않나. 재미 삼아 하다가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잘 만들어볼까' 하게 되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한 번 해볼까?' 그러면서 플랫폼이 커 왔다. 그런데 양질의 콘텐츠들이 많이 튀어나오게 되고 방송은 전문가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도 할 수 있네'가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도 같다. 만약 오프라인에서 전시 행사를 하려면 부스도 빌려야 하고 제약이 있지 않나. 메타버스 공간은 가능하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만든 전시장 샘플이 있다 치면 그걸 개인이 자신들에 맞게 살짝 변형해서 온라인 전시장을 만들 수 있는 거다. 갤러리,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개인이 할 수 없던, 전문가들만 할 수 있던 활동들이 개인의 영역으로 떨어진다. 개인이 주체가 돼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이게 메타버스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이유"라면서 "콘서트도 오프라인에서 하면 복잡한데 메타버스가 활성화되면 개인이 열 수 있는 거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해볼까요?'가 가능한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