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서은 기자] 올해 국내 스포츠계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특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선수들이 학교 폭력·데이트 폭력 등 사회적인 문제에 연루돼 파장이 더욱 컸다. 2021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스포츠계 사건·사고를 되짚어본다.
▲이재영-이다영 자매 학교 폭력 논란
배구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2월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와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함께 운동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들이 그들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온라인 게시판에 폭로했다.
흉기를 이용해서 사람을 폭행 및 협박하며 폭언을 일삼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처음에 자매는 학교 폭력 사실을 부인하다 2차, 3차 제보가 계속되자 사과했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한 형식적인 사과문이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결국 흥국생명은 자매에게 무기한 출정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한배구협회 또한 국가대표 자격과 지도자 자격 무기한 박탈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인기 스포츠 스타의 잘못된 과거를 끄집어 낸 최초의 사례가 됐다. 이들 자매에게서 시작된 학교 폭력 폭로는 스포츠계는 물론 연예계까지 번져 2021년 상반기를 물들였다. 이에 정치계까지 공식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결국 흥국생명에서 사실상 방출당한 쌍둥이 자매는 국제배구연맹(FIVB)의 직권으로 우여곡절 끝에 ITC(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받아 도피하듯 그리스로 떠났다. 현재 PAOK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기성용 성폭력 의혹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논란이 물살을 탈 무렵 한국 축구의 간판 스타 기성용에 대한 성폭력 의혹이 제기돼 또 한 번의 파장이 일었다.
K리그 개막을 앞둔 지난 2월 축구선수 출신인 A씨 등 2명은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부 생활을 하던 2000년 1월에서 6월동안 선배였던 기성용과 B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동성 간의 구강 성교 지시 등 충격적인 내용이 가감없이 흘러나오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이에 기성용은 즉각적으로 사실을 부인하며 3월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함과 동시에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A씨 등 2명이 중학교 시절 자신들이 당했던 성폭력을 후배들에게 지시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이들의 주장은 신뢰를 잃었다. 당시 합숙생활을 하던 축구부원들의 두둔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지에 대한 타격과 논란의 여파는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17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A씨 측과 경찰서에서 대질 조사에 나서는 등 결백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항공 정지석 데이트 폭력 논란
2021-2022시즌 프로배구 개막을 앞둔 9월에는 남자 프로배구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정지석은 지난 8월 전 여자친구 A씨에게 폭행과 불법 촬영을 시도한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A씨가 9월 개인 SNS에 폭로를 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정지석이 2020-2021 V-리그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 베스트 7을 휩쓸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활동하기도 한 남자배구 간판 스타였던 만큼 논란은 더욱 컸다.
이에 정지석은 10월 말 검찰에 송치됐으나 자신의 핸드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불법 촬영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자신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비난 여론은 커졌다.
결국 A씨는 정지석과 합의 후 고소를 취하했고, 정지석은 11월 재물손괴 혐의로만 검찰에 넘겨져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구단과 정지석의 후속 대처가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배구연맹 상벌위원회의 처분이 제재금 500만 원에 불과한 데다, 소속팀 대한항공의 징계가 2라운드 잔여 경기(3경기) 출전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지석은 12월 4일 코트에 복귀했고, 그의 복귀에 분노한 대한항공 팬들이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복귀 반대 트럭 시위를 벌이는 등 여진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석희 고의 충돌·코치 및 동료 비하 논란
한 달 뒤인 10월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서울시청)가 논란에 휩싸였다.
평창 올림픽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조재범 전 코치 측이 법정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 내용이 10월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해당 내용에는 심석희가 조 코치와 주고 받은 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조 코치는 심석희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심석희는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 마지막 바퀴에서 최민정과 접촉하며 함께 넘어졌다. 심석희는 페널티를 받고 실격됐고, 최민정은 4위에 그쳤다.
이후 공개된 메시지로 인해 고의충돌 의혹에 휩싸였다. 심석희는 조 코치와 "하다가 아닌 것 같으면 여자 브래드 버리를 만들어야지"라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스티븐 브래드 버리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앞서 달리던 안현수와 안톤 오노(미국)가 엉켜 넘어지며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딴 선수다.
또한 공개된 메시지에는 최민정을 비롯한 동료 선수들에 대한 욕설과 이들의 대화를 불법으로 녹음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빙상계의 내홍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에 최민정 측이 고의 충돌 의혹을 제기했고, 빙상연맹은 지난 8일 조사위원회를 통해 고의 충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코치 욕설 및 동료 비하는 심석희 본인도 인정한 만큼 연맹의 스포츠공정위원회로 징계 여부가 넘어갔다.
결국 지난 21일 심석희는 공정위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정지 2개월의 처분을 받아 최종 엔트리 제출일이 내년 1월 24일까지인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다만 심석희가 징계에 불응할 경우 상위 기관인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
다가오는 2022년은 스포츠계가 사건, 사고들 대신 명승부만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포츠투데이 이서은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