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백지연 기자]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K-컬처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뽐내더니 올해, 그 벽이 무너진 모양새다. 특히 OTT 플랫폼이 K-드라마 붐을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했다.
OTT는 '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해당 플랫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매체들을 누르고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넷플릭스가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디즈니+, 애플TV+ 등도 한국 시장에 상륙하며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올해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작품들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연일 화제를 모았다.
반면 방송사 드라마는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줄실패를 맛봐야 했다. 더불어 OTT 플랫폼 작품이 워낙에 큰 화제를 몰고온 탓에 방송사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주춤한 모양새를 보였다.
◆ 2021년에도 독주했던 OTT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170여 개 국에 동시 공개된다. 그 덕분에 한국 작품들도 넷플릭스를 타고 'K-드라마 붐' 효과를 누리고 있다.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작품은 17일 만에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 시청이라는 이례적인 역사를 쓰며 역대 흥행 1위에 등극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 공개 후 8200만 가구가 시청한 영국 드라마 시리즈 '브리저튼'을 누른 성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작품으로서도 최초의 인기였다.
넷플릭스 CEO는 '오징어 게임'을 두고 "비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고, 이례적인 성적은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이어졌다. '오징어 게임'에 나온 한국의 달고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등은 큰 인기를 끌었고 엄청난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은 미국 고담 어워즈에서 '획기적인 시리즈 장편'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드라마가 미국 고담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오징어 게임'이 최초다.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드라마 시장이 뜨거운 가운데 한 달 후인 지난 10월 15일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도 공개됐다. 이 작품에는 'MZ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한소희, 안보현, 이학주, 박희순 등이 출연하며 기대를 모았고 결과 역시 성공적이었다. '한국 누아르'라는 쉽지 않은 장르였음에도 공개 직후 국내 순위 1위, 해외 순위 전체 4위를 차지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2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마이네임' 제작사인 스튜디오 산타클로스는 지난 10월 18일, 작품 공개 직후 K콘텐츠주가 29.97% 오르며 상한가로 마감되는 등 경제적 효과도 톡톡히 봤다.
9월을 시작으로 10월, 11월까지 K-드라마 인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난달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지옥'이 그 배턴을 이어받았다. 이 작품은 영화 '부산행' '서울행' 등 'K좀비' 열풍을 일으켰던 천만 감독 연상호가 원작 웹툰 '지옥'을 연출한 작품으로 공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 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해당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고, 공개 하루 만에 세계 드라마 1위에 오르며 K-드라마 열기를 이었다. 벨기에, 홍콩,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2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프랑스, 인도 등에서는 2위, 그리고 미국, 독일 등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연이은 K-드라마의 전세계적인 흥행은 한국 드라마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전세계적으로 작품의 연출 수준과 배우들의 열연이 인정받으며 한국 작품들의 높은 수준을 몸소 느끼게 했다. 더 이상 작품들이 한국에만 한정되는 상황이 아닌 셈이다.
실제 배우들의 OTT 플랫폼 관심도와 선호도 역시 높아진 추세다. 좋은 환경에서 사전 제작으로 이뤄지는 OTT 플랫폼의 장점에 '지옥'의 유아인 역시 플랫폼의 엄청난 파급효과와 힘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길 바라는 기분과 드라마가 방영되길 바라는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다. 전편이 한꺼번에 오픈이 되기도 하고 한국 시청자뿐 아니라 전 세계 송출이 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라고 알리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 속에 티빙도 하반기 '술꾼도시 여자들'의 성공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술꾼도시 여자들'은 하루 끝의 술 한잔이 인생의 신념인 세 여자들의 일상을 그린 본격 기승 전술 드라마로 청년들의 일상, 성장, 사랑 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와 익살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로 젊은 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이 방영되던 5주간, 티빙 전체 신규 유료 가입자 수의 약 23%가 '술꾼도시 여자들'로부터 유입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다만 신규 OTT 플랫폼 작품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애플TV+의 한국 데뷔작인 '닥터브레인'은 천재 과학자가 자신과 타인의 뇌를 동기화해 진실을 파헤치는 SF 스릴러 작품. 이선균 이유영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으나 플랫폼 자체가 아직 대중에게 익숙지 않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장벽이 높았고, 결국 큰 화제성을 내지 못했다.
펜트하우스3, 슬의생2, 결사곡2, 원더우먼, 검은태양 포스터 / 사진=SBS, tvN, TV조선, MBC 제공
◆ 방송사 드라마는 어땠나, 톱스타 카드 줄실패
올해 TV에서는 대작들의 새로운 시즌들이 다수 공개되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SBS 수목드라마 '펜트하우스 3', TV조선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2',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 등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의 후속편이 공개돼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다.
두터운 팬층으로 해당 작품들은 모두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그 힘을 다시금 증명했다. '펜트하우스 3'는 마지막 회 시청률 19.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종영까지 줄곧 수목극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 2' 역시 마지막 회 시청률 16.582%(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16부작 모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역시 마지막 회 14.8%(케이블, 위성 등 유료플랫폼 기준)로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월에는 SBS 금토드라마 '원더우먼', tvN 주말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이 비슷한 시기에 첫 방송을 시작해 종영 때까지 모두 큰 사랑을 받았다. 세 작품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와 안정감 있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지리산, 구경이, 지헤중, 인간실격, 너닮사, 학교 포스터 / 사진=tvN, JTBC, KBS2 제공
반면, 톱스타를 앞세운 기대작이었지만 아쉬움을 남긴 작품도 더러 있었다. 드라마 '시그널',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 엄청난 흥행작들을 탄생시킨 김은희 작가의 tvN 주말드라마 '지리산'이 대표적이다.
배우 전지현, 주지훈 등을 전면에 내세운 해당 작품은 어벤저스급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성적은 처참했다. 시청률은 첫 주 10%대까지 나왔으나 이후로는 한 자릿수를 전전하고 있고,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가도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지리산'을 조롱하는 등산복 마케팅까지 등장하는 굴욕까지 얻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우 이영애의 파격 변신으로 주목을 받았던 JTBC 주말드라마 '구경이' 역시 1%대 시청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련된 연출 그리고 이영애의 캐릭터 변신이 있었지만 좀처럼 흥행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송혜교 주연의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과 최근 첫 방송된 채널A 월화드라마 '쇼윈도: 여왕의 집' 역시 아쉬운 기록을 내고 있다. '쇼윈도'의 경우, 배우 송윤아 그리고 전소민이 불륜녀로 등장한다는 파격 설정으로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으나 2회 만에 시청률은 1%대로 하락해 아쉬움을 전했다.
이 밖에 전도연 주연의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 고현정 주연의 JTBC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역시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며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톱스타들의 등용문이었던 '학교'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배우 이종석, 김우빈, 남주혁, 김소현 등 청춘스타들을 배출한 KBS2 '학교' 시리즈는 11월, '학교 2017' 이후 4년 만에 '학교 2021'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해당 작품에는 배우 김요한, 추영우, 조이현 등 다양한 청춘스타들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해당 시리즈에서는 입시 경쟁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청춘들의 꿈과 우정, 설렘이 담긴 성장기를 다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첫 방송 2% 시청률은 4회 만에 1%대로 추락하는 치욕을 면치 못했다.
[스포츠투데이 백지연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