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배우 무진성이 첫사랑과 같은 작품을 만났다. 일찍이 첫사랑을 만나지 못해 겪었던 상실감은 지워졌다. 상실의 빈자리는 처음이 안겨다 주는 설렘이 채웠다.
무진성은 2013년 드라마 '트윅스'로 데뷔해 올해 9년차를 맞았다. 그러나 그에겐 기회란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이는 슬럼프로 이어졌다.
"배우로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또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나이는 차고 있는데 필모로서는 변환점이 없었죠. 그래서 저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과정을 겪으며 많이 힘들었어요.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어요."
그런 무진성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영화 '장르만 로맨스'(감독 조은지·제작 비리프)를 통해서다. '장르만 로맨스'는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 얽힌 이들과 만나 일도 인생도 꼬여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버라이어티한 사생활을 그린다.
슬럼프와 맞물린 오디션에서 그는 많은 걸 내려놓은 채 임했다. 그는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과하지도 또 덜하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내 본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화려함 대신 택한 담백한 연기가 제대로 들어맞았다. 그는 200:1이란 경쟁률을 뚫고 '장르만 로맨스'에서 유진 역을 꿰차게 됐다. 극 중 유진은 작가 현(류승룡)의 가치관을 들썩이게 할 천재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유진이 말하고자 하는 걸 나한테 입히려고 했다. 또 유진을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는 의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더 편하게 봐 주신 듯싶다"고 말했다.
그저 물 흐르듯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참조한 작품도 없단다. 그는 "다른 작품과 연기를 보면 연기 구상할 때 그 틀에 갇히게 되더라. 또 한정적으로 연기를 하게 되더라. 그래서 다른 작품을 참고하거나 다른 배우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과 닮은 유진에 집중하려 했다. "유진은 슬럼프를 겪고 목적 없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런 시기에 현의 작품을 읽고 열정적으로 타오른다. 저 역시 유진처럼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류승룡 선배의 작품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포기할 수 않고 버틸 힘을 받았다"며 "유진은 제 자신에서 출발한 캐릭터"라고 전했다.
극 중 유진은 현을 사랑하는 성 소수자다. 까다로운 연기 역시 무진성은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 그는 "유진이 '상처받는 게 취미이고, 극복하는 게 특기'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그 대사를 들었을 때 유진이 선을 넘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며 "사랑에 있어서도 감정을 너무 폭발시키거나 배제하려 하지 않는다. 적정선에서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진성이 유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많다. 먼저 성별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그다. "보통 희곡을 분석하면 작가의 의도가 캐릭터의 이름이 반영된다"며 유진의 중성적인 이름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살면서 편견을 많이 가지고 산다. 작품 속에도 현의 부인이 유진에게 전화가 오자 여자라는 편견을 갖기도 한다. 제가 맡은 캐릭터라는 편견을 깨부수려는 의미가 부여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랑에서 비롯된 메시지도 전달하려 했다. 그는 "유진 대사 중 '바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상처를 받겠어요'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바라는 것 없이 준다고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바라는 게 생기더라. 그래서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게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하며 상처받고, 또 치유를 받는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대가 없는) 멋진 사랑으로 간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라고 언급했다.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어 슬럼프에 빠졌다던 무진성. 그는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슬럼프를 이겨냈고 그토록 원하던 역할도 쟁취했다. '장르만 로맨스'가 그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다.
영화 일정으로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행복하다는 그다. "제겐 모든 것이 처음이다. 이렇게 작품이 개봉되는 것도,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던 것도 처음이라 체력적으로 이렇게 고될 줄 몰랐다. 그런데도 하루하루 감사하다.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장르만 로맨스'은 '첫사랑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제게 첫 스크린 작품이라 처음이라는 설렘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작품을 하게 될지언정 제겐 처음이라는 이 설렘을 평생 잊지 못할 듯싶다. 다른 작품을 해도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무진성은 '장르만 로맨스'의 최대 수혜자다. 연기파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뒤처지지 않는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이에 그를 향한 호평도 쏟아지고 있는 상황. 이에 무진성은 초심을 잃지 않고 더욱 성장할 것을 약속했다.
"배우는 다양한 작품에서 인사드리려면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고 찾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무진성이란 배우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성숙해지고, 캐릭터로서도 기억이 남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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