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빌런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감추지 않는 점이다. 원하는 것을 갖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때 감정을 표출하는 빌런과 드러내지 않는 빌런이 있다. 배우 진서연이 보여준 빌런은 거대한 욕망을 가졌으나 이를 절제하고 드러내지 않는다. 매력적이고 우아한 빌런의 탄생이다.
2007년 영화 '이브의 유혹-좋은 아내'로 데뷔한 진서연은 이후 영화 '로맨틱 아일랜드', '반창꼬', '독전', 드라마 '황금의 제국' '빛나거나 미치거나' '본 대로 말하라' 등에 출연했다.
특히 '독전'을 통해 악역에 도전해 스크린을 압도한 진서연이 다시금 악역 옷을 입고 이번에는 안방극장을 찾았다.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극본 김윤·연출 최영훈)을 통해서다.
'원 더 우먼'은 비리 검사에서 하루아침에 재벌 상속녀로 인생 체인지가 된 후 빌런 재벌가에 입성한, 불량지수 100% 여검사의 더블라이프 코믹버스터 드라마다. 극중 진서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룹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주그룹 장녀 한성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진서연이 '원 더 우먼'을 선택한 건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는 "빌런이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다. 기존에 센 캐릭터를 많이 하다 보니까, 빌런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센 캐릭터들이 1차원적으로 드러나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고, 이런 것들을 계속하다가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 더 우먼'도 센 캐릭터지만 실제로 나쁜 놈이 있으면 저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드러나지 않은 빌런이었다. 이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성혜는 극 초반 가족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감추고 있다가 최후 빌런으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우아한 빌런'이라는 평이다. 이에 대해 진서연은 "한성혜라는 역할이 처음에는 시청자분들이 무슨 캐릭턴지 의아했을 거다.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지 않고 가족들 사이에 있다가 중반부터 보이는 역할이다. 이후 한성혜의 악행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며 "처음에는 조연주(이하늬)의 활발한 모습이 주로 후반에는 조연주가 갖고 있는 캐릭터와 내가 대립하게 된다. 그렇게 마무리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성혜가 '우아한 빌런'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위기 속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진서연은 더욱 무미건조하게 연기하려 노력했다고. 진서연은 "기존 빌런들은 화를 내거나 악을 쓴다. 어찌 됐든 힘이 많이 들어간 모습이다. '원 더 우먼'에서는 중심이 되는 조연주 캐릭터가 굉장히 하이텐션이다. 1인 2역을 하면서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줘야 됐다. 때문에 나는 오히려 반대로 차분하고 우아한 캐릭터로 잡았다. 비슷한 하이텐션이 붙는 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싶어서 더 내렸고 더 무미건조하게 얘기했다.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최고 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줬다. 상류층은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외적으로는 스타일링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했다. 진서연은 "스타일리스트와 상의를 굉장히 많이 했다. 아무래도 억누르는 캐릭터다 보니까 화려하게 가는 건 아니다 싶었다. 대부분 부자 캐릭터들을 보면 화려하지 않냐. 그거와 반대로 가야겠다는 마음이었다"며 "또 한성혜는 야망이 있고, 한주그룹을 가져야 된다는 목적이 있다. 또 타고난 금수저기 때문에 우아함 만큼은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아하되 패셔너블하지 말 것이 핵심이었다. 중성적인 느낌으로 갔고,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고 했다.
특히 진서연이 한성혜 캐릭터에 중점을 둔 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평범한 한성혜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점점 빌런으로 변하는 모습, 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봐줬으면 했다고. 진서연은 "한성혜가 원하는 건 하나다.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점이 안타깝고 짠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대놓고 원할 수 없는 위치고, 모든 걸 뺏길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 이를 지키려는 모습이 짠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저 나름대로 빌런이지만 빌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밝혔다.
진서연은 한성혜가 아버지의 사랑을 원한다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집이 딸 셋이다. 나는 그중 나는 둘째로 태어냈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을 올곧이 받지 못했고, 치였다. 한성혜도 그랬다. 남동생들에게 부모님의 사랑을 뺏겼다. 그런 부분이 공감이 많이 갔다"고 설명했다.
감정 누르면서 연기한 진서연은 반대로 모든 것을 표출한 이하늬의 연기가 부럽다고 전했다. 그는 "너무 부럽다. 이하늬가 맡은 캐릭터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캐릭터다. 저걸 이하늬가 어떻게 할까 싶어서 호기심 있게 지켜봤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120%를 해서 너무 속 시원하더라. 같이 하면서 너무 재밌었다. 대리만족했던 것 같다"며 "내 감정을 누르면서 한 연기는 많이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눈빛과 호흡으로 하는 연기는 처음 한 것 같다. 스스로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다. 배우로 조금 성장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진서연이 스스로 생각한 배우로서의 강점은 준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캐릭터 몰입을 할 때 미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되게 구체적으로 준비를 많이 한다. 구체적인 나의 과거나 미래에 집중하는 편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준비할지 모르는데 과거에 내가 얼마짜리 옷을 입었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렸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그게 모여서 연기할 때 내가 생각한 본연의 캐릭터를 만드는 편"이라고 했다.
항상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진서연이기에 이번 작품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진서연은 "준비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도 해냈어야 됐는데 아쉽다. 만족도로 봤을 때 50%다. 죄송할 따름이다. 다음에는 풍성하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아도 강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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