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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한 길' 박우상 감독이 전하는 액션의 미학 [인터뷰]
작성 : 2021년 10월 22일(금) 11:11

사진=박우상 감독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액션 영화의 거장 박우상 감독은 50년 동안 액션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공로상을 받은 지금도 영화가 목마르단다.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를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박우상 감독은 1972년 영화 '맹인 대협객'을 시작으로 '죽음의 승부' '내 갈 길을 묻지마' '돌아온 용쟁호투' '소림관 지배인' '차이나타운' '마이애미 커넥션' '무등산 타잔, 박흥숙'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한국 최초 할리우드 진출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박우상 감독은 "1971년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50주년이다. 1965년도에 서울 와서 임권택 감독 문하에 들어갔고, 10년 조감독 하고 만 27세에 감독 데뷔를 했다. 광주에서 오기 전부터 태권도 도장에 다녔다. 운동을 잘하고 액션을 잘 만는다"고 전했다.

이런 박우상 감독의 공로가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다. 제3회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것. 박 감독은 "과거 한국 영화는 수출이 안 되던 시기에 유일하게 액션 영화만 해외에 나가더라. 수출 영화 시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할리우드에서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 내 소신이 있다. 멜로는 한 적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만든 영화, 내 액션 영화를 후배들이 보고 박우상 감독 같은 액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감독들이 몇 있더라. '베테랑' 만든 류승완 감독도 그렇다. 학교 다닐 때 '차이나타운'을 대여섯 번 봤다더라. 그걸 보고 '영화감독이 돼야겠다, 박우상 감독처럼 액션 영화 만들어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공로상을 받으니 알아주는 데가 있네 싶다. 앞으로 더 잘 해봐야겠다"고 전했다.

박우상 감독은 한국 최초 할리우드 진출 감독이다. 그가 미국으로 향하게 된 계기는 검열 때문이었다고. 박 감독은 "내가 미국 바로 가기 전에 75년, 76년도 그 무렵은 충무로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법 제도가 군사 문화에서 시나리오 영화 검열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시나리오 심의 한 번 들어가면 제대로 나온 게 없고 몇 번 반려되고 나서 통과가 됐다. 그 당시에는 중앙청 문화공보부 안에서 영화가 검열됐는데, 내가 미국 가기 전 만든 두 작품이 다 상영 불가가 나왔다. '내 갈길을 묻지 마'라는 제목 때문이라고 하더라. 군사 정부니까. 제목 때문에 검열 걸렸다.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중앙청 영화 검열하는 데를 가서 따졌다. 이후 분해서 미국에 갔다. 군사 문화가 미국 가게 된 동기"라고 말했다.

사진=박우상 감독


이렇게 미국으로 가 50년 동안 액션 영화를 고집하며 정수를 보여준 박우상 감독. 그는 긴 세월 동안 영화계에 있으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나름대로 할리우드에서 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IMF가 터졌다. 한국에서 기획하고,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가 당시 개봉됐다. 홍보도 많이 했다. 명보극장에서 했는데 3일 만에 IMF가 터진 거다. 미국에 살아서 경제 용어를 몰랐는데, 나라가 부도났다더라. 3일 만에 파리가 날려서 간판을 내렸다. 전국 최고 극장에 메인 간판 올라갔는데 간판을 다 내리라고 했다. 당시 35억을 들였고, 내가 제작비를 댔다. 한 방에 다 날렸다. 그렇게 한 방에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가장 힘이 됐던 순간은 언제일까. 박 감독은 "미국에서 내가 감독하려고 가서 한 5년 공부하고, 할리우드 들어가서 처음 메가폰을 잡았던 순간이다. 내가 당시에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 태권도 공인 4단이었다. 공인 4단이면 국제 사범 자격증이 나온다. 영화사 사장들도 비자가 없어서 미국에 못 갈 때다. 그럴 때 나는 미국에 간 거다. 공부하러. 가서 태권도 체육관 두 개를 했다. 돈을 벌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헨리 박이라는 브로커가 나한테 희망을 줬다. 내 액션 영화는 미국서 먹힌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좋은 일 있으니 오라고 해서 갔더니 미국, 스페인 합작 영화 '킬 더 드래곤' 감독에 날 추천했다. 그렇게 미국 영화로 데뷔를 했다. 그 영화가 꽤 잘 됐다. 그래서 미주리 체육관을 제자들에게 넘겨주고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고, 마음먹고 만든 게 '닌자터프'다. 이거 만들고 4개 영화사가 접촉하더라. 나도 놀랐다. 그때부터 내가 좀 떴다. 돈도 벌었다. 그렇게 내 역사가 시작됐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할리우드에서 7편 가까이 만들었다. 그때가 제일 인생에 있어서 영화 잘했다 하는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또 '무등산 타잔, 박흥숙'을 만들고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 기뻤다고 전했다. 그는 "박흥숙의 일대기를 만들자고 해서 당시 42억의 제작비로 만들었다"며 "얼마 전 광주 호남 향후회에서 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거기서 날 소개하고 '무등산 타잔 박흥숙' 이야기하니 다 느닷없이 박수가 나오더라. 영화 봤다고 했다. 그때 큰 보람을 느꼈다. 고향 광주에서 금전적 이익 떠나서 만든 영화를 인정받아서 좋다"고 뿌듯함을 표했다.

박우상 감독이 생각한 액션 영화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그는 "나 나름대로 철학과 미학이 있다. 이렇게 싸우고 억울하게 주인공이 쓰러지고 할 때 한이 있다. 그런 것을 영상 쪽으로 표현하는 미학이 있다. '액션 영화의 거장, 미학을 최고조로 다루는 박우상 감독'이라고 날 표현하더라. 폭력이 아니라 나름대로 액션을 다루는 미학이 있다. 한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그냥 치고받는 게 아니라. 나름의 철학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눈물이 나고 감동이 있다. 내 영화에는 감동이 있고 눈물이 있다. 작품마다 다 그렇다. 나름 철학이 있다. 그게 내 테마"라고 소개했다.

박우상 감독은 신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60년대 영화 하나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자전적 이야기다. 시나리오 준비만 한 5년을 했다. 잘 나왔다. 기가 막히다. 눈물이 나오고 우리 호남의 역사, 춥고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 액션 영화의 한 서린 이야기, 호남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캐스팅은 이제 준비 중이라고. 박 감독은 "호남 쪽, 광주 목포 쪽에서 오디션을 보려고 한다. 마무리는 서울에서 다시 한번 보고 마무리 예정이다. 기대하셔도 좋다. 60-70년대 이야기가 1편이고, 파트2, 파트3까지 70년대 중반 80년대,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시리즈로 낼 예정이다. 내 영화 인생이 이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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