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한 우물을 오래 파면 안주하기 마련이다. 배우 김소연 역시 데뷔 30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안정된 배우 생활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김소연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했고, 묵은 갈증을 해소했다. 변신에 후회는 없다는 김소연이다.
1994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김소연은 이후 '순풍 산부인과' '이브의 모든 것' '엄마야 누나야' '식객' '아이리스' '검사 프린세스' '로맨스가 필요해3' '순정에 반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런 그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연출 주동민) 시리즈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극악무도한 악역이다. 김소연이 악역으로 안방극장을 찾은 건 '이브의 모든 것' 이후 약 20년 만이다.
'펜트하우스'는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에서 벌이는 서스펜스 복수극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연대와 복수를 그린다. 극중 김소연은 욕망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지르는 천서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최고 시청률 30%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소연은 "시즌1 때는 시청률 피치를 올려서 우리끼리 감사하고 신기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20%가 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빨리 등극하더라. 이런 감사함 덕에 시즌2, 3도 힘을 내지 않았나 싶다"며 "전에는 사인해 달라고 하신 분들이 없었는데, 이제는 시부모님도 사인해 달라고 하더라.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심지어 꼬맹이들도 날 알아보곤 한다. 이럴 때 인기를 실감한 것 같다"고 전했다.
김소연은 '펜트하우스'를 통해 처음으로 시즌제 드라마에 도전했다. 김소연은 "장점도 많았고, 힘든 점도 많았다. 앞으로 큰 숙제로 남을 것 같다. 시즌제를 하고 나니 김소연 대신 천서진이 커지는 것 같다. 이름을 잃는 느낌이다. 이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극복해야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소연이 꼽은 시즌제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달라지는 모습과 성장하는 모습 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김소연은 "나한테 터닝포인트는 '왕좌의 게임'이었다. 한 달 동안 8개의 시즌을 다 봤는데, 나한테 큰 자극이 되더라. 배우들이 매 시즌 연기가 진화하는 게 보였고, 아역은 성장하는 게 보였다. 히스토리를 옆에서 본 느낌이었다. 그게 부러웠는데, 이번에 조금 경험한 것 같아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펜트하우스 김소연 /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천서진은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다. 간극을 오가는 게 쉽지 않았을 터. 김소연은 시즌제 드라마였기에 간극이 좁혀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천서진은 감정을 계속 끌어올려야 되는 캐릭터다. 그런데 시즌이 갈수록 감정이 더 편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시즌2, 3에서는 나도 모르게 쌓인 감정이 터지고, 리허설부터 눈물이 나더라. 몰입감이 느껴졌다. 이게 시간의 힘이구나 싶다. 시즌제를 한 게 영광"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본을 많이 보면서 따로 준비하기도 했다. 간극을 오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시즌2에서 내가 소리를 많이 지르는데, 그거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되더라. 내가 계속 소리만 지르면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달라 보이게끔 최선을 다했는데, 방송에 잘 안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실제 천서진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서사를 이해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천서진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으려고 했지만, 이해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김소연은 "내가 우스갯소리로 늘 하는 말이 '오윤희(유진)를 민 건 너무한 것 같다'와 '로건리(박은석)에게 뜨거운 물을 부은 것도 인간으로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거였다. 그만큼 천서진의 악행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스스로 천서진은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해야 되는 게 맞는 사람이라고 주입하고 연기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서진에 대해 잘못했다고 말할지언정 나는 천서진이 이렇게 해야 성공하고 딸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즌3의 천서진은 악마에게 심장을 판 것처럼 악행을 하더라.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소연은 시즌이 달라질수록 변화하는 천서진의 모습을 심도 있게 그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시즌1의 천서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김소연은 "정말 시즌1, 2, 3이 다 달랐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시즌1이다. 아무래도 천서진의 서사가 많이 나오는 시즌이어서 그런 것 같다. 시즌1에서는 연기할 때 전율을 느꼈다. 시즌2는 감정적으로 연기해야 될 게 많았고, 시즌1에서 쌓은 서사가 터졌다. 시즌3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 싶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악녀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김소연은 시즌1의 피아노신을 찍으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를 죽인 천서진이 피 묻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다. 김소연은 "피아노신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런 신을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이었다. 최선을 다했고, 피아노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다. 이 장면은 대본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감정적으로 와닿았다. 작가님이 정말 잘 써주셔서 그런지 눈물이 나더라. 이후에는 연습이 안 될 정도로 목이 멨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감독님이 잘 배려해 주셔서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펜트하우스 김소연 /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이런 천서진은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아 목소리를 잃는 결말을 맞는다. 이에 대해 김소연은 "악행만을 위해 달려오다가 엔딩을 맞으니 여운이 남는다. 천서진이 마지막에 짧은 머리로 은별(최예빈)이를 보러 가는 장면이 있다. 5분 정도 분량이었다. 이걸 위해서 머리를 자를까 고민했다. 분장팀은 당연히 가발을 준비해 주더라. 그래도 김소연이 천서진에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가는 길에 고작 이것도 못해주나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기로 결정했고, 내 결정을 들은 감독님이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추가해 주셨다. 만족스러운 결말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약 1년 반 동안 천서진으로 산 김소연. 그는 천서진을 떠나보낸 시점에서 '펜트하우스'와 캐릭터를 돌아봤다. 그는 "배우로서 변화에 대해 소심한 면이 있었다. '펜트하우스'는 그걸 많이 내려놓게 해 준 작품이다. 매 회 매 신을 찍을 때마다 두려웠고, 내가 현장에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두려움을 이기게 해 준 의미 깊은 작품이다. 도전이란 말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 안정적인 게 좋았고, 이대로 행복한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펜트하우스'를 만나고 타오름을 느꼈고, 새로운 날 발견했다. 과거 '왕좌의 게임'을 보고 부러워하던 마음들을 해소시켜 준 작품"이라고 전했다.
김소연은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사실 천서진이 강렬해서 다음 작품에 잔재가 남아 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펜트하우스'는 도전이었고, 도전했기에 오늘날의 좋은 일도 있는 거다. 다음 작품에서 혹여 왜 변하지 않았냐는 말을 들을지언정 도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또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도 괜찮을 것 같다. 간극을 잘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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