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캐릭터에 도전한 유진은 '펜트하우스'로 시청률과 화제성을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뒤따라오는 성과는 짜릿하다.
1997년 그룹 S.E.S.로 데뷔해 1세대 걸그룹으로 큰 인기를 끈 유진은 이후 배우로 전향해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드라마 '러빙 유'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원더풀 라이프' '진짜 진짜 좋아해' '인연 만들기' '제빵왕 김탁구' '백년의 유산' 등에 출연해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유진은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한 1세대다. 가수와 배우의 경계가 뚜렷했던 당시에는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연기에 대한 즐거움이 너무 컸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유진이다. 그는 "연기 자체가 정말 재밌다. 재미없으면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사실 첫 작품은 멋도 모르고 시작한 것 같다. 이후 두 번째 작품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하면서 연기가 재밌다는 걸 느끼게 됐다. 내가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작품을 만났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연출 주동민) 시리즈를 통해서다. '펜트하우스3'는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에서 벌이는 서스펜스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연대와 복수를 그린 이야기다. 극중 유진은 학창시절 전국에서 알아주는 실력파 소프라노였으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성악을 포기하고 부동산 컨설턴트가 된 오윤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시청률 3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유진은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아서 제작진, 출연진들과 만나면 얘기를 많이 했다. 인기를 실감한 순간도 있다. 돌아다니면 어린 친구들이 오윤희라고 알아보더라. 사실 '펜트하우스'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은 날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는 초등학생까지 알아본다. 신기할 따름"이라고 뿌듯함을 표했다.
4년 공백 끝에 만난 작품이 소위 '대박'이 난 것.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고민도 있었지만, 작품을 끝낸 지금 유진은 그저 열심히 했다고 자평했다. 유진은 "망설이다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그래도 도전하게 된다는 의미로 캐릭터를 받아들였다. 도전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내가 오윤희라는 캐릭터를 몇 %나 이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즐거웠다. 오윤희라는 삶을 살면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초반에 시청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오윤희를 응원해 주신 분들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오랜 공백 끝에 출연한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고, 오윤희를 맡게 돼 감사했다. 열심히 했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 팀은 세 개의 시즌을 거치면서 호흡도 탄탄해졌다. 유진은 "천서진(김소연)과 대립할 때 그 대립의 강도가 서로 잘 맞춰지는 것 같다. 정말 신기하다 누구 하나가 약하거나 강하지 않고 비등하게 대립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보는 분들이 더 흥미진진하게 보지 않았을까. 그 순간 잘 통해서 어느 정도 힘을 줘야 될지도 서로 알게 됐다. 이런 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말했다.
유진은 '펜트하우스'를 촬영하는 동안 고민이 많았다. 오윤희는 선악을 오가는 캐릭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유진은 이런 간극을 뛰어넘기 위해 오로지 오윤희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됐다. 유진은 "너무 어려웠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다. 오윤희가 하는 행동들이 100% 이해가 안 가더라.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을 했다. 대본도 더 많이 보고 고민했다. 일단 오윤희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천서진과의 대립을 생각하면서 오윤희의 삶을 그렸다"고 말했다.
이어 "오윤희는 매번 확확 바뀌었던 것 같다. 감정 기복도 굉장히 심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재된 게 드러날 때가 달랐는데, 이런 변화에 놀라웠고 거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펜트하우스를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욕망을 드러낼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다.
또 유진은 오윤희가 민설아(조수민)를 죽였던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진은 "초반에는 이 부분을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굳이 오윤희는 그렇게까지 할까. 고민을 하고 작가님과도 대화를 많이 하면서 나를 설득했다. 이 과정이 길었다. 아마 시청자분들도 이 장면이 충격이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그래도 결국 오윤희를 이해하게 됐다는 유진이다. 그는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내가 오윤희화가 돼서 설득이 되더라. 오윤희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오윤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엄마라는 점이다. 일그러진 모성애지만 딸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 하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거 하나로 설득이 됐다. 딸 배로나(김현수)를 통해서 오윤희를 빌드업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성애를 통해 오윤희를 이해한 유진은 배로나를 통해 사춘기 딸을 미리 경험하게 됐다. 유진의 딸은 아직 어린이다. 유진은 "딸이 어리지만 미리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딸이 크면 이럴까 싶다. 내가 사춘기가 없어서 잘 와닿지 않았는데 연기해보니 알게 되더라.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사춘기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유진은 욱하는 엄마라고. 그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사실은 욱하는 엄마다. 요즘은 욱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또 애들이 욱하게 만든다. 내가 화를 참고 있으면 로희가 로린이에게 '엄마 이제 화낼 거야'라고 한다. 이 모습을 보고 내가 자주 욱하는구나 싶고, 반성하게 된다"고 전했다.
남편인 배우 기태영은 유진에게 든든한 지원군이다. 같은 배우인 만큼 기태영은 유진에게 연기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고. 유진은 "오윤희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고민할 때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줬다. 같은 배우다 보니까 그런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10번 고민할 걸 8번으로 줄여준다. 또 응원도 해주고 모니터도 해주면서 힘을 준다. 믿을만한 조언자"라고 애정을 표했다.
또 기태영은 유진이 '펜트하우스'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육아를 담당했다. 유진은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육아가 힘들다. 특히 남편은 육아를 잘하는 사람이어서 더 힘들었을 거다. 대충 하면 덜 힘든데 오히려 잘하면 힘든 걸 아니까 더 미안하다. 한 번은 나한테 '드라마 언제 끝나냐'고 묻고, 드라마가 길어질 때마다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래도 덕분에 드라마에 마음 놓고 집중할 수 있어서 고맙다. 다음에는 롤을 바꿔줄 예정이다. 내가 아이들을 보고 남편이 작품을 하면 보상이 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끝으로 유진은 '펜트하우스'를 만난 후 도전 정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파격적이고 센 캐릭터를 하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다시 평범한 캐릭터를 하게 되면 재미없을까 봐 걱정도 된다. 원래 개인적으로 정적인 걸 좋아했다. 화려한 액션도 즐기지만 정적인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펜트하우스' 이후에 정적인 드라마에서 재미를 못 느끼면 어떠지 싶다. 그래도 도전했고, 후회는 없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오든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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