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익숙한 그리스 신화가 풍부한 상상을 거쳐 현대적으로 탄생했다. 여기에 아메리칸 스타일의 음악이 더해져 시너지를 이룬다. 음악의 힘을 노래하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이다.
'하데스타운'(프로듀서 신동원·제작 에스앤코)은 그리스 신화 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하데스타운'은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그래미어워즈, 토니어워즈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하데스타운'이 드디어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됐다.
작품은 서로 다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오르페우스는 돈이 없어도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인물,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추위가 늘 걱정이다. 오르페우스는 가난이 덮쳐오는 순간에도 낙관적으로 노래한다. 에우리디케는 노래만으로 살 수 없다. 그는 따뜻함과 음식이 보장된 하데스타운, 즉 저승으로 내려가고 뒤늦게 아내가 없어진 걸 안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나선다.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신화 속 설정은 가져오되 이외의 디테일은 재창조됐다. 신화에서는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기 위해 저승에 와 저승의 신 하데스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이에 감동한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록 허락한다. 대신 빛이 나오기 전에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 보면 에우리디케는 영영 저승에서 살게 되는 조건이다. 오르페우스는 빛을 앞두고 뒤를 돌아봤고, 에우리디케는 결국 저승으로 끌고 갔다는 내용이다.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큰 틀을 가져오되 나머지는 상상에 맡겼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만남, 무엇보다 에우리디케가 가난에 못 이겨 스스로 저승행을 택했다는 사실이 다르다. 신화 속 에우리디케가 수동적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또 그렇게 간 저승에서 에우리디케가 하데스와 계약을 맺고 노동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게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다. 신화 속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저승으로 납치해 결혼한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 데메테르가 분노하자 페르세포네는 1년의 반은 지상에서 반은 저승에서 살게 된다.
'하데스타운' 속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오래된 부부로 나온다. 권태기에 빠진 신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서로를 사랑했던 순간들은 희미해지고, 먼 옛날이야기처럼 흐릿하다. 이들은 오르페우스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과거 자신들이 사랑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뮤지컬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전사를,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결혼한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이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섞이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르페우스 신화의 슬픈 결말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결국 영원한 이별을 맞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은 아름답고 슬프며 아련하다.
이런 결말을 맞는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통해 '하데스타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의 힘, 그리고 세상의 사랑 이야기와 인생은 또다시 쓰인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힘으로 저승에 갈 수 있었고, 또 음악을 통해 아내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은 이유도 음악이다. 오르페우스의 노래 속에서 과거와 추억을 본 것이다. 작품은 음악의 힘은 세상 살릴 수 있고,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오르페우스가 슬픈 결말을 맞을지라도 또 사랑 이야기는 시작되고 삶은 흘러간다는 철학적인 메시지도 함께 던지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주제를 전달한다.
음악의 힘을 노래하는 뮤지컬답게 '하데스타운'의 음악은 아름답다. 트롬본을 필두로 강렬한 재즈 음악이 압권이다. 또 블루스와 아메리칸 포크가 섞여 묘한 느낌을 준다. 음악에서 미국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사랑을 위해 저승까지 가는 오르페우스 역을 맡은 박강현은 소년의 모습부터 사랑을 구하기 위해 강해지는 면모까지 두루두루 보여준다. 무엇보다 에우리디케와의 '케미'는 순수한 사랑의 천진함을 표현한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묵직한 저음의 하데스는 자본주의 공장의 사장이고, 술에 취해 발랄한 페르세포네는 인간적이다. 내레이터 헤르메스 역의 강홍석은 독보적인 끼로 극을 이끌면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입체적인 캐릭터의 향연이다.
무대를 활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무대 장치 등이 여러 번 바뀌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하데스타운'의 무대는 고정돼 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임에도 흥미 요소는 곳곳에 배치돼 있다.
재즈바를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 트롬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기타 등 악기가 세팅됐다. 대개 무대 아래 있던 악기를 위에 올려 듣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얹은 것이다. 이후 극이 진행되면서 재즈바는 지옥의 공장으로 변신한다. 이때도 무대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배경이 뒤로 밀려 조금 확장되고 소품이 추가되고 컨베이어 벨트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활용으로 변화를 준 것. 이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도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이처럼 '하데스타운'은 음악, 그리스 신화, 배우들의 열연으로 무장했다. 여기에 최초의 짜릿함까지 더해져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