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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히어로 필요 없는 세상" 문유석 작가가 밝힌 '악마판사' [인터뷰]
작성 : 2021년 09월 13일(월) 10:41

문유석 작가 / 사진=tvN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문유석 작가가 드라마 '악마판사'에 대한 모든 것을 밝혔다.

지난달 22일 종영한 tvN 드라마 '악마판사'(극본 문유석·연출 최정규)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 문유석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 작품이다.

문유석 작가는 판사 출신으로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을 퇴직하면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소설 '미스 함무라비'가 2018년 드라마로 제작된 뒤, 약 3년 만에 두 번째 드라마를 선보이게 됐다. 법관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에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인 셈이다.

문유석 작가는 '악마판사'의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라는 설정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코로나 사태로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보며 무서움을 느꼈다"며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고 마는 걸까' 생각하다가 근미래 디스토피아물처럼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악마판사'의 세계에 대해 "이미 그 악몽이 극에 달해 시민들의 건강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할 동력조차 사라진 가상의 디스토피아"라며 "강요한(지성) 식의 극약 처방 외에는 마땅한 대안조차 없는 세상이란 참 무섭고도 슬픈 세상이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스 함무라비', '악마판사'까지 문유석 작가만의 법정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됐다. 그는 차기작의 방향에 대해서는 "법정물 외에도 코믹, 휴먼, 스릴러, SF, 애니메이션 등 제가 사랑하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악마판사 / 사진=tvN


◆ 이하 문유석 작가와의 일문일답

▲ '악마판사'의 종영을 맞이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시청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이 훌륭한 배우분들의 연기를 주말마다 볼 수 없다는 게 슬픕니다. 시청자 모드로 보고 있었거든요. 최초에는 20부작으로 구상했었는데 그게 가능했다면 더 찬찬히 이야기도 풀고 배우분들의 연기도 더 볼 수 있었겠다 싶어 아쉽기도 합니다. 성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시청자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란 설정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보며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요양원 직원들이 도망가 버려서 방치된 노인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경제가 붕괴되어 생계가 곤란한 이들이 폭증하고, 초강대국 대통령은 의학 전문가들의 권고를 가짜 뉴스 취급하는데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열광하며 의회의사당을 습격하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고 마는 걸까 생각하다가 '블랙 미러'나 '브이 포 벤데타' 같은 근미래 디스토피아물처럼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죠.
이런 세상이라면 현실에 대한 불만을 증오와 배타주의로 해소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10부 죽창 재판 때 죽창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씬이 있는데 그 첫 마디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을 좇는 백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입니다. 이는 2011년에서 노르웨이에서 무려 77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극우 테러리스트 브레이빅이 남긴 트윗 내용에서 따 온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걱정스러운 현상들을 극중에 녹여 낸 결과 해외 시청자들이 자기 나라 얘기라며 적극 공감하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은 만큼 창작자들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한 주제들로 관심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판사 강요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로 인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다면 무엇인지요?

다크 히어로에 대한 열광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입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폭주하기 시작하고 미디어와 정치권력이 이를 증폭시키며 악용하면 폭력과 극단주의,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악마판사'의 세계는 이미 그 악몽이 극에 달하여 시민들의 건강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할 동력조차 사라진 가상의 디스토피아입니다. 강요한 식의 극약 처방 외에는 마땅한 대안조차 없는 세상이란 참 무섭고도 슬픈 세상이죠.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시민들은 정치, 사법, 언론 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 '시스템'에 해당하는 이들이 다크 히어로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잘 해서 다크 히어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기가 강요한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허중세일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강요한의 마지막 재판은 과연 재판일까요? 사실 그것은 폭탄 테러를 생중계한 것에 불과합니다. 합법적인 재판 절차가 아니고 제시된 증거 역시 동영상일 뿐 조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시청자인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알지만 극중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는? 잠깐 폭로 동영상을 보고는 압도적 다수가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 없이 폭탄 테러에 동의를 표시한 것입니다. 만약 허중세가 딥페이크 기술로 정반대 영상을 그럴 듯하게 조작하여 요한의 동조자들을 처단하려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묘한 것은 14부 전기의자 사형집행에 대해서는 극중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며 망설이는데, 16부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거침 없이 찬성했다는 점입니다. 누르는 행위와 상대방의 즉각적인 고통 사이의 직접성, 노골성의 차이일 뿐 본질은 다르지 않은데 말이죠. 현대 심리학의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 인간들은 놀라울 만큼 쉽게 어떤 방향으로 유도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주의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지요.
극중 악역들이 처단당하고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 엘리트들 역시 전과 그닥 다르지 않은 행태들을 보입니다. 결국 더디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시스템이 온전하게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가 오겠지요. 가온의 독백, '요한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 극중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 역할을 반전시킨 듯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캐릭터들을 만들 때 아예 성별을 무시하고 만들었습니다. 정선아가 서정학에게 당했던 성폭력 등 특정한 맥락 외에는 성별이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경희는 그저 야심 만만한 권력자일 뿐이고, 윤수현은 첫사랑을 지키고 싶어하는 형사일 뿐이죠. 둘 다 한국 드라마에 남성으로 많이 나오는 익숙한 캐릭터들입니다. 반대로 김가온 역할은 여성 캐릭터에 부여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인습적인 성 역할에 갇혀 있는 캐릭터들은 뻔해서 재미없고, 그렇다고 여성들은 모두 주체적이어야 하고 남성들은 납작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편향도 작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 개별적이죠.

▲ '악마판사'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장면이나 혹은 고민했던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우선 13부 엔딩 수현의 죽음 장면입니다. 요한에게는 이삭이 있고, 가온에게는 수현이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삶을 놓지 않게 만들어 준 유일한 존재들이죠. 대본 초고에는 이삭이 요한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씬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없어져야 아버지가 요한을 학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지요. 종교적이기까지 한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총을 맞아 죽어가는 수현이 가온의 이마 상처를 보면서 "괜찮아? 피 나 잖아" 라며 가온부터 걱정하는 씬을 썼습니다. 이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정선아의 잔혹한 큰 그림이었음이 밝혀지는 15부 엔딩까지 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들의 불가해한 변덕으로 잔혹한 운명을 맞는 그리스 비극처럼.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씬이지만 12부 초반, 요한을 그림자처럼 돕는 K가 가온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요한 곁에 있으면 결국 모든 걸 잃고 말거라고 쓸쓸하게 말하는 씬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이 씬은 영화 ‘렛 미 인’을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외로운 뱀파이어 이엘리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며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중년 사내, 그리고 같은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소년 오스칼의 이미지가 그 씬을 쓸 때 자꾸 떠오르더군요.

▲ 지성, 김민정, 진영, 박규영 배우를 비롯해 장영남, 안내상, 김재경, 백현진 등 많은 배우들의 활약으로 '악마판사'가 멋지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 분들에게 연기 칭찬을 해주신다면요?

정말 모든 배우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연기를 해 주셨습니다. 사실 '악마판사'는 이질적인 요소가 가득한 혼돈 같은 이야기입니다. 만화처럼 과장된 디스토피아 설정에 고전 비극의 서사, 연극적인 문어체 대사, 의도된 찝찝함과 불편함. 제가 좋아하는 이런 요소들을 과잉될 만큼 집어넣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분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성 배우와 김민정 배우가 없었다면 강요한과 정선아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누가 살릴 수 있었을까요? 가혹한 운명 속에 고통 받는 힘든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 주신 진영, 박규영 배우도, 각기 다른 개성의 악역을 맡아 광기 어린 연기를 해 주신 장영남, 안내상, 백현진 배우도, 소박하지만 공감 가는 인물을 연기해 주신 김재경 배우도, 그 외에도 단역 분들까지 모든 배우분들의 훌륭한 연기가 대본의 이상함과 부족함을 메워 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악마판사 / 사진=tvN


▲ 문유석 작가님이 그린 '악마판사'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해석이 궁금합니다.

강요한은 미리 준비한 탈출로를 통해 대법정에서 탈출하여 엘리야와 함께 스위스로 간 것이고, 가온이 잘 하고 있는지 보러 대담하게도 사법개혁 공청회장에 슬그머니 나타났던 것입니다. 가온이 환상을 보는 결말이 아닌데 그렇게 오해하는 시청자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이 기회를 빌어 말씀드리지만 요한은 엘리야와 함께 잘 지내고 있고요, 가온과도 머지 않아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게 마련이니까요.

▲ '악마판사'는 법정 드라마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신 호평의 이유와 '악마판사'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드라마로 남았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호평의 이유는 당연히 지성, 김민정을 비롯한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그리고 최정규 감독의 뛰어난 연출 때문이지요. 표상우 촬영감독의 영상미와 정세린 음악감독의 우아한 음악들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본의 이상함과 부족함을 이 분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풍성하게 메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악마판사' 전체리딩때 배우, 스탭분들에게 인사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가 아니어도 좋고 완벽하지 못해도 좋으니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자분들에게도 그런 드라마로 남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 시청자 반응을 모니터 하셨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해외 반응을 주로 모니터했는데요,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 얘기라고 주장하는 반응들이 많아서 재미있기도 했고, 도대체 지금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다시 한번 무서워지기도 했습니다.

▲ 판사 출신인 문유석 작가님만의 법정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 같습니다. 차기작의 방향 또한 궁금합니다.

저는 창작자 이전에 온갖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사랑하는 소비자이고요, 법정물 외에도 코믹, 휴먼, 스릴러, SF, 애니메이션 등 제가 사랑하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쓰고 싶습니다. 이번에 다크한 장르물을 썼으니 다음번에는 반대로 밝고 쉽고 낙관적인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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