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낯선 세계관과 익숙하지 않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은 '홍천기'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청자들에게 이를 설명했다. 또 복잡한 인물들의 전사(앞서 있었던 일) 역시 충분한 호흡으로 전달하며 초석을 단단하게 다졌다.
30일 밤 SBS 새 월화드라마 '홍천기'(극본 하은·연출 장태유)가 첫 방송됐다. '홍천기'는 신령한 힘을 가진 여화공 홍천기(김유정)와 하늘의 별자리를 읽는 붉은 눈의 남자 하람(안효섭)이 그리는 한 폭의 판타지 로맨스다.
이날 방송은 단 왕국의 역사를 바꿀 마왕 봉인식으로 시작됐다. 단 왕국의 신화는 삶을 관장하는 신, 죽음을 관장하는 신,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신이 만들었다. 죽음을 관장하는 마왕은 균형을 맞추는 신을 죽였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에 단 왕국은 마왕을 봉인하기 위한 의식을 치렀고, 의식이 치러진 날 홍천기(이남경)와 하람(최승훈)이 태어났다.
홍천기는 마왕의 저주로 앞을 못 보게 됐고, 하람은 마왕이 저주로 내린 가뭄을 끝낼 물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 홍천기와 하람은 어린 시절 우연히 마주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하람이 타고난 물의 기운을 감지한 국무당 미수(채국희)는 하람을 인신공양 삼아 가뭄을 끝낼 제사를 지냈다.
한편 주향대군(박상훈)은 형인 세자를 질투했고, 자신이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을 품었다. 이 욕망은 마왕에게 전해졌고, 주향대군은 스스로 마왕의 봉인을 해제했다. 순간 하람과 홍천기는 마왕의 힘에 의해 동시에 물에 빠졌다. 삼신(문숙)은 이들의 운명을 위해 하람의 눈을 빼앗아 홍천기에게 줬다. 결국 하람은 눈이 멀고, 홍천기는 눈을 갖게 되면서 마무리됐다.
'홍천기' 첫 회는 방대한 세계관을 설명하는 프롤로그였다. 사극에 판타지가 결합된 장르 특성상 마왕이 등장하고 삼신 할매, 그리고 국무당이 등장했다. 현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관계와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 또 얽히고설킨 주인공들과 위 세대의 이야기 역시 방대했다. 하람과 홍천기가 타고난 운명의 서사를 풀어서 설명하면서 결국 이들이 짊어져야 될 숙명을 동시에 풀었다.
한마디로 작품의 세계관과 주인공의 전사를 한 회에 고스란히 담은 셈이다. '홍천기'는 서두르지 않고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느린 전개와 충분한 설명으로 작품의 성질을 전달했다. 앞으로 '홍천기'의 전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홍천기'는 정은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당초 원작 소설에는 '홍천기'의 배경이 조선시대로 설정됐고, 등장인물 중 일부 역시 조선왕조의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조선은 가상의 세계로 설정됐고, 몇몇 실존 인물 역시 가상의 인물로 등장했다.
이러한 각색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앞서 SBS는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 논란으로 2회 만에 조기 종영이라는 뼈아픈 선택을 해야 했다. '조선구마사'는 조선을 배경으로 태종, 세종 등 실존 인물을 다뤘고, 여기에 태종이 백성을 학살하고 세종이 기생집에 드나드는 등의 무리수를 둔 바 있다. 이런 설정이 역사 왜곡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홍천기'는 이를 반면교사 삼았다. 왕실과 마왕의 결탁은 자칫 역사 왜곡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을 터였다. 영리하게 가상 인물로 바꿔 논란의 여지를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홍천기' 첫 회가 단지 전사만 푼 것은 아니다. 하람과 홍천기의 달달한 만남과, 뒤바뀐 이들의 시각, 그리고 삼신이 점지한 운명을 암시하면서 기대를 높였다. 특히 아역들이 보여준 달달한 '케미'는 성인 역인 배우 안효섭과 김유정의 '케미'를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여기에 하람과 홍천기 사이에 거대한 운명이 소용돌이칠 것을 암시하면서 앞으로 전개에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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