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더욱 무섭다. '랑종'의 세계관에 현혹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악몽이 시작된다.

영화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제작 노던크로스)은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그린 영화다. '추격자'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 제작하고 태국 영화 '셔터' '샴' '피막'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한 다큐멘터리 팀이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에 사는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님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무당이다.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고 있다.

님은 형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뭔가를 듣고 보는 듯한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무당의 피를 이어받은 밍은 신내림을 거부했고, 밍의 가족은 그런 딸을 지키기 위해 굿을 하려 한다. 그러나 어설픈 굿은 상황이 악화되는 기폭제가 됐다. 갖가지 악령에게 지배당한 밍은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를 보인다.

다큐멘터리 팀은 신내림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을 밀착 취재하기 시작한다. 카메라 속에는 밍이 보이는 섬뜩하고 충격적인 모습들이 담긴다.

귀신이 나오지 않아도 무섭다. 리얼리티에 초점을 둔 연출의 힘이다. 관객들은 태국으로 초대돼 그곳에서 기이한 현상과 악령을 직면하게 한다.

먼저 관객들을 낯선 태국으로 이끄는 건 파운드 푸티지(실제 사건을 기록한 영상처럼 보여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다. '랑종'은 태국에서 만난 무당 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며 현실감을 높인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님의 삶을 조명하다 악령과 마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장면들에도 파운드 푸티지 방식이 빛을 발한다. 순식간에 관객들을 사건의 목격자로 만들기 때문. 악령에 빙의가 된 밍을 문틈 사이로 지켜보는 장면, CCTV 속 녹화된 밍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은 마치 실제 사건을 목격한 듯한 충격과 공포를 준다.

자극적인 요소들도 많다. 밍은 피로 뒤덮이고 성욕도 커진다. 마치 짐승의 모습과 같다. 수치심, 죄책감조차 없다. 마치 '곡성'의 성인판을 보는 듯하다. '곡성' 속 악령에겐 살기만이 돋보였다면 '랑종'의 악령은 그 이상이다.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절대 악을 모두 갖췄다.

'랑종'에 행복한 결말이란 없다. 작품 끝까지 처참하고 끔찍하다. 일말의 기대도 보란듯이 깨부순다.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 뿐이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고 여운이 남는다. 서늘함을 즐기기 위해 공포물을 즐겨왔다면, '랑종'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라앉고 축축한 분위기 탓에 마음과 어깨가 무거워질 뿐이다.

한국의 나홍진과 태국의 반종, 두 거장이 만나 새로운 공포물을 탄생시켰다. 악몽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사실 같은 '랑종'의 세계관에 현혹되지 않는 것. 오는 14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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